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업에서 ‘닭’을 읽어 보라고 하면 학생들은 대개 [닥]이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닭이’는 [다기]라고 읽는 학생이 꽤 있습니다. 글자에는 분명 ㄹ과 ㄱ이 함께 있는데, 소리에서는 어디로 간 걸까요? 겹받침 발음은 글자를 하나씩 세기보다 뒤에 어떤 말이 오는지 보면 훨씬 잘 풀립니다.
닭은 [닥]인데 닭이는 왜 [달기]일까요?
겹받침은 한 음절의 받침 자리에 자음 두 개를 적은 것입니다. ㄳ, ㄵ, ㄶ, ㄺ, ㄻ, ㄼ, ㄽ, ㄿ, ㄾ, ㅀ, ㅄ, 이렇게 11가지가 있습니다. 표기에는 두 자음을 남겨 두지만, 단어 끝이나 자음 앞에서는 보통 둘을 한꺼번에 발음하지 못합니다. 우리말의 한 음절 끝에서 실제로 낼 수 있는 받침 소리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닭’은 [닥], ‘삶’은 [삼], ‘값’은 [갑]이 됩니다. 소리만 듣고 ‘닥, 삼, 갑’으로 적으면 다른 형태에서 드러나는 자음을 놓치게 됩니다. ‘닭이’에는 조사 ‘이’가 붙어 [달기]가 되고, ‘삶이’는 [살미], ‘값이’는 [갑씨]가 됩니다. 겹받침의 앞 자음은 원래 음절에 남고 뒤 자음은 다음 음절로 옮겨 가는 셈이지요.
국립국어원의 표준 발음법 제14항도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어미·접미사가 붙을 때 이 방식을 규정합니다. 이때 뒤 자음이 ㅅ이면 [ㅆ]으로 납니다. ‘넋이’가 [넉씨], ‘값을’이 [갑쓸]인 이유입니다. ‘닭이’를 [다기]라고 하면 ㄹ이 빠지고, ‘값이’를 [가비]라고 하면 ㅂ과 ㅅ이 함께 드러나는 모습을 놓칩니다.
자음 앞에서는 어느 쪽이 남을까요?
학생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대목은 여기입니다. 겹받침이면 무조건 앞 자음만 남는다고 외우기 쉽지만, 실제 발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넋’의 ㄳ은 [ㄱ], ‘앉다’의 ㄵ은 [ㄴ], ‘여덟’의 ㄼ은 [ㄹ], ‘값’의 ㅄ은 [ㅂ]으로 납니다. 반면 ‘닭’의 ㄺ은 [ㄱ], ‘삶’의 ㄻ은 [ㅁ], ‘읊다’의 ㄿ은 [ㅂ]으로 납니다.
이를 두 묶음으로 보면 부담이 줄어듭니다. 표준 발음법 제10항은 ㄳ·ㄵ·ㄼ·ㄽ·ㄾ·ㅄ을 다루고, 제11항은 ㄺ·ㄻ·ㄿ을 다룹니다. 앞 묶음에서는 대체로 앞 자음이 남고, 뒤 묶음에서는 뒤 자음의 소리가 남습니다. 다만 ㄿ은 뒤 자음 ㅍ이 남더라도 받침 자리에서 [ㅂ]으로 나므로 ‘읊다’가 [읍따]가 됩니다.
뒤에 자음이 오면 남은 받침 소리 때문에 다음 소리가 세게 나는 일도 있습니다. ‘앉다’는 [안따], ‘젊다’는 [점따], ‘맑다’는 [막따]입니다. [안다], [점다]처럼 받침만 바꿔 읽으면 실제 표준 발음과 어긋납니다. 겹받침 하나의 소리를 고른 뒤에도 이어지는 자음까지 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밟다와 맑게는 왜 예상과 다를까요?
‘넓다’는 [널따]인데 ‘밟다’는 [밥따]입니다. 둘 다 ㄼ인데 결과가 달라서 교실에서도 자주 질문이 나옵니다. 표준 발음법은 ‘밟-’ 뒤에 자음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오면 [밥]으로 발음하도록 따로 정합니다. 따라서 ‘밟고’는 [밥꼬], ‘밟게’는 [밥께]입니다. 하지만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붙은 ‘밟아’는 [발바]로 읽습니다. 같은 단어라도 뒤에 오는 소리가 달라지면 받침의 두 자음이 다시 드러납니다.
‘넓-’에도 눈여겨볼 경우가 있습니다. ‘넓다’는 [널따]지만 ‘넓죽하다’는 [넙쭈카다], ‘넓둥글다’는 [넙뚱글다]로 납니다. ‘ㄼ은 언제나 ㄹ’이라고 단정하면 이 낱말들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규정이 예외를 적어 둔 것은 실제로 굳어진 발음을 반영하기 위해서입니다.
‘맑다’ [막따]와 ‘맑게’ [말께]의 차이도 같은 방식으로 보면 됩니다. 보통 ㄺ은 자음 앞에서 [ㄱ]이 남지만, 용언 어간 끝의 ㄺ은 ㄱ 앞에서 [ㄹ]로 납니다. ‘묽고’ [물꼬], ‘얽거나’ [얼꺼나]도 여기에 들어갑니다. ‘닭과’는 [닥꽈]입니다. ‘닭’은 용언의 어간이 아니므로 ‘맑게’의 경우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많고와 많아에서는 ㅎ이 어디로 갈까요?
ㄶ과 ㅀ은 ㅎ이 들어 있어 조금 다른 움직임을 보입니다. ‘많고’는 [만코], ‘싫다’는 [실타]입니다. ㅎ이 뒤의 ㄱ·ㄷ과 만나 각각 거센소리 ㅋ·ㅌ을 만듭니다. ‘않지’ [안치]처럼 ㅈ을 만나면 ㅊ이 됩니다. 겹받침의 ㅎ이 눈에 보이지 않게 사라진 듯해도, 뒤 자음의 발음에 흔적을 남긴 것입니다.
반대로 ‘많아’는 [마나], ‘싫어’는 [시러]입니다.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는 이 ㅎ이 발음되지 않습니다. ‘많고’를 보고 ‘많아’까지 [만하]라고 읽거나, ‘많아’에 맞춰 ‘많고’를 [만고]라고 읽으면 둘 다 어색해집니다. 같은 글자라도 이어지는 소리에 따라 하는 일이 달라집니다.
겹받침을 표기에 남기는 까닭은 낱말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닭’에서는 ㄹ이 들리지 않아도 ‘닭이’에서는 들리고, ‘값’에서는 ㅅ이 들리지 않아도 ‘값이’에서는 드러납니다. 제 수업에서는 발음을 하나씩 외우기 전에 단어 뒤에 자음이 오는지,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나 어미가 오는지 먼저 표시하게 합니다. 그러면 복잡해 보이던 겹받침도 말이 이어지는 자리에서 조금씩 제 모습을 보여 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