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매 물건을 볼 때 임차인 보증금이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위험합니다. 처음에는 1억 원이었는데, 몇 년 뒤 계약을 연장하면서 2천만 원을 더 맡긴 집을 본 적이 있습니다. 매각물건명세서에 적힌 총액만 보고 계산했다가 계약서를 다시 펼쳐 보니, 두 금액 사이에 근저당권이 들어와 있더군요. 그날 입찰가를 다시 썼습니다.
보증금 증액이 있는 물건은 총보증금보다 날짜를 먼저 봐야 합니다. 처음 맡긴 돈과 나중에 올린 돈의 보호 순위가 다를 수 있어서입니다. 임차인에게도, 입찰자에게도 이 차이는 실제로 회수할 돈과 인수할 돈을 바꿉니다.
같은 임차인의 돈인데 순위가 달랐다
이해하기 쉽게 숫자를 바꿔 재구성한 사례입니다. 임차인은 2020년 3월에 입주와 전입신고를 마치고, 보증금 1억 원이 적힌 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받았습니다. 2022년 5월에는 은행 근저당권이 설정됐습니다. 2023년 3월 계약을 연장하며 보증금을 2천만 원 올렸고, 증액 계약서에는 그때 새 확정일자를 받았습니다.
이 경우 1억 원과 추가한 2천만 원을 같은 줄에 놓고 순위를 매기면 안 됩니다. 원래 보증금은 먼저 갖춘 대항요건과 확정일자를 기준으로 보고, 증액분은 증액 계약과 새 확정일자를 기준으로 따져야 합니다. 앞의 근저당권보다 늦게 생긴 증액분은 그 근저당권자보다 먼저 배당받을 수 없습니다. 대법원 안내도 근저당권 설정 뒤 올린 보증금은 그 근저당권에 기한 경매의 매수인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고 추가한 2천만 원이 언제나 사라지는 돈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증액 계약서에 확정일자를 갖췄다면 그보다 늦은 권리자와의 관계는 다시 따져볼 수 있습니다. 실제 배당액은 매각대금, 집행비용, 앞선 권리의 채권액과 다른 임차인의 권리에 따라 달라집니다. 날짜만 보고 회수액을 단정하면 또 틀립니다.
재계약서 한 장보다 원래 계약서가 중요할 때
입찰장에서 받은 서류에는 재계약서만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증금 1억 2천만 원, 확정일자 2023년 3월. 여기서 원래 계약서를 못 보면 두 가지 실수를 합니다. 전액이 2023년에 처음 생긴 보증금이라고 볼 수도 있고, 반대로 1억 2천만 원 전부가 2020년 순위를 이어받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둘 다 위험합니다.
제가 먼저 맞춰 보는 것은 최초 계약서의 보증금과 확정일자, 입주일과 전입일, 중간의 증액 계약서, 실제 증액금 송금 내역입니다. 이어 등기부에서 근저당권과 압류 등의 접수일을 끼워 넣습니다. 원래 계약서는 버리지 말고 증액 계약서와 함께 보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최초 계약의 보호 시점을 설명할 자료가 빠지면 배당 과정에서도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워집니다.
전입신고만으로 배당 순위가 완성되는 것도 아닙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대항력과, 경매대금에서 먼저 받을 수 있는 우선변제권은 서로 다른 권리입니다. 우선변제를 주장하려면 주택 인도와 주민등록이라는 대항요건에 더해 계약서의 확정일자를 확인해야 합니다. 증액분에도 새 계약서의 확정일자가 필요한지 꼭 확인하는 까닭입니다.
배당받을 돈과 낙찰자가 떠안을 돈을 따로 봤다
초보 때는 선순위 임차인이 있으면 보증금 전액을 낙찰자가 떠안는다고 겁먹었고, 어느 때는 배당요구만 있으면 전액 해결된다고 쉽게 생각했습니다. 둘 다 숫자를 놓치기 쉬운 접근입니다. 선순위 임차인이 실제로 얼마를 배당받는지, 받지 못한 잔액을 매수인에게 주장할 수 있는지, 증액분은 중간 권리자보다 앞서는지를 각각 봐야 합니다.
위 사례라면 원래 1억 원의 지위와 추가 2천만 원의 지위를 나눠 계산합니다. 2022년 근저당권에 기한 경매라면 증액분을 원래 보증금과 똑같이 매수인 인수액으로 잡는 것도, 아무 검토 없이 전액 배당된다고 놓는 것도 맞지 않습니다. 매각물건명세서의 임차인 기재, 현황조사서, 임차인의 권리신고 및 배당요구 내용, 계약서 사본을 함께 봐야 합니다. 서류 사이 금액이 다르면 입찰 전에 그 이유부터 확인합니다.
배당요구 종기도 중요합니다. 우선변제권이 있다고 해서 경매 절차에서 저절로 배당표에 반영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 판례는 배당요구가 필요한 채권자가 종기까지 적법하게 요구하지 않으면 배당받을 수 없고, 일부 금액만 요구한 뒤 종기가 지나 추가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임차인이라면 최초 보증금과 증액분을 빠뜨리지 않고 신고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입찰자라면 신고 금액과 계약서 금액이 다른 이유를 확인해야 합니다.
보증금을 올리기 전에도 등기부를 다시 본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집주인이 보증금 2천만 원을 올려 달라고 할 때 계약서 문구부터 고치기 쉽습니다. 저는 그 전에 등기부를 다시 봅니다. 처음 계약할 때 없던 근저당권이 생겼다면 추가로 맡길 돈의 위치가 달라집니다. 시세가 올랐어도 선순위 채권이 두꺼워졌다면 경매 때 증액분을 돌려받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감정가보다 보수적인 매각 예상액을 놓고 앞선 채권을 빼 보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증액하기로 했다면 기존 계약의 날짜와 보증금, 추가 금액과 지급일이 드러나게 문서를 남기고 증액 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받는 게 좋습니다. 송금 내역도 보관합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일정한 사정 변화에 따른 증액청구에 시기와 비율의 제한을 두고 있으니, 집주인이 요구한 금액을 그대로 받아들일 일도 아닙니다. 다만 임대차 유형과 갱신 방식에 따라 적용 문제는 달라질 수 있어 계약 상황을 함께 봐야 합니다.
경매에서는 보증금 총액보다 그 돈이 들어온 순서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임차인 보증금이 늘어난 물건을 만나면 입찰가 계산표에 처음 맡긴 돈과 추가한 돈을 별도 줄로 적습니다. 그 두 줄을 구분할 자료가 모자라면, 싸 보이는 가격도 제게는 아직 입찰할 가격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