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티빙을 켜고 일본 드라마를 고르다가 작품 소개만 한참 읽었다. 보고 싶은 장르는 분명한데, 그날의 기분에 맞는 작품은 또 다른 문제였다. 같은 ‘재미있는 일드’라도 퇴근 후 멍하니 보고 싶은 날과 다음 화가 궁금해 잠을 미루고 싶은 날의 선택은 달라진다. 그래서 티빙에서 확인되는 작품 가운데, 어떤 밤에 잘 맞는지를 기준으로 골랐다. 아래 소개에는 이야기의 출발점만 담았다.
아무 일도 더 겪고 싶지 않은 밤
고독한 미식가 시즌1은 수입 잡화상을 운영하는 이노가시라 고로가 일을 마친 뒤 혼자 식당을 찾는 이야기다. 큰 갈등이나 반전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메뉴를 고르고, 한입 먹고, 속으로 감상을 늘어놓는 시간이 거의 전부인데 이상하게 계속 보게 된다. 하루 종일 사람을 상대해 대화 많은 드라마가 버거울 때 잘 맞는다. 다만 촘촘한 서사나 인물의 성장을 기대하면 심심할 수 있다. 처음이라면 시즌1부터 시작하는 편이 고로 특유의 혼잣말과 느긋한 리듬에 익숙해지기 좋다.
어제 뭐 먹었어?는 함께 사는 두 남자가 장을 보고 식사를 차리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고독한 미식가가 혼자 먹는 한 끼의 자유에 가깝다면, 이 작품은 누군가와 계속 밥을 먹는 일의 다정함과 어려움을 보여준다. 요리 장면을 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더 오래 남는 건 식탁 밖의 생활이다. 서로 다른 성격 때문에 생기는 작은 서운함, 말로 다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배려가 차곡차곡 쌓인다. 자극적인 로맨스보다 오래된 관계의 온도가 궁금한 사람에게 권한다.
웃고 싶은데 가벼운 이야기만은 싫을 때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는 계약 결혼에서 출발하는 러브 코미디다. 설정만 들으면 익숙한 동거 로맨스처럼 보인다. 그런데 함께 살며 집안일과 관계의 규칙을 맞춰 가는 장면이 생각보다 현실적이다. 아라가키 유이와 호시노 겐의 어색한 거리감도 이 작품의 매력이다. 빠르게 불붙는 연애보다 두 사람이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좋아한다면 잘 맞는다. 반대로 시작부터 진한 감정 표현을 원한다면 초반의 조심스러운 호흡이 느리게 보일 수 있다.
컨피던스맨 JP는 사기꾼 세 사람이 욕망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상대로 판을 짜는 코미디다. 앞의 작품이 작은 표정 변화를 보는 재미라면, 이쪽은 크게 벌인 소동을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나가사와 마사미가 연기하는 다코의 과장된 에너지가 취향에 맞으면 첫 화부터 속도가 붙는다. 매회 새로운 계획이 펼쳐져 가볍게 한 편을 틀기에도 좋다. 다만 현실적인 범죄극을 기대하기보다는, 끝까지 장난스럽게 밀어붙이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편이 즐겁다. 반전이 재미의 일부라 줄거리 소개는 짧게 읽고 시작하길 권한다.
인물에게 마음을 주고 싶거나 사건에 빠지고 싶다면
일요일 밤 정도는…은 서로 모르고 살던 세 여성이 라디오 방송을 계기로 만나는 이야기다. 각자 돌봄, 생계, 가족 문제를 안고 있어 첫인상이 마냥 밝지는 않다. 그런데 이 작품은 누군가의 어려움을 극적인 사건 하나로 해결하지 않는다. 지친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뒤 일상에 생기는 변화를 천천히 따라간다. 우정 드라마를 좋아하지만 지나치게 들뜬 분위기는 부담스러운 사람에게 맞는다. 특히 주말이 끝나갈 때 보면 제목의 ‘일요일 밤’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
MIU404는 기동수사대의 두 형사가 한 팀이 되어 사건을 해결하는 버디물이다. 두 사람의 성격 차이가 장면마다 속도를 만든다.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이들이 왜 서로에게 필요한지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수사물은 보고 싶지만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만 계속되는 건 피하고 싶을 때 좋은 선택이다. 다만 매회 사건만 깔끔하게 끝나는 가벼운 드라마로 생각하면 후반의 감정선이 예상보다 진하게 다가올 수 있다.
테세우스의 배는 아버지의 누명을 밝히려던 주인공이 과거로 가게 되면서 시작하는 미스터리다. 가족 이야기와 시간 이동, 오래된 사건의 진상이 한데 묶여 있어 앞의 여섯 작품보다 집중해서 볼 필요가 있다. ‘한 화만 더’가 목적이라면 이쪽이다. 누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따라가는 재미가 크므로 인물 관계를 검색하기보다 첫 화부터 보는 편이 낫다. 사건의 출발점 외에는 미리 알고 들어갈 이유가 없다.
티빙에서 고를 때 한 번 더 확인할 것
티빙에서 작품 페이지가 보이더라도 실제 시청 가능 여부와 이용권 조건은 재생 전에 확인하는 게 좋다. 편성이나 제공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제목이 비슷한 특별편과 본편도 섞여 있으니, 처음 보는 작품이라면 시즌과 회차를 먼저 확인하자. 고독한 미식가처럼 시즌이 많은 작품은 특히 그렇다.
오늘 정말 지쳤다면 고독한 미식가, 다정한 관계가 보고 싶다면 어제 뭐 먹었어?나 일요일 밤 정도는…을 먼저 고르겠다. 웃으며 속도를 올리고 싶다면 컨피던스맨 JP, 사건 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싶다면 테세우스의 배다. 평점보다 지금 내게 필요한 리듬을 생각하면, 다음 한 편을 고르는 시간이 훨씬 짧아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