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새로 공개된 작품을 고를 때는 예고편보다 인물 관계부터 찾아보게 됩니다. 디즈니+ 시리즈 <재혼 황후>도 그렇더군요. 황후와 황제, 다른 나라의 왕자에 새로 황궁에 들어온 인물까지 얽혀 있어서 이름만 외우면 오히려 헷갈립니다. 재혼황후 등장인물은 ‘누가 어느 자리에 있고, 그 자리를 누가 흔드는가’로 보면 훨씬 쉽게 들어옵니다.
이야기를 움직이는 네 사람
중심에는 동대제국 황후 나비에가 있습니다. 신민아가 연기하는 나비에는 황제의 배우자이면서 나라의 일을 책임져 온 인물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작품 소개도 그를 뛰어난 킹메이커로 설명합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이혼을 통보받는 일은 사적인 이별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동안 지켜 온 역할과 입지가 한꺼번에 흔들리는 사건이죠.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모습도 이 배경을 알고 보면 조금 다르게 읽힙니다.
주지훈이 맡은 소비에슈는 동대제국 황제이자 나비에의 남편입니다. 두 사람이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는 점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은 소비에슈가 황궁의 규칙을 바꿀 힘을 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라스타에게 마음을 두고 나비에에게 이혼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그의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의 신분과 생활까지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관계는 단순한 삼각관계보다 무겁습니다.
이세영이 연기하는 라스타는 도망 노예 출신으로 황궁에 들어옵니다. 처음부터 나비에와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는 인물은 아닙니다. 황제의 총애를 얻으며 자신의 자리를 넓혀 가지만, 불안정한 신분과 과거도 함께 따라옵니다. 겉으로 보이는 순진함만으로 판단하기보다, 라스타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 수 있는 처지인지 살피면 행동의 이유가 더 또렷해집니다.
이종석이 맡은 하인리는 서왕국의 왕자입니다. 나비에가 이혼을 받아들이면서 그의 이름을 꺼내 재혼 승인을 요구하기에,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는 인물이 됩니다. 나비에에게 관심을 보이는 모습과 별개로 다른 나라의 왕족이라는 위치도 중요합니다. 두 사람의 만남은 로맨스인 동시에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맞닿는 지점입니다.
나비에와 소비에슈의 곁에는 누가 있나
조연은 어느 황실에 속해 있는지만 기억해도 충분합니다. 이봉련이 연기하는 엘리자 부인은 나비에가 머무는 서궁의 시녀장입니다. 황후를 가까이에서 보필하기 때문에 공식 석상에서 드러나지 않는 나비에의 상태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봅니다. 반대로 남윤호가 맡은 랑트 후작은 황제 소비에슈를 보좌합니다. 황제와 황후 사이가 틀어질수록 두 사람을 모시는 이들의 위치도 편하지만은 않겠죠.
하인리 곁의 맥켄나는 최대훈이 연기합니다. 비서이면서 사촌이라 왕자에게도 거리낌 없이 말을 건네는 인물입니다. 네 주인공이 팽팽하게 대치할 때 맥켄나의 반응을 보면 하인리가 공적인 자리 밖에서는 어떤 사람인지 가늠하기 좋습니다. 이름이 한꺼번에 나오면 ‘엘리자는 나비에, 랑트는 소비에슈, 맥켄나는 하인리의 곁’이라는 세 연결만 먼저 기억해 두면 됩니다.
라스타의 과거와 황궁의 권력 다툼
박호산이 맡은 로테슈 자작은 라스타의 과거를 아는 인물입니다. 라스타가 지금 황궁에서 얻은 자리가 안전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 주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그가 등장할 때 두 사람이 과거에 어떤 관계였는지, 라스타가 왜 경계하는지에 주목하면 됩니다. 구체적인 사연을 미리 찾아보지 않아도 갈등을 따라가는 데 무리는 없습니다.
정영주가 연기하는 알바니 부인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라스타에게 다가가는 행동을 호의만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황궁에서는 누군가의 편에 서는 일이 곧 자기 가문의 힘을 되찾을 기회가 될 수 있으니까요. 이 작품에서 인물들은 사랑이나 질투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신분, 가문, 황제와의 거리까지 계산에 들어간다는 점이 관계를 더 복잡하게 만듭니다.
원작을 몰라도 따라갈 수 있을까
<재혼 황후>는 알파타르트의 웹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네이버웹툰에서는 히어리와 숨풀이 참여한 웹툰으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웹툰 본편은 247화에서 끝났고 이후 외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미 원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장면의 표현과 배우들의 해석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겠지만, 드라마를 먼저 본다면 네 사람의 출발점만 알아도 충분합니다.
나비에와 소비에슈는 부부, 소비에슈와 라스타의 관계는 이혼의 계기, 하인리는 나비에가 새 길을 택할 때 연결되는 인물입니다. 이 세 줄을 머릿속에 두고 보면 화려한 의상과 낯선 황실 호칭 사이에서도 이야기가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저는 특히 나비에가 상처를 받은 뒤에도 자기 자리를 어떻게 스스로 선택하는지 지켜보는 쪽이 궁금합니다. 인물의 편을 미리 정하기보다 각자가 가진 힘과 두려움을 함께 보는 편이 이 드라마를 더 흥미롭게 만들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