홍콩 느와르 영화는 무엇부터 보면 좋을까요?

1회
홍콩 느와르 영화는 무엇부터 보면 좋을까요?

오래된 홍콩 영화를 다시 보면 총격전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있습니다. 누군가는 친구를 위해 위험한 일을 맡고, 누군가는 범죄에서 손을 떼려다가 가족과 멀어집니다. 홍콩 느와르 영화의 멋은 선글라스와 긴 코트에도 있지만, 그 차림 뒤에 있는 인물의 처지를 알고 보면 이야기가 더 오래 남습니다.

홍콩 느와르는 어떤 영화인가요?

홍콩 느와르는 하나의 엄격한 장르명이라기보다 홍콩 범죄영화의 분위기와 인물을 가리킬 때 널리 쓰는 말입니다. 특히 1980년대 중반부터 주목받은 작품에는 갱단, 경찰, 잠입 수사관이 자주 등장합니다. 어두운 거리와 배신, 되돌리기 어려운 선택도 익숙한 요소죠. 그중 우정과 의리, 희생을 화려한 총격 액션과 엮은 흐름은 ‘영웅본색’류 영화로 기억하는 관객이 많습니다.

다만 작품마다 온도는 다릅니다. 오우삼 감독의 영화가 감정을 크게 끌어올리는 편이라면, 임영동 감독의 범죄영화는 인물이 처한 불안과 폭력의 거친 감촉에 더 가까이 다가갑니다. 같은 주윤발이 나와도 영웅처럼 보이는 순간과 궁지에 몰린 사람처럼 보이는 순간이 다릅니다. 처음 볼 때는 ‘누가 가장 강한가’보다 ‘누가 누구를 믿을 수 있는가’를 따라가면 인물 관계가 한결 잘 보입니다.

처음 볼 영화 네 편은 어떻게 다를까요?

영웅본색과 첩혈쌍웅

출발점으로 많이 꼽히는 작품은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입니다. 1986년 개봉작으로, 범죄 조직에 몸담았던 형과 경찰인 동생의 갈등이 중심에 있습니다. 주윤발이 연기한 마크의 존재감도 크지만, 영화의 무게를 잡는 것은 과거를 벗어나려는 형의 사정입니다. 홍콩영화자료관은 이 작품을 영웅적 유혈극의 선구작으로 소개합니다. 큰 흥행을 거둔 작품이기도 합니다. 총격 장면만 기대하고 보기 시작했다면, 가족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 더 마음이 갈 수 있습니다.

<첩혈쌍웅>은 1989년 작품입니다. 실수로 한 가수를 다치게 한 킬러가 치료비를 마련하려 마지막 일을 맡으면서 이야기가 움직입니다. 그를 쫓는 형사와의 관계도 단순한 추격전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촛불과 비둘기, 교회 같은 이미지가 총격 장면과 나란히 놓이는데, 이런 표현이 부담스럽다면 영화가 꽤 진지한 멜로드라마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인물의 감정이 액션을 밀어 올리는 영화를 좋아한다면 <영웅본색> 다음 순서로 잘 맞습니다.

용호풍운과 첩혈속집

의리보다 잠입 수사의 긴장을 먼저 보고 싶다면 임영동 감독의 <용호풍운>이 있습니다. 1987년 작품으로, 주윤발은 범죄 조직에 들어간 경찰을 연기합니다. 정체가 들킬까 두려워하는 마음과 조직원에게 느끼는 친밀감이 함께 쌓입니다. 비슷한 시기의 오우삼 영화보다 화면의 인상이 거칠고 답답합니다. 주인공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좁아지는 느낌을 좋아하는 관객에게 권할 만합니다.

1992년작 <첩혈속집>은 속도와 규모가 한층 큽니다. 주윤발의 형사 테킬라와 양조위가 연기한 잠입 수사관을 중심으로 사건이 이어집니다. 특히 병원에서 벌어지는 긴 액션 장면으로 유명합니다.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의 작품 소개에도 이 병원 장면이 주요 볼거리로 꼽힙니다. 처음부터 이 영화를 보면 액션의 강도가 기준이 될 수 있으니, 인물의 감정선을 먼저 느끼고 싶다면 앞선 작품들을 거쳐 보는 편이 좋겠습니다.

광고

보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점은 무엇일까요?

첫째, 지금의 범죄 스릴러처럼 모든 행동의 이유를 차분히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갑자기 마음이 기울거나, 짧은 만남 뒤에 깊은 신뢰가 생기는 장면도 있습니다. 사실적인 수사 절차를 따지기보다 인물들이 어떤 약속을 지키려 하는지 보면 영화의 리듬에 적응하기 쉽습니다.

둘째, 멋진 총격전과 폭력의 결과가 한 화면에 공존합니다. 느린 화면과 음악이 장면을 아름답게 만들지만, 인물들은 그 선택으로 관계와 삶을 잃기도 합니다. 총을 든 인물을 영화가 무조건 옳다고 말하는지, 아니면 그가 믿는 의리의 값을 보여 주는지 생각하며 보면 장면의 인상이 달라집니다.

셋째, ‘홍콩 느와르’라는 이름 아래 모든 영화를 같은 취향으로 묶을 필요는 없습니다. <영웅본색>의 가족 이야기, <용호풍운>의 잠입 수사, <첩혈속집>의 큰 액션 중 먼저 끌리는 것부터 골라도 됩니다. 작품의 개봉 연도만 따라가기보다 좋아하는 긴장감의 종류를 기준으로 고르는 편이 첫 관람에는 더 편합니다.

2000년대 영화와 이어서 보면 어떨까요?

2002년작 <무간도>까지 이어 보면 홍콩 범죄영화가 관계의 불안을 다루는 방식도 비교할 수 있습니다. 경찰이 조직에, 조직원이 경찰에 들어간 두 사람의 이야기가 맞물립니다. 1980년대 영화의 의리와 희생이 크게 터져 나오는 감정이라면, <무간도>에서는 오래 숨긴 신분 때문에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흔들리는 긴장이 강합니다. 영국영화협회도 이 작품의 중심을 두 잠입자의 대결로 소개합니다.

제게 홍콩 느와르 영화의 인상적인 순간은 총성이 멈춘 뒤에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사람이 지킨 약속이 다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되고, 멋있어 보이던 선택의 대가가 뒤늦게 드러납니다. 그래서 오래된 화면과 과장된 액션에 익숙해질 즈음에는, 결국 인물들이 서로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를 보게 됩니다.

홍콩 느와르 영화는 무엇부터 보면 좋을까요? - 요약
광고

댓글 0

평가를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

모두 ID로 로그인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