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담실에서 가장 자주 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예금 금리를 0.2%포인트 더 받으려고 여러 은행을 비교하면서, 연 7% 대출은 그대로 두는 겁니다. 재테크는 수익률 높은 상품을 고르는 일보다 내 돈이 어디서 새는지 확인하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순서를 바꾸면 같은 월급으로도 남는 돈이 달라집니다.
1. 저축액보다 한 달 잔액을 먼저 본다
월급이 350만 원인 직장인이 매달 100만 원을 적금에 넣는다고 해보죠. 주거비와 대출 상환액 150만 원, 생활비 120만 원, 보험료 35만 원을 쓰면 남는 돈은 마이너스 55만 원입니다. 적금은 유지해도 카드값을 이월하거나 비상금을 꺼내 쓰게 됩니다. 이 상태에서는 적금액이 아니라 매달 반복되는 지출부터 손봐야 합니다.
저는 상담할 때 최근 3개월의 통장과 카드 내역에서 고정비, 변동비, 일회성 지출을 나눠 봅니다. 자동차보험처럼 1년에 한 번 내는 돈도 월평균으로 환산합니다. 연 120만 원이면 매달 10만 원씩 따로 모아야 다음 납부 때 적금을 깨지 않습니다. 월급날 자동이체 금액은 이렇게 계산한 지출을 뺀 뒤 정하는 편이 오래 갑니다.
2. 예금 금리와 대출 금리를 세후 기준으로 비교한다
예를 들어 1,000만 원을 연 3% 정기예금에 넣으면 1년 이자는 세전 30만 원입니다. 일반적인 이자소득 원천징수 15.4%를 적용하면 손에 쥐는 금액은 약 25만 3,800원입니다. 같은 기간 연 7% 대출 1,000만 원을 유지하면 단순 계산한 이자는 70만 원입니다. 차이는 약 44만 6,200원입니다. 국세청의 이자소득 세율 안내를 계산에 반영한 수치이며, 실제 이자는 납입일과 상환 방식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래서 여유자금을 투자하기 전에는 대출별 금리와 남은 기간을 적어 봅니다. 다만 예금을 전부 깨서 갚을 일은 아닙니다. 중도해지로 줄어드는 이자, 대출의 중도상환수수료, 당장 쓸 현금을 함께 계산해야 합니다. 특히 대출을 갚고 나서 생활비가 부족해 다시 비싼 신용대출을 받는다면 숫자상 이득이 사라집니다.
3. 비상금은 수익률보다 꺼내 쓰기 쉬운지가 중요하다
월 필수지출이 200만 원인 가정이라면 3개월치는 600만 원, 6개월치는 1,200만 원입니다. 소득이 일정한 맞벌이와 수입 변동이 큰 자영업자에게 같은 금액을 권할 수는 없습니다. 부양가족이 있거나 이직을 앞뒀다면 여유 기간을 더 길게 잡는 쪽이 마음도 편합니다.
비상금은 갑자기 필요한 돈이므로 만기가 긴 상품에 전액 묶어 두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입출금이 쉬운 계좌와 만기가 짧은 예금으로 나누면 접근성과 이자를 함께 챙길 수 있습니다. 금리가 조금 높아 보여도 우대 조건을 채우기 어렵거나 중도해지 이율이 낮다면 비상금 용도에는 맞지 않습니다. 예금보험이 적용되는 상품인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금융위원회 안내에 따르면 보호 한도는 금융회사별 1인당 원금과 이자를 합해 1억 원입니다.
4. 적금의 최고금리보다 실제 받는 이자를 계산한다
광고에 연 5%가 적혀 있어도 모든 납입금이 1년 내내 그 금리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매달 50만 원씩 12개월 넣는 적금을 생각해 보죠. 첫 납입금은 약 12개월 동안 이자가 붙지만 마지막 납입금은 약 1개월만 붙습니다. 월 단위로 단순 계산하면 세전 이자는 약 16만 2,500원입니다. 총 납입액 600만 원에 5%를 곱한 30만 원과는 차이가 큽니다. 실제 지급액은 납입일과 상품의 이자 계산 방식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대금리 조건도 숫자로 바꿔 보세요. 급여이체, 카드 사용, 자동납부를 모두 채워야 최고금리를 주는 상품이라면 조건을 맞추느라 쓰는 돈이 추가 이자보다 클 수 있습니다. 카드 실적을 채우려고 매달 2만 원을 더 쓰는데 연간 추가 이자가 1만 원이라면 손해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기본금리가 분명하고 조건이 단순한 상품이 더 낫습니다.
5. 보험과 연금은 돈을 묶는 기간까지 생각한다
보험은 저축의 빈자리를 채우는 상품이 아닙니다. 한 상담 사례를 가정해 월 보험료가 40만 원이고 실제로 필요한 보장에 쓰는 돈은 25만 원이라고 해보죠. 차액 15만 원은 1년에 180만 원입니다. 그렇다고 기존 계약을 곧바로 해지해서는 안 됩니다. 나이와 건강 상태가 달라졌다면 같은 보장에 다시 가입하기 어렵거나 보험료가 더 비쌀 수 있습니다. 보장 내역, 갱신 여부, 해약환급금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연금도 세제 혜택만 보고 생활비까지 넣으면 곤란합니다. 오래 묶어 둘 돈을 넣는 구조이므로 가까운 시기에 주택자금이나 교육비가 필요하다면 그 자금부터 분리해야 합니다. 제 가족이라면 비상금과 비싼 부채를 먼저 점검하고, 그다음 장기간 꺼내지 않아도 되는 금액만 연금에 배정하겠습니다.
재테크가 잘되고 있는지는 가입한 상품 수로 알기 어렵습니다. 월급날부터 다음 월급날까지 현금이 얼마나 남는지, 대출 이자가 얼마나 줄었는지, 급할 때 쓸 돈이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 수익률 몇 줄보다 그 숫자들이 생활을 더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