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학생이 쓴 글에서 “소문이 겉잡을 수 없이 퍼졌다”는 문장을 봤습니다. 읽을 때는 자연스러운데, 글자로 옮기면 망설여지는 말이지요. ‘걷잡다’와 ‘겉잡다’는 발음이 같아도 뜻이 다릅니다. 소문을 멈출 수 없다는 이야기라면 ‘걷잡다’, 규모를 대강 헤아린다는 이야기라면 ‘겉잡다’를 씁니다.
걷잡다는 흘러가는 형세를 붙드는 말입니다
‘걷잡다’에는 한쪽으로 치우쳐 흘러가는 형세를 붙들어 잡거나 마음을 진정하고 억제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 더 나아가지 않도록 붙드는 장면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주로 ‘걷잡을 수 없다’처럼, 붙들려고 해도 붙들지 못하는 상황에 쓰입니다.
- 건조한 날씨에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 작은 오해가 걷잡을 수 없는 다툼으로 커졌다.
- 그 말을 듣고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났다.
- 화가 치밀어 걷잡기 어려웠지만 잠시 말을 멈췄다.
첫 두 문장에서는 불길과 다툼의 흐름을, 뒤의 두 문장에서는 눈물과 감정을 붙든다는 뜻입니다. “걷잡을 수 없이”를 그저 ‘아주 많이’라는 뜻으로 외우면 다시 헷갈립니다. 불길이 번지고 눈물이 나는 움직임을 억제할 수 없다는 뜻까지 읽어야 표기가 남습니다.
겉잡다는 겉을 보고 대강 헤아리는 말입니다
‘겉잡다’의 ‘겉’은 말뜻을 기억하게 해 주는 실마리입니다. 속을 자세히 확인하거나 하나하나 세기 전에,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보고 대강 짐작하는 것이지요. 정확한 계산보다 어림에 가깝습니다.
- 참석자는 겉잡아도 백 명은 넘어 보였다.
- 수리비가 겉잡아서 서른만 원쯤 들 것 같다.
- 책이 이만큼 쌓였으니 겉잡아도 옮기는 데 두 시간은 걸리겠다.
- 상자 수를 겉잡지 말고 목록과 맞춰 보자.
사람 수, 돈, 시간처럼 규모를 어림할 때 자주 만납니다. 다만 숫자가 나오면 무조건 ‘겉잡다’인 것은 아닙니다. “피해액이 걷잡을 수 없이 늘었다”는 피해액의 정확한 규모를 추산하는 말이 아니라, 늘어나는 흐름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숫자보다 문장이 말하는 행동을 봐야 합니다.
‘수 없다’가 붙어도 뜻부터 확인합니다
두 말을 구별할 때 “수 없으면 걷잡다”라고 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흔히 쓰이는 표현에는 잘 맞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안개 때문에 관중 수를 겉잡을 수 없었다”라고 하면 겉으로 보고도 대강 헤아릴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반면 “관중의 열기가 걷잡을 수 없이 높아졌다”는 열기가 커지는 형세를 붙들 수 없었다는 뜻이고요. 같은 ‘수 없다’가 붙어도 앞에서 무엇을 하려는지에 따라 글자가 달라집니다.
비슷해 보이는 문장을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더 선명합니다. “공사 기간을 겉잡아 열흘로 보았다”는 기간을 어림한 말입니다. “공사 지연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는 지연되는 상황을 제어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대강 짐작하다’로 바꿔도 자연스러우면 ‘겉잡다’, ‘붙들어 억제하다’로 바꿔도 자연스러우면 ‘걷잡다’ 쪽입니다.
맞춤법 규정도 두 말을 따로 적습니다
국립국어원의 한글 맞춤법 제57항은 뜻이 다른 말을 각각 구별하여 적도록 하면서 ‘걷잡다’와 ‘겉잡다’를 함께 제시합니다. 규정의 예도 ‘걷잡을 수 없는 상태’와 ‘겉잡아서 이틀 걸릴 일’입니다. 하나는 상태를 붙들지 못하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걸릴 시간을 대략 헤아리는 장면이지요.
학생들에게는 먼저 소리보다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소문이 퍼지고 감정이 치솟는 장면에는 붙드는 뜻의 ‘걷잡다’를, 사람이나 비용을 눈대중으로 헤아리는 장면에는 ‘겉잡다’를 놓는 식입니다. 두 글자 가운데 어느 것이 맞는지 오래 고민될 때도, 그 문장에서 붙들려는 것인지 헤아리려는 것인지 생각하면 대개 길이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