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박신혜의 예전 드라마를 다시 켰다가 둘째 출산 소식을 봤다. 처음에는 ‘올해 가을 출산 예정’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는데, 지금은 그보다 한 걸음 더 지난 이야기다. 소속사 솔트엔터테인먼트는 박신혜가 2026년 9월 22일 딸을 출산했고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다고 밝혔다. 반가운 소식에 축하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몇 년 사이 내가 재미있게 본 박신혜의 얼굴은 작품마다 꽤 달랐다.
가을 출산 예정이라는 소식, 지금은 득녀 소식으로
지난 4월 둘째 임신이 알려졌을 때 소속사가 전한 예정 시기는 ‘올해 가을’이었다. 그래서 아직도 박신혜, 올해 가을 둘째 출산이라는 문구가 눈에 익을 수 있다. 다만 11월인 지금은 예정 소식을 현재형으로 읽으면 헷갈린다. 9월 22일 건강한 딸을 맞았다는 발표까지 확인된 상태다. 박신혜와 배우 최태준은 2022년 결혼했고, 같은 해 첫째 아들을 얻었다.
이런 소식이 나오면 다음 작품은 언제인지부터 궁금해지기도 한다. 나도 좋아하는 배우라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출산 직후의 일정은 본인이 정할 일이고, 시청자가 지금 편하게 할 수 있는 건 이미 나온 작품을 다시 보는 정도일 듯하다. 마침 최근 작품 세 편만 나란히 놓아도 취향에 따라 고르는 재미가 있다. 아래 이야기는 큰 반전이나 결말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적어본다.
지친 날엔 닥터슬럼프가 먼저 생각난다
‘닥터슬럼프’에서 박신혜가 맡은 남하늘은 잘해내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잘 버티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시간을 만난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볼 때 로맨스보다 ‘쉬는 법을 잊은 사람’의 표정에 먼저 눈이 갔다. 늘 성실한 인물이 지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가까운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관전 포인트는 남하늘과 여정우가 서로를 대하는 속도다. 처음부터 모든 상처를 알아맞히는 관계라기보다, 상대가 힘들다는 걸 조금씩 알아채는 쪽에 가깝다. 가볍게 웃다가 조용해지는 장면들이 있어서 한꺼번에 몰아볼 때 감정선이 이어지는 맛도 있다. 다만 사건이 빠르게 터지는 드라마를 찾는다면 중간의 호흡이 느리게 느껴질 수 있다. 피곤한 날 한두 편씩 보고 싶은 내 취향에는 그 느긋함이 오히려 잘 맞았다.
지옥에서 온 판사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다
반대로 ‘지옥에서 온 판사’의 강빛나는 첫인상부터 세다. 판사의 몸에 들어간 악마라는 설정이라 말투와 행동에도 거리낌이 있다. 익숙한 박신혜의 다정한 이미지가 떠오른다면 초반 몇 장면에서 꽤 놀랄 수 있다. 나는 강빛나가 등장할 때마다 화면의 온도가 바뀌는 느낌이 재미있었다. 표정 하나로 장면을 밀고 가는 힘이 이 작품의 큰 볼거리다.
장르도 확실하다. 판타지 설정 위에 범죄 사건과 응징의 쾌감을 얹었고, 인간적인 형사 한다온이 강빛나와 부딪히며 다른 리듬을 만든다. 통쾌한 장면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손이 자꾸 다음 회로 가는 드라마다. 대신 폭력적인 장면과 무거운 사건을 편하게 보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취향이 갈릴 수 있다. ‘닥터슬럼프’와 바로 이어 보면 같은 배우가 얼마나 다른 온도의 인물을 소화하는지 더 선명해진다.
언더커버 미쓰홍을 보고 나니 더 기다려졌다
2026년 방송된 ‘언더커버 미쓰홍’에서는 또 방향을 튼다. 박신혜가 연기한 홍금보는 1990년대 증권사를 둘러싼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말단 사원으로 위장한다. 설정만 들으면 비밀 임무에 집중할 것 같지만, 내가 즐긴 건 조직 안에서 눈치 보고 맞부딪히는 순간들이었다. 일은 잘하는데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인물이라 보는 맛이 있다.
시대 배경이 주는 분위기와 직장극의 소란스러움도 매력이다. 홍금보가 정체를 숨긴 채 사람들 사이를 오가는 장면에서는 긴장감이 생기고, 동료들과 엮일 때는 조금 더 가볍게 웃게 된다. 다만 복잡한 비리의 실마리를 따라가는 재미보다 인물 관계에 집중하는 편이라면 초반 설정을 익히는 데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나는 그 고비를 지나고 나서 홍금보의 빠른 판단과 능청스러운 표정을 보는 재미가 커졌다.
셋 중 한 편을 고른다면 지친 날에는 ‘닥터슬럼프’, 강한 자극이 당길 때는 ‘지옥에서 온 판사’, 일과 사람 사이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박신혜가 보고 싶을 때는 ‘언더커버 미쓰홍’을 켜겠다. 둘째 딸을 맞은 기쁜 소식 덕분에 다시 펼쳐본 필모그래피였는데, 같은 배우를 따라가며 이렇게 다른 기분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여전히 좋다. 새 작품 소식은 천천히 기다려도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