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소를 100곳 넘게 묵다 보니 여행 사진에서 먼저 보는 게 달라졌다. 멋진 노천탕 사진보다 그 탕을 언제 쓸 수 있는지,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얼마나 번거로운지를 본다. 벳푸 온천 투어도 그랬다. 온천 도시니까 어디에 묵어도 비슷하겠지 싶지만, 지옥 순례를 하고 실제로 몸을 담글 곳까지 고르면 숙소 위치가 하루의 피로를 꽤 크게 바꾼다.
지옥 순례를 온천욕으로 생각하면 아쉽다
벳푸에서 말하는 ‘지옥’은 뜨거운 물과 증기가 솟는 곳을 구경하는 관광지다. 파란 물빛의 우미 지옥, 붉은빛의 치노이케 지옥처럼 볼거리가 뚜렷하지만, 그 물에 들어가 목욕하는 일정은 아니다. 벳푸 온천 투어를 짤 때 이 차이를 먼저 알아야 한다. 지옥 일곱 곳을 돌아보고 나서야 ‘정작 탕에는 못 들어갔네’ 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벳푸 지옥 순례 공식 안내에는 관람지 일곱 곳의 운영 시간이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성인 공통 관람권이 2,400엔으로 나와 있다. 다만 표를 샀다는 이유로 일곱 곳을 전부 채울 필요는 없다. 색이 다른 온천과 분출 장면을 보는 재미는 있지만, 비슷한 동선에서 사진을 반복해 찍는 데 지치는 사람도 있다. 저는 처음 가는 일행이 있다면 보고 싶은 지옥을 먼저 고르고, 남는 시간을 입욕에 쓰는 편이 낫다고 본다.
하루에 다 넣기보다 걷는 구간을 줄였다
일곱 지옥은 한곳에 모여 있지 않다. 우미 지옥을 비롯한 다섯 곳은 간나와 쪽에서 걸어 다닐 수 있지만, 치노이케 지옥과 타츠마키 지옥은 떨어져 있다. 벳푸역에서 간나와까지 버스로 이동한 뒤 앞의 다섯 곳을 보고, 나머지 두 곳으로 다시 이동하는 식이다. 지도에서는 점 몇 개처럼 보여도 버스를 기다리고 길을 찾는 시간이 붙는다. 특히 늦게 출발하면 오후 5시 관람 종료 시간이 마음을 급하게 만든다.
오전에는 간나와의 지옥 두세 곳을 보고, 점심을 먹은 뒤 목욕 한 번. 제 취향에는 이 정도가 하루짜리 벳푸 온천 투어로 편하다. 간나와에서는 골목마다 올라오는 수증기를 보는 재미도 있다. 다만 여름에는 그 풍경이 낭만적이기만 하진 않다. 오르막을 걷고 뜨거운 탕까지 들어가면 생각보다 금방 지친다. 물과 작은 수건을 챙기고, 입욕 뒤 일정은 느슨하게 잡는 게 좋다.
목욕 경험을 하나만 더하고 싶다면 벳푸역 쪽의 다케가와라 온천도 선택지다. 벳푸시 안내 기준 일반 목욕은 성인 300엔, 모래찜질은 1,500엔이다. 모래찜질은 현장 접수라 대기가 생길 수 있고, 혼잡하면 접수가 일찍 끝날 수도 있다. 오래된 건물 분위기가 매력인 대신 최신 호텔 스파 같은 시설을 기대하면 실망하기 쉽다. 샴푸나 수건 등 필요한 물품과 이용 방식은 들어가기 전에 확인하는 편이 편하다.
숙소는 간나와와 벳푸역 주변의 쓰임이 다르다
간나와 숙소는 지옥 순례와 온천 골목을 천천히 즐길 사람에게 잘 맞는다. 아침에 멀리 이동하지 않아도 되고, 저녁에 관광객이 빠진 뒤 동네를 걸으면 낮과 분위기가 다르다. 대신 역을 오가거나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일정이 많다면 버스 시간을 계속 신경 써야 한다. 캐리어를 끌고 골목 안쪽 숙소까지 가는 길도 예약 전에 살펴볼 만하다.
벳푸역 주변 숙소는 기차 이동과 식사 선택이 편하다. 지옥 순례는 낮에 다녀오고, 저녁에는 역 근처에서 목욕하거나 쉬는 식으로 동선을 짤 수 있다. 반면 숙소 창밖으로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온천 마을 풍경을 기대했다면 평범한 시내 숙소처럼 느껴질 수 있다. 사진에 ‘온천 도시’ 분위기가 담겨 있어도 실제 객실 전망이 그럴지는 별개다.
제가 예약 화면에서 꼭 확인하는 건 객실 사진보다 욕탕 이용 조건이다. 객실 안에 탕이 있는지, 대욕장만 있는지, 가족탕은 별도 예약과 요금이 필요한지부터 본다. ‘온천 숙소’라는 말만 보고 객실에서도 자유롭게 목욕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어긋난다. 조식 시간과 체크아웃 시간도 중요하다. 아침 일찍 지옥 순례를 시작할 계획인데 조식이 늦거나 짐 보관이 어렵다면 일정이 꼬인다.
이런 여행이라면 일곱 곳 완주는 권하지 않는다
부모님과 함께 가거나 어린아이를 데리고 간다면 관람지 일곱 곳 완주보다 이동 횟수를 줄이는 쪽을 권한다. 뜨거운 증기와 긴 대기, 걷는 구간이 겹치면 사진으로 봤던 즐거움보다 피로가 먼저 남는다. 조용히 탕에 오래 앉아 있고 싶은 사람도 지옥 순례에 하루를 다 쓰기보다는 숙소 욕탕이나 당일 입욕 시설에 시간을 넉넉히 주는 편이 만족스러울 것이다.
반대로 벳푸의 독특한 풍경을 보고 싶다면 지옥 순례는 충분히 기억에 남는다. 다만 관람, 입욕, 숙박을 한 묶음의 ‘온천 체험’으로 뭉뚱그리지 않았으면 한다. 어디를 볼지와 어디서 씻고 쉴지를 따로 고르면, 숙소 사진에 기대했던 여행과 실제 하루 사이의 차이가 훨씬 줄어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