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학생이 글을 읽다가 ‘과장 광고를 지향해야 한다’는 문장에서 멈췄습니다. 글쓴이는 과장 광고를 줄여야 한다는 뜻으로 쓴 듯한데, 문장에는 오히려 그쪽을 목표로 삼는다는 뜻이 담겨 있었지요. 학생은 두 단어의 소리가 비슷해서 헷갈렸다고 했습니다. 고급어휘를 배울 때 자주 만나는 장면입니다. 낱말 하나가 바뀌면 문장의 방향도 달라집니다.
고급어휘는 어려운 말의 목록일까요?
‘고급어휘’라고 하면 긴 한자어나 낯선 사자성어부터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제가 수업에서 더 눈여겨보는 것은 이미 여러 번 들었는데도 뜻을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문제를 간과했다’, ‘주장을 방증한다’ 같은 표현이 그렇습니다. 낱말 자체는 낯설지 않아도, 그 말이 문장에서 맡은 일을 물으면 잠시 망설이게 됩니다.
어휘를 안다는 데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읽었을 때 대강 뜻을 짐작하는 단계, 비슷한 말과 차이를 설명하는 단계, 자기 문장에 알맞게 넣는 단계입니다. 마지막 단계에 이르려면 사전의 뜻풀이를 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무엇을 대상으로 쓰는지, 그 말로 문장이 어느 쪽을 향하는지까지 보아야 합니다. 말의 짜임을 알면 그 차이가 오래 남고요.
지양과 지향은 글자 하나로 방향이 갈립니다
앞의 문장에 필요한 말은 ‘지양’입니다. 국립국어원 자료에서 ‘지향’은 어떤 목표를 향해 뜻이 쏠리는 일, ‘지양’은 더 높은 단계로 가기 위해 어떤 것을 하지 않는 일로 풀이합니다. 지향(志向)의 ‘향’은 향할 향입니다. 어디로 가려는지 생각하면 됩니다. 반면 지양(止揚)에는 그칠 지가 들어 있습니다. 현재의 방식에서 멈추고 더 나은 쪽으로 가려는 뜻을 품은 말이지요.
그래서 ‘과장 광고는 지양하고 정확한 정보 전달을 지향한다’고 쓰면 뜻이 분명해집니다. 앞에서는 줄이거나 피할 방식을 말하고, 뒤에서는 이루려는 목표를 말합니다. 두 단어가 늘 부정적인 대상과 긍정적인 대상을 기계적으로 나누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문장 속에서 ‘피하려는 것’과 ‘향하려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소리만 비슷한 두 말을 한 쌍의 장면으로 기억하면, 글을 쓸 때도 고르기 수월합니다.
방증과 반증은 증거가 하는 일이 다릅니다
‘이 기록이 그의 주장을 반증한다’는 문장을 만나면, 기록이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지 뒤집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반증(反證)의 ‘반’은 반대할 반입니다. 앞서 나온 주장에 맞서는 근거를 들어 그 주장이 옳지 않음을 밝힐 때 씁니다. “당일 회의에 참석했다는 주장과 달리, 출입 기록에는 그가 다른 지역에 있었다고 나온다”면 그 기록은 주장에 대한 반증이 될 수 있습니다.
방증(傍證)의 ‘방’은 곁 방입니다. 사실을 직접 보여 주는 자료는 아니지만, 주변 사정을 밝혀 간접적으로 뒷받침하는 증거를 가리킵니다. “그가 그날 회의에 참석했다”는 말을 놓고, 동료 여러 명이 그를 회의실 앞에서 보았다고 진술했다면 참석 사실을 방증하는 정황으로 볼 수 있습니다. 회의 참석자 명단처럼 사실을 직접 확인하는 자료와는 역할이 다르지요.
두 말은 모두 ‘증거’와 관련되지만 화살표의 방향이 다릅니다. 방증은 주변에서 한 사실을 받쳐 주고, 반증은 이미 제시된 주장을 거슬러 갑니다. 글을 읽다가 ‘이를 반증하듯’이라는 표현이 나오면 잠깐 멈춰 보세요. 뒤따르는 내용이 앞의 주장을 뒤집는지, 오히려 뒷받침하는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문장의 뜻이 또렷해집니다.
간과와 간주를 가르는 것은 읽는 사람의 행동입니다
‘간과’와 ‘간주’도 앞글자가 같습니다. 두 단어 모두 볼 간(看)으로 시작하지만 뒤에 붙은 글자가 뜻을 바꿉니다.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은 ‘간과하다’를 큰 관심 없이 대강 보고 그냥 넘기는 일로 풀이합니다. 간과(看過)의 ‘과’는 지나갈 과입니다. 중요한 조건을 읽었어도 그대로 지나쳐 버린 모습이 떠오르지요.
‘간주하다’는 무엇을 어떠하다고 여기거나 판단하는 말입니다. “제출 기한을 넘기면 신청을 철회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문장에서는 기한을 넘긴 일을 ‘철회’라는 상태로 취급합니다. 반면 “신청서의 제출 기한을 간과했다”는 문장은 그 기한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는 지나쳐 버린 행동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상태로 여기는 판단입니다.
이런 차이를 익힐 때 저는 낱말 옆에 쉬운 말 한 줄을 적게 합니다. 간과하다 옆에는 ‘놓치고 넘기다’, 간주하다 옆에는 ‘그렇게 여기다’라고 쓰는 식입니다. 그런 다음 원래 문장에 쉬운 말을 넣어 봅니다. 뜻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 이해한 것이고, 문장이 어색해지면 앞뒤를 다시 읽을 이유가 생깁니다. 사전을 펼칠 때도 첫 뜻풀이에서 멈추지 않고 용례의 대상과 문장 구조를 함께 보는 편이 좋습니다.
고급어휘는 어려운 말을 많이 늘어놓을 때보다 필요한 자리에 정확한 말을 놓을 때 빛납니다. 지양과 지향의 방향, 방증과 반증의 역할, 간과와 간주의 행동을 구별하면 긴 글에서도 글쓴이의 생각을 덜 놓치게 됩니다. 제가 학생들과 단어의 글자와 쓰인 장면을 함께 읽는 까닭도 거기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