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백패킹을 같이 간 분이 냄비 두 개에 양념통 여섯 개를 꺼냈습니다. 저녁 한 끼 먹고 나니 설거지보다 짐 다시 싸는 데 시간이 더 걸리더군요. 저도 예전엔 그랬습니다. 국물요리는 재료를 많이 넣을수록 맛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밖에서는 재료보다 물 양과 끓이는 순서가 맛을 더 크게 좌우합니다.
국물요리는 남길 양부터 생각합니다
캠핑장에서 국물은 넉넉할수록 좋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2명이 먹는데 냄비 가득 끓이면 남은 국물을 처리하기 곤란합니다. 저는 2인 기준으로 물 700~800mL부터 잡습니다. 밥까지 말아 먹을 계획이면 조금 더 넣고, 술안주로 먹을 거면 건더기 비중을 높입니다. 물은 처음부터 전부 붓지 말고 한 컵쯤 남겨두면 간을 맞추기도 쉽습니다.
메뉴를 고를 때는 장비와 이동 거리를 먼저 봅니다. 차를 바로 옆에 댈 수 있는 캠핑장이라면 김치찌개처럼 냉장 재료가 들어가는 음식도 편합니다. 배낭을 메고 걷는 날에는 마른 재료 위주가 낫습니다. 집에서 손질해 한 끼 분량으로 나누면 현장에서 칼과 도마를 꺼낼 일도 줄어듭니다. 비싼 전용 양념 세트까지 살 필요는 없습니다. 소금이나 간장 하나, 평소 쓰는 양념 한 가지만 챙겨도 충분합니다.
어묵탕은 재료보다 끓이는 시간이 중요합니다
처음 국물요리를 하는 사람에게는 어묵탕이 만만합니다. 2인분이면 어묵 200g 안팎, 무 한 줌, 대파 조금, 물 800mL 정도면 됩니다. 집에서 무를 얇게 썰어두세요. 현장에서는 물에 무를 먼저 넣고 10분가량 끓인 뒤 어묵과 대파를 넣습니다. 어묵은 오래 끓이면 국물은 짜지고 식감은 흐물해집니다. 마지막 4~5분만 끓여도 맛이 납니다.
간은 어묵을 넣은 다음에 봅니다. 제품마다 짠맛이 달라 처음부터 국간장을 붓다 보면 되돌리기 어렵거든요. 저는 간장 작은 숟가락 하나를 준비해뒀다가 싱거울 때만 씁니다. 꼬치에 어묵을 끼우면 보기에는 좋은데, 좁은 냄비에선 먹기도 설거지도 번거롭습니다. 접어서 넣어도 맛은 같습니다. 무가 없다면 건조 다시마 작은 조각만 넣어도 되고, 그것마저 없으면 어묵과 대파만으로 끝내도 됩니다.
김치찌개는 집에서 한 번 볶아 가면 편합니다
차박이나 오토캠핑에서는 김치찌개를 자주 끓입니다. 2인 기준으로 잘 익은 김치 250g, 돼지고기 150g, 두부 반 모, 물 700mL 정도를 씁니다. 현장에서 고기와 김치를 볶아도 되지만 바람 부는 날에는 팬을 오래 올려두기 싫습니다. 그럴 때는 집에서 고기와 김치를 볶아 식힌 뒤 밀폐 용기에 담아 갑니다. 현장에선 물을 붓고 충분히 끓인 다음 두부를 넣으면 됩니다.
여기서 한 번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 아침에 싸둔 고기를 차 안에 두고 오후 늦게 도착했는데,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찜찜해서 버렸습니다. 그 뒤로 고기와 두부는 보냉 가방에 얼린 냉매와 함께 넣고, 도착하면 먼저 상태를 확인합니다. 보냉을 유지하기 어렵거나 이동 시간이 길다면 고기를 빼고 참치 통조림을 현장에서 개봉해 넣는 편이 속 편합니다. 김치가 싱거우면 고춧가루를 더하기보다 조금 더 끓여보세요. 물이 줄면서 맛이 잡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걷는 날에는 마른 미역국이 짐을 덜어줍니다
백패킹 때는 국 한 그릇을 위해 무거운 재료를 메고 가지 않습니다. 2인분이라면 마른 미역 10g 정도와 개별 포장된 참치 한 봉, 다진 마늘 소량, 소금만 챙깁니다. 물 750mL에 미역을 넣고 불린 다음 끓이다가 참치를 넣습니다. 참치 기름이나 국물을 조금 쓰면 별도 육수 없이도 맛이 납니다. 미역은 생각보다 많이 불어나니 처음부터 한 움큼씩 넣지 않는 게 좋습니다.
더 가볍게 가고 싶으면 참치를 빼고 집에서 볶은 미역을 한 끼 분량으로 포장해도 됩니다. 다만 가벼운 음식이 항상 편한 음식은 아닙니다. 마른 재료는 물을 더 써야 하고, 물을 구할 수 없는 능선에서는 오히려 부담이 됩니다. 저는 취수할 수 있는 장소를 확인한 날에만 이런 메뉴를 고릅니다. 국물을 남기지 않을 만큼만 끓이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바람과 남은 국물까지 계산해야 편합니다
국물요리는 냄비가 오래 불 위에 올라갑니다. 바람이 세면 끓는 시간이 늘고 연료도 예상보다 빨리 닳습니다. 냄비 뚜껑을 쓰고 바람을 피할 자리를 고르되, 바람막이로 버너와 연료통을 빽빽하게 감싸지는 않습니다. 열이 연료통에 갇힐 수 있습니다. 텐트나 차 안에서 버너를 켜는 것도 피합니다. 추울수록 안에서 끓이고 싶지만 화재와 일산화탄소 위험을 감수할 이유는 없습니다.
국물은 남기면 처리할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땅이나 계곡에 붓지 않고, 건더기와 함께 밀폐 용기에 담아 가져옵니다. 그래서 저는 출발 전에 인원수와 밥 양을 보고 냄비 크기부터 고릅니다. 어묵탕은 간단한 첫날 저녁에, 김치찌개는 보냉이 되는 차박에, 마른 미역국은 물을 확보한 걷는 날에 잘 맞았습니다. 남들이 맛있다고 하는 메뉴보다 그날 짐과 동선에 맞는 한 냄비가 결국 더 오래 기억에 남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