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한 학생이 선생님께 보낼 메일을 보여 주며 물었습니다. “고견을 여쭙고 싶습니다”라고 써도 되는지, ‘여쭙다’보다 ‘여쭈다’가 맞는 말은 아닌지 궁금하다는 것이었죠. 공손하게 쓰려고 고른 표현인데, 막상 적고 나니 단어 하나하나가 마음에 걸린 모양입니다. 이런 말은 맞춤법만 확인하기보다 누구의 생각을, 누구에게 묻는 장면인지 그려 보면 훨씬 쉽게 이해됩니다.
‘고견’에는 누구의 생각이 담겨 있을까요?
‘고견’은 한자로 高見이라고 씁니다. ‘높을 고’에 ‘볼 견’을 써서, 뛰어난 의견이나 생각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높다’는 말은 의견의 높낮이를 재는 뜻이 아니라 그 생각을 가치 있게 본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상대방의 의견을 높여 이르는 말로도 쓰이지요. 국립국어원의 한국어기초사전에는 ‘전문가의 고견’과 ‘귀하의 고견’처럼 두 쓰임이 함께 나옵니다.
그래서 “교수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는 자연스럽습니다. 오랜 경험을 가진 사람의 판단을 청하는 자리에도 잘 어울리고요. 반면 “제 고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 자기 의견을 스스로 높이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자기 생각이라면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가 담백합니다. ‘고견’이라는 말의 무게는 글자 자체보다 그 의견을 누구의 것으로 놓느냐에서 생깁니다.
‘고견을 여쭙다’는 왜 자연스러울까요?
‘여쭙다’는 웃어른에게 말씀을 올리거나 인사를 드릴 때 쓰는 말입니다. 상대에게 공손하게 묻는 자리에서도 쓰입니다. “선생님께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라고 할 때는 묻는 사람이 자신을 낮추고, 말을 받는 사람을 높이지요. 여기에 상대의 의견을 높이는 ‘고견’을 더한 “고견을 여쭙다”는 말의 방향이 같습니다. 상대의 생각을 귀하게 여기며 그 생각을 묻겠다는 표현입니다.
다만 높임말이 두 번 들어갔다고 해서 언제나 더 좋은 문장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까운 동료에게 점심 메뉴를 물으며 “고견을 여쭙습니다”라고 하면 장면에 비해 지나치게 격식 있어 보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연구 계획을 검토해 줄 선배 교사에게 “수업 설계에 관한 고견을 여쭙고 싶습니다”라고 쓰면 무엇을 묻는지도 드러나고 예의도 갖춰집니다. 말의 적절함은 단어를 몇 개 높였느냐보다 관계와 상황에 달려 있습니다.
질문할 내용도 함께 적으면 표현이 한결 또렷해집니다. “고견을 여쭙고 싶습니다”만 적으면 상대는 어느 부분을 보아야 할지 알기 어렵습니다. “학생들이 지문의 근거를 찾는 활동을 어떻게 구성하면 좋을지 고견을 여쭙고 싶습니다”라고 쓰면 답할 범위가 보입니다. 공손한 말이 실제 대화로 이어지려면, 상대가 답하기 쉬운 질문이 곁에 있어야 합니다.
‘여쭙다’와 ‘여쭈다’, 어느 쪽이 맞을까요?
두 말 모두 맞습니다. 국립국어원은 ‘여쭈다’와 ‘여쭙다’를 같은 뜻의 복수 표준어로 안내합니다. 표준어 사정 원칙 제26항에 따라 함께 인정되는 형태입니다. 그러니 “고견을 여쭙겠습니다”와 “고견을 여쭈겠습니다” 가운데 하나를 틀린 말로 고칠 필요는 없습니다. 한국어기초사전의 ‘고견’ 항목에는 “고견을 여쭈다”도 용례로 실려 있습니다.
헷갈림은 뒤에 어미가 붙을 때 생깁니다. ‘여쭈다’에 ‘-어’를 붙이면 ‘여쭈어’이고, 이를 줄여 ‘여쭤’라고 쓸 수 있습니다. “선생님께 여쭤 보겠습니다”가 익숙한 까닭이지요. ‘여쭙다’는 ㅂ 불규칙 활용을 하므로 같은 자리에 ‘여쭈워’가 옵니다. 국립국어원의 설명대로라면 ‘여쭙어’는 바른 활용형이 아닙니다. 기본형 두 개가 모두 표준어라는 사실과 활용형을 마음대로 섞어도 된다는 말은 다릅니다.
- 기본형: 여쭈다, 여쭙다 모두 표준어
- 자연스러운 문장: “의견을 여쭈겠습니다”, “의견을 여쭙겠습니다”
- 어미 ‘-어’가 붙을 때: 여쭈다 → 여쭈어·여쭤, 여쭙다 → 여쭈워
글을 쓰다가 ‘여쭈워’가 낯설다면 “여쭤 보겠습니다”나 “여쭙겠습니다”처럼 익숙하면서도 바른 형태를 고르면 됩니다. 외워야 할 표기가 하나 더 늘었다고 생각하기보다, 기본형이 서로 다르니 뒤에 붙는 말도 달라진다고 이해하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실제 메일에서는 어떻게 쓰면 좋을까요?
격식을 갖춘 메일이라면 “수업 자료의 난이도에 관해 선생님의 고견을 여쭙고 싶습니다”처럼 쓸 수 있습니다. 상대의 의견을 요청한다는 뜻이 분명합니다. “수업 자료의 난이도에 관해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도 충분히 공손합니다. ‘고견’은 반드시 넣어야 하는 높임말이 아니라, 상대의 판단을 특별히 귀하게 여긴다는 뜻을 더하고 싶을 때 고르는 말입니다.
여러 사람에게 넓게 의견을 받을 때는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가 더 편안할 때도 있습니다. 회의 안내문에 “고견을 부탁드립니다”라고 쓰는 것도 가능하지만, 어린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생각을 말해 달라는 자리라면 “어떻게 생각하나요?”가 대화를 열기 쉽겠지요. 어려운 말을 쓰는 능력보다 상대에게 맞는 말을 고르는 감각이 문장을 더 좋게 만듭니다.
학생의 메일에는 결국 “선생님께 수업 활동에 관한 고견을 여쭙고 싶습니다”라는 문장이 남았습니다. 그 뒤에 고민하는 지점 두 가지를 구체적으로 덧붙였고요. ‘고견’은 상대의 생각을 높이는 말, ‘여쭙다’는 그 상대에게 공손히 묻는 말이라는 흐름을 알고 나니 표기도 덜 불안해졌다고 했습니다. 말의 뜻과 쓰이는 장면을 함께 기억하면, 다음 문장에서는 사전을 펼치기 전에 스스로 판단할 힘이 생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