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부여에 갔을 때, 돌아오는 가방에 무엇을 넣을지는 정하지 않고 걸었다. 유명한 유적을 보고 기념품 가게에 들르는 순서보다, 사람들이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따라가고 싶었다. 그렇게 부여읍 시장 골목과 규암마을을 천천히 돌았다. 결국 손에 남은 건 작고 소박한 것들이었다.
시장 골목에서 고른 건 밤 한 봉지
부여읍에 도착해 먼저 부여시장 쪽으로 걸었다. 관광객을 위한 물건만 모아 둔 곳은 아니어서 좋았다. 채소를 고르는 손, 가게 앞에서 잠깐 말을 섞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니 여행지라기보다 누군가의 평일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길을 막지 않으려고 걸음을 늦추고, 진열된 물건을 하나씩 보았다.
부여 여행 기념품으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밤이었다. 부여군이 지역 농산물로 소개하는 품목이기도 하다. 다만 시장에서 파는 밤이 모두 부여산인 건 아니니, 나는 포장지의 원산지를 읽고 골랐다. 한 봉지는 집에 가져가 먹기 좋고, 짐이 무거워질 만큼 욕심내지 않아도 된다. 화려한 포장은 없었지만 부여에서 보낸 시간이 가장 또렷하게 떠오를 물건 같았다.
시장을 선물 사는 장소로만 생각하면 금세 한 바퀴를 돌고 나오게 된다. 나는 빈손으로 골목을 한 번 지난 뒤 다시 돌아왔다. 처음에는 물건이 보였고, 두 번째에는 가게마다 다른 속도가 보였다. 사람이 적은 시간을 찾아 간다면 장이 크게 서는 날보다 평일의 조용한 오전이 내 취향에 가까웠다. 대신 문을 연 점포와 물건 종류는 그날그날 다를 수 있다.
먹는 선물은 가볍고 나눠 먹기 좋았다
밤 외에도 부여에서 고를 만한 먹거리는 여럿이다. 부여군의 굿뜨래 농산물 품목에는 토마토와 멜론, 딸기, 표고버섯도 있다. 그런데 당일 걷는 일정이라면 과일 상자는 꽤 부담스럽다. 차로 움직이는 사람에게는 괜찮겠지만,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내게는 작은 포장의 가공품이나 상온에 둘 수 있는 먹거리가 편했다.
나는 선물을 고를 때 세 가지만 본다. 어디서 만든 물건인지, 돌아가는 동안 들고 다닐 수 있는지, 집에서 실제로 먹을지. ‘부여’라는 글자가 크게 쓰여 있어도 제조지와 원재료 산지는 다를 수 있다. 반대로 포장이 평범해도 지역 농산물이 담긴 물건이 있다. 한 바퀴 둘러보고 다시 고르면 충동적으로 사 온 선물이 찬장에 오래 남는 일도 줄어든다.
연잎차처럼 부여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도 눈여겨볼 만하다. 다만 궁남지에서 연꽃을 봤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연 관련 상품이 현지 생산품일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선물할 사람의 취향과 표시된 정보를 함께 보는 편이 마음이 놓인다. 차 한 잔을 마실 때 여행 이야기를 짧게 꺼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규암마을에서는 물건보다 골목이 오래 남았다
부여읍에서 장을 본 뒤에는 규암마을로 건너갔다. 한국관광공사도 이곳을 공예 작업과 오래된 동네 풍경이 함께 있는 마을로 소개한다. 자온길 주변에는 작은 가게와 작업 공간이 이어지지만, 몇 걸음만 옆으로 비켜서면 주택가의 조용한 길이다. 가게를 찾겠다고 서두르기보다 열린 문을 발견할 때마다 잠깐 멈추는 쪽이 이 동네와 어울렸다.
여기서는 손에 쥐기 좋은 공예품이나 종이 소품을 천천히 봤다. 같은 모양의 기념품이 줄지어 놓인 곳과는 느낌이 달랐다. 그렇다고 아무 물건이나 ‘로컬’이라는 말만 믿고 고르지는 않았다. 만든 사람과 재료에 관한 설명을 읽고, 오래 쓸 수 있을 것 같은 것만 남겼다. 작은 물건 하나를 고르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는데, 그 시간이 규암을 걸은 기억의 일부가 됐다.
규암마을의 가게들은 영업일이 서로 다를 수 있다. 특정 소품을 꼭 사야 한다는 마음으로 오면 닫힌 문 앞에서 아쉬울지도 모른다. 이곳은 먼저 골목을 걷고, 문을 연 공간이 있으면 들어가는 식으로 동선을 잡는 게 편했다. 생활하는 분들이 있는 동네라 집 앞을 촬영하거나 좁은 길에 오래 서 있는 일은 조심했다.
돌아오는 길에 가방을 열어보니
이번에 가져온 건 밤 한 봉지와 작은 소품 하나였다. 처음에는 부여다운 기념품을 꼭 찾아야 할 것 같았는데, 막상 걷고 나니 내가 마음에 둔 건 시장의 평범한 대화와 규암의 느린 골목이었다. 물건은 그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작은 단서였다.
부여에서 선물을 고른다면 읍내 시장을 먼저 걷고, 시간이 남으면 규암으로 건너가 보곤 싶다. 물건의 종류보다 어디에서 어떤 속도로 골랐는지가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집에 와서 밤 봉지를 열었을 때도, 나는 맛보다 그날 시장 골목의 공기를 먼저 떠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