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의에서 헌법 첫 조항을 읽으면 익숙하다는 반응이 먼저 나옵니다. 그런데 ‘민주공화국’이 무슨 뜻인지 묻는 순간 잠시 조용해집니다. 대한민국의 이름을 설명하는 말 같지만, 사실은 국가 권력을 누가 맡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정하는 문장입니다.
제1조 1항에는 무엇이 적혀 있을까요?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규정합니다. 짧지만 국가의 기본 형태를 밝히는 조항입니다. 바로 이어지는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적고 있습니다. 두 항을 함께 읽으면 국가 권력의 주인이 누구인지 더 분명해집니다.
여기서 주권은 나라의 중요한 일을 최종적으로 결정할 권한을 뜻합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권한을 행사하더라도 그 권한이 개인의 소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일정 기간 맡아 행사하는 것입니다.
다만 ‘국민에게 주권이 있다’는 말이 모든 국민이 모든 정책을 직접 표결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국민은 선거로 대표를 뽑고, 대표는 정해진 권한 안에서 법을 만들거나 행정을 맡습니다. 헌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처럼 국민이 직접 의사를 표시하는 절차도 있습니다. 어떤 방식이든 권력의 근거가 국민에게 있다는 점은 같습니다.
‘민주’와 ‘공화’는 같은 말일까요?
‘민주’는 국가 권력이 국민의 의사에 근거해야 한다는 원리입니다. 선거가 대표적인 통로입니다. 하지만 투표 한 번으로 끝나는 원리는 아닙니다. 선거 사이에도 시민이 의견을 말하고,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며, 정부의 결정이 법에 따라 심사받을 수 있어야 국민의 의사가 정치에 이어집니다.
‘공화’는 국가를 특정 개인이나 가문의 사유물로 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왕위를 세습하는 군주제와 구별되는 말이기도 하지요. 공직자가 권한을 맡는 이유는 사적인 이익이 아니라 공적인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입니다. 권한을 행사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제도도 이 원리와 연결됩니다.
두 말을 나란히 놓은 까닭은 권력의 출처와 사용 방식을 함께 밝히기 위해서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수의 지지를 얻은 권력이라도 정해진 절차를 벗어나 마음대로 쓸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법과 제도가 갖춰져 있어도 국민의 의사가 반영될 길이 막혀 있다면 ‘민주’라는 말에 걸맞기 어렵습니다.
이 문장은 언제부터 헌법에 있었을까요?
국가기록원이 소개하는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추구하던 시기에 어떤 형태의 국가를 세울 것인지 밝힌 문장입니다. 오늘의 헌법 제1조와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민주공화국이라는 방향은 이미 제시돼 있었습니다.
1948년 제헌국회는 7월 12일 헌법안을 의결했고, 헌법은 7월 17일 공포됐습니다. 제헌헌법도 제1조에서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규정했습니다. 이후 헌법은 여러 차례 개정됐습니다. 같은 표현이 헌법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과, 각 시기 현실에서 그 원리가 얼마나 실현됐는지는 구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행 헌법은 1987년 제9차 개헌으로 마련됐습니다. 6월 민주화운동 이후 개헌안이 국회에서 의결됐고, 10월 27일 국민투표를 거쳐 10월 29일 공포됐습니다. 시행일은 1988년 2월 25일입니다.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 헌법재판소 설치 등은 이때 마련된 제도의 주요 내용입니다. 제1조의 문장 자체보다 그 원리가 작동하는 제도가 크게 달라진 시기였습니다.
선거에서 이 조항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요?
선거철에는 ‘국민의 뜻’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국민의 생각은 하나가 아닙니다. 같은 정책을 두고도 비용을 걱정하는 사람과 필요한 보호를 강조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헌법 제1조가 어느 쪽 정책을 바로 선택해 주지는 않습니다. 서로 다른 의견이 정해진 절차 안에서 경쟁하고, 결정된 권력이 감시와 책임의 대상이 된다는 기준을 줍니다.
예를 들어 국회에서 법안을 다툴 때 다수결은 결정을 가능하게 합니다. 동시에 소수 의견을 말할 기회, 공개된 심의, 위헌 여부를 따질 절차도 중요합니다. 다수결을 중시하는 까닭은 국민이 뽑은 대표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서이고, 절차를 중시하는 까닭은 권력이 한순간의 지지만으로 제한 없이 행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헌법의 다른 조항들도 이 첫 문장과 이어집니다.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국회·정부·법원이 각각 권한을 맡으며, 헌법재판소가 헌법에 관한 판단을 내립니다. ‘민주공화국’이라는 여덟 글자가 모든 답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원리를 실제 제도로 옮기기 위해 헌법의 나머지 조항들이 놓여 있습니다.
첫 조항을 읽을 때 무엇을 기억하면 좋을까요?
제1조 1항은 특정 정책에 찬성하거나 반대할 때만 꺼내 드는 문장이 아닙니다. 누가 권한을 받았는지, 그 권한은 어디까지인지, 결정 과정에 국민의 의사가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묻게 합니다. 답을 찾으려면 제1조 2항과 해당 사안에 관한 다른 헌법 조항, 법률, 실제 절차까지 함께 봐야 합니다.
저는 이 조항을 강의할 때 ‘국가의 주인이 누구인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봅니다. 주인이 국민이라면 권한을 맡은 사람의 결정 과정이 보이고, 잘못된 결정에 책임을 물을 길도 있어야 합니다. 익숙한 첫 문장이 지금도 유효한 기준으로 읽히는 이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