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샤워를 마치고 배수구를 봤는데 머리카락이 유난히 많아 보였다. 드라이할 때도 몇 가닥씩 날리니 괜히 정수리를 거울에 비춰보게 됐다. 탈모가 시작된 걸까 싶었지만, 배수구에 모인 머리카락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는 걸 알았다. 매일 감던 머리를 하루 건너 감으면 빠진 머리카락이 한 번에 보여 더 많아 보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머리카락을 세는 대신, 어디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기록하는 방법을 택했다. 샴푸를 바꾸거나 영양제를 사기 전에 내 머리 상태부터 확인하고 싶었다.
빠진 개수보다 달라진 자리를 봤다
서울아산병원과 피부과 전문 정보 서비스 DermNet의 안내를 보면, 하루에 머리카락 50~100가닥 정도가 빠지는 건 자연스러운 범위다. 다만 이 숫자를 매일 정확히 세기는 어렵다. 머리를 감거나 빗는 간격에 따라 눈에 보이는 양이 달라지고, 바닥에 떨어진 것까지 모두 모을 수도 없다.
사진은 같은 조건에서 비교하기 쉬웠다. 주 1회, 머리가 완전히 마른 뒤 같은 조명 아래에서 이마선과 정수리를 찍었다. 가르마 위치도 맞췄다. 젖은 머리에서는 두피가 더 드러나고, 조명 방향만 바뀌어도 가르마가 넓어 보였기 때문이다. 첫 사진 한 장을 확대하며 걱정하기보다 몇 주 간격의 사진을 나란히 놓는 편이 변화를 읽기 좋았다.
기록할 때는 빠진 양뿐 아니라 모발 굵기도 봤다. 예전보다 이마선이 뒤로 밀리는지, 정수리 모발이 가늘어지는지, 가르마가 점점 넓어지는지가 더 구체적인 단서다. 반대로 어느 날 배수구에 많이 모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탈모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모양에 따라 짚어볼 원인이 달랐다
머리가 빠지는 모습은 생각보다 제각각이다. 이마선이나 정수리에서 서서히 숱이 줄고 모발이 가늘어지는 경우는 남성형·여성형 탈모에서 흔히 보이는 양상이다. 동전처럼 둥글게 비는 부위가 생기면 원형 탈모를 의심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갑자기 많이 빠진다면 최근 몸 상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심한 열병, 수술, 출산, 급격한 체중 감량 같은 일이 있었는지 달력에 표시해두면 도움이 된다. 휴지기 탈모는 원인이 된 사건 직후가 아니라 대개 2~4개월 뒤에 빠짐이 늘어날 수 있다고 DermNet은 설명한다. 그래서 이번 주에 바꾼 샴푸만 탓하다가 몇 달 전의 변화를 놓치기 쉽다. 복용을 시작하거나 중단한 약이 있다면 그것도 진료 때 말할 만한 정보다.
원인을 혼자 맞히려 하지는 않았다. 비슷하게 숱이 줄어 보여도 휴지기 탈모와 여성형 탈모가 겹치거나 헷갈릴 수 있다. 두피가 붉고 아프거나, 각질·진물이 생기거나, 빈 부위가 빠르게 넓어진다면 사진만 찍으며 기다릴 일이 아니다. 이런 변화는 피부과에서 두피 상태를 확인받는 편이 낫다.
샴푸와 영양제는 기대치를 낮춰 봤다
탈모를 검색하면 샴푸부터 영양제까지 선택지가 끝없이 나온다. 솔직히 가장 손쉬워 보이는 건 샴푸 교체였다. 그런데 샴푸는 두피를 씻는 제품이고, 그것만으로 모든 탈모의 원인을 해결한다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두피가 자극받지 않게 감고 충분히 헹구는 건 할 수 있지만, 특정 제품을 쓴 뒤 배수구의 머리카락이 줄었다는 느낌만으로 효과를 판단하기도 어렵다.
영양제도 마찬가지였다. 식사가 부족하거나 특정 영양소가 모자란 경우라면 그 문제를 확인하는 게 먼저다. 이미 골고루 먹고 있는데 ‘탈모용’이라는 말만 보고 여러 제품을 겹쳐 먹을 이유는 찾기 어려웠다. 무리한 다이어트를 멈추고 식사와 수면을 챙기는 일은 몸 상태를 돌보는 데 의미가 있지만, 그것만으로 유전적 영향을 받는 탈모가 되돌아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치료가 필요한 탈모라면 방법도 유형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미녹시딜을 바르거나 처방약을 쓰는 방법이 있지만, 누구에게나 같은 약이 맞는 건 아니다. 임신 가능성이나 다른 질환, 복용 중인 약도 고려해야 한다. 제품을 이것저것 바꾸기 전에 진단을 받는 쪽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겠다 싶었다.
진료를 받기로 했다면 가져갈 기록
병원에 갈 때 ‘많이 빠져요’라는 말만 하는 것보다 변화가 시작된 시기와 사진을 보여주는 편이 구체적이다. 나는 기록 항목을 네 가지로 좁혔다.
- 이마선·가르마·정수리를 같은 조건에서 찍은 사진
- 빠짐이 늘었다고 느낀 시점과 그 전후의 몸 상태
- 최근의 체중 변화, 식사 변화, 출산·수술·질병 여부
- 복용 중인 약과 새로 쓴 두피 제품
한 달 기록만으로 탈모 여부를 판정할 수는 없다. 그래도 사진을 찍고 나니 막연히 불안해하며 머리카락을 세는 시간이 줄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매일 배수구를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변화를 차분히 확인하고 걱정스러운 양상이 이어지면 진료를 받는 일이다. 머리카락 몇 가닥보다 내 머리의 흐름을 보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