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스터리에서 손님과 커피를 마시다 보면 같은 말을 다르게 쓰는 순간이 있습니다. “산미가 강하다”는 말이 원두의 과일 같은 맛을 가리킬 때도 있고, 덜 추출돼 시큼하다는 뜻일 때도 있죠. 커피 용어를 몇 개만 구분해 두면 집에서 맛이 달라졌을 때 손댈 곳이 훨씬 선명해집니다.
산미와 신맛은 입안에서 다르게 남습니다
산미는 커피가 가진 맛의 한 부분입니다. 잘 익은 귤이나 사과를 떠올리게 하는 산미는 단맛과 함께 느껴지고, 삼킨 뒤에도 향이 남습니다. 반면 덜 추출된 커피의 신맛은 혀끝을 찌르듯 튀고 단맛이 비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둘 다 산 성분과 관련이 있지만, 마시는 경험은 꽤 다릅니다.
제가 손님에게 가장 먼저 묻는 것도 “신가요?”보다 “달콤한 맛도 같이 나나요?”입니다. 같은 원두로 내렸는데 시큼하고 묽다면 산지의 특징이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분쇄도를 조금 더 곱게 하거나 물 온도를 2℃ 정도 올려 다시 내려보면 차이가 드러납니다. 한 번에 둘 다 바꾸면 무엇이 영향을 줬는지 알기 어려우니 하나씩 움직이는 편이 좋습니다.
향미는 코와 입에서 함께 느끼는 인상을 말합니다. 딸기 향미가 적힌 원두에 딸기 과즙이 들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향과 산미, 단맛의 조합이 딸기를 연상시킨다는 표현에 가깝죠. 향미 표현은 맛을 맞히는 시험지가 아니라, 내가 느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농도와 추출 수율은 서로 다른 숫자입니다
커피가 진하다는 말에는 두 가지가 섞여 있습니다. 컵 안의 커피 성분이 얼마나 짙은지를 나타내는 농도와, 원두에서 성분을 얼마나 꺼냈는지를 나타내는 추출 수율입니다. 농도를 수치로 적을 때는 TDS라는 말을 씁니다. 물을 조금 더 부어 희석하면 농도는 낮아지지만, 이미 원두에서 꺼낸 성분의 양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원두 18g에 물 300g을 부어 커피 음료 250g을 얻었고, 측정한 TDS가 1.3%라면 컵에 녹아 있는 성분은 약 3.25g입니다. 이를 원두 무게 18g으로 나누면 추출 수율은 약 18%가 됩니다. 집에서 굴절계를 살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묽다’와 ‘덜 추출됐다’를 구별하면 처방이 달라진다는 점은 기억할 만합니다.
묽지만 맛의 균형이 좋다면 원두 대비 물의 양을 줄여 농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시큼하고 단맛이 부족하다면 물만 줄이기보다 분쇄도나 추출 시간을 살피는 편이 낫습니다. 스페셜티 커피 협회의 브루잉 기준에는 필터 커피의 농도와 추출 수율 범위가 제시돼 있지만, 그 숫자가 모든 사람의 취향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마실 때도 먼저 컵의 맛을 보고 숫자는 원인을 찾는 데 씁니다.
블루밍과 디개싱은 원두의 시간을 보여줍니다
드리퍼에 물을 처음 부었을 때 커피 가루가 부풀어 오르는 장면을 블루밍이라고 부릅니다. 로스팅 중 생긴 이산화탄소가 물을 만나 빠져나오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원두가 볶인 뒤 가스를 내보내는 과정은 디개싱이고요. 갓 볶은 원두에서 블루밍이 크게 보이는 이유도 이 가스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이 부푼다고 무조건 맛있는 원두는 아닙니다. 로스팅 정도, 보관 상태, 분쇄 시점에 따라 모습이 달라집니다. 볶은 지 얼마 안 된 원두는 가스 때문에 물이 고르게 닿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저는 핸드드립을 할 때 원두 18g에 먼저 물 40~50g을 붓고 30~40초 정도 기다린 뒤 나머지 물을 붓습니다. 이 시간도 정답이라기보다 원두가 충분히 젖었는지 확인하는 출발점입니다.
구매할 때는 포장 날짜보다 로스팅 날짜를 확인하는 습관이 유용합니다. 분쇄한 원두는 통원두보다 향이 빠르게 달라지므로, 가능하면 마시기 직전에 갈아 씁니다. 오래된 원두가 블루밍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해서 물을 더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만으로 잃은 향이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분쇄도와 채널링을 알면 실패한 컵을 읽기 쉽습니다
분쇄도는 커피 가루의 크기입니다. 같은 원두와 같은 물을 써도 더 곱게 갈면 물이 닿는 면적이 늘고 흐름이 느려져 추출이 달라집니다. 핸드드립에서 18g의 원두에 물 300g을 쓰는 레시피로 시작했다면, 주전자에서 붓는 양과 방식을 비슷하게 유지한 채 분쇄도만 조절해 보세요. 물이 너무 빨리 빠지고 컵이 시큼하며 얇다면 조금 곱게, 너무 느리게 빠지고 텁텁하다면 조금 굵게 가는 식입니다.
채널링은 물이 커피 가루 전체를 고르게 지나지 못하고 일부 길로 몰려 흐르는 현상입니다. 이때는 한 잔 안에서도 덜 추출된 맛과 거친 맛이 함께 느껴질 수 있습니다. 커피층 한쪽에만 세게 물을 붓거나, 가루가 뭉쳐 있는 경우를 먼저 살핍니다. 비싼 드리퍼를 바꾸기 전에 가루를 고르게 담고 물줄기를 차분히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컵이 안정될 때가 많습니다.
커피 용어는 외워서 말하려고 배우는 것보다, 어제와 다른 한 잔을 설명할 때 쓸모가 큽니다. 저는 맛이 마음에 들지 않은 날에도 원두 18g, 물 300g, 물 온도 93℃, 분쇄도와 추출 시간을 짧게 적어 둡니다. 다음 잔에서 한 가지만 바꿔 보면, 막연했던 취향이 조금씩 자기만의 레시피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