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손님이 콜롬비아 수프리모를 사 가면서 물었습니다. “이건 원두가 크니까 맛도 더 진한가요?” 봉투에 적힌 이름만 보면 그럴 법합니다. 그런데 수프리모는 맛의 이름이 아니라 생두 크기를 가리키는 분류입니다. 그 차이를 알고 나면 원두를 고를 때도, 집에서 내릴 때도 기준이 조금 선명해집니다.
수프리모는 어떤 원두를 뜻할까
콜롬비아 커피생산자연합회는 수프리모를 주로 스크린 17 이상의 체에 남는 큰 생두로 설명합니다. 스크린 숫자는 생두를 거르는 체 구멍의 크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니 ‘콜롬비아 수프리모’라는 표기는 산지와 크기 분류를 알려줄 뿐, 품종이나 로스팅 정도를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큰 생두를 골라 크기가 비슷한 원두끼리 볶으면 열을 받는 양상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됩니다. 로스터에게는 반가운 조건이지요. 하지만 크기만으로 향미나 품질이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같은 수프리모라도 생산 지역, 품종, 가공 방식, 수확 상태에 따라 컵의 인상이 달라집니다. 큰 원두라서 반드시 진하거나, 작은 원두보다 무조건 비싸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고소함과 산미는 어디서 갈릴까
제 로스터리에서 접한 콜롬비아 수프리모 중에는 밀크초콜릿 같은 단맛에 견과류 향이 붙고, 식으면서 사과나 감귤을 떠올리게 하는 산미가 살아나는 원두가 많았습니다. 손님들이 ‘편하게 마시기 좋다’고 말하는 경우도 이런 균형 때문일 겁니다. 다만 이 맛을 모든 수프리모의 공통된 특징으로 생각하면 실제 컵과 어긋날 수 있습니다.
가령 같은 콜롬비아 원두라도 연하게 볶으면 과일 향과 산미가 더 또렷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볶으면 초콜릿, 캐러멜, 구운 견과류 쪽으로 무게가 옮겨갑니다. 가공 방식도 영향을 줍니다. 워시드 원두는 맛의 윤곽이 비교적 깔끔하게 드러나는 편이고, 다른 방식으로 가공한 원두는 단맛이나 과일 향의 인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포장지에서 ‘수프리모’ 다음으로 로스팅 정도와 향미 설명을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집에서 맛을 확인하는 추출 기준
처음 내릴 때는 복잡한 기술보다 기준이 되는 한 잔이 필요합니다. 드리퍼를 쓴다면 원두 20g에 물 300g, 물 온도는 92~94℃에서 시작합니다. 중간 정도로 분쇄한 뒤 물 40g을 부어 원두 전체를 적시고 30초 기다립니다. 남은 물은 두세 번에 나누어 천천히 붓고, 전체 추출이 대략 2분 30초에서 3분 30초 사이에 끝나도록 맞춥니다. 이 수치는 정답이 아니라 원두를 비교하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한 모금 마셨을 때 시고 얇다면 우선 분쇄도를 조금 더 곱게 바꿔봅니다. 반대로 혀에 거친 쓴맛이 오래 남고 뒷맛이 답답하다면 조금 굵게 갑니다. 물 온도까지 동시에 바꾸면 무엇 때문에 맛이 달라졌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스페셜티커피협회가 제시하는 추출 자료도 원두 양, 물 양, 온도, 시간을 함께 다룹니다. 집에서는 그중 한 가지씩 움직여야 내 취향의 지점을 찾기 쉽습니다.
프렌치프레스가 있다면 원두 20g에 물 320g, 93℃ 안팎으로 4분 정도 우려 시작해도 좋습니다. 종이 필터로 거른 커피보다 질감이 두툼하고, 같은 원두의 고소한 느낌이 더 넓게 퍼질 수 있습니다. 드리퍼와 프렌치프레스 중 어느 쪽이 수프리모에 더 맞는지는 취향의 문제입니다. 장비를 새로 사기 전에 지금 가진 기구로 물과 원두의 비율부터 일정하게 맞춰보는 편이 낫습니다.
살 때는 이름보다 날짜를 먼저 본다
손님이 집에서는 향이 약하다고 할 때 제가 가장 먼저 묻는 건 로스팅 날짜입니다. ‘수프리모’라고 크게 쓰인 봉투라도 볶은 지 오래됐거나 이미 분쇄된 상태로 오래 보관했다면 처음 기대한 향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스페셜티커피협회는 원두 상태와 보관 환경, 산소 노출에 따라 신선도가 달라진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하면 볶은 날짜가 적힌 홀빈을 사고, 마시기 직전에 필요한 만큼만 갈 것을 권합니다.
처음부터 1kg을 사기보다 200~250g 정도로 시작하면 취향을 확인하고 향이 살아 있을 때 마시기 편합니다. 봉투를 열었다면 공기를 최대한 줄여 밀폐하고, 직사광선과 열을 피해 보관합니다. 냉장고에 넣었다 꺼내기를 반복하면 온도 차로 생기는 습기와 냄새가 신경 쓰일 수 있으니, 매일 마실 분량은 서늘한 곳에 두는 편이 다루기 쉽습니다.
콜롬비아 수프리모 특징을 한 잔에서 확인하려면 큰 생두라는 표기보다 그 원두가 어떻게 볶였고 언제 볶였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저는 처음 마시는 수프리모를 내릴 때 비율을 일정하게 잡고, 따뜻할 때 한 번, 조금 식었을 때 한 번 더 맛봅니다. 처음엔 고소함만 느꼈던 컵에서 가벼운 과일 향이 올라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작은 차이를 알아차리는 일이 좋은 장비를 들이는 것보다 커피를 더 재미있게 만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