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동에서 환자분께 설사가 언제 시작됐는지 여쭤보면, 가장 먼저 어제 드신 음식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같은 음식을 먹은 가족은 멀쩡하고, 본인만 아픈 일도 흔합니다. 장염 원인을 한 끼 식사로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먹은 음식만 떠올리면 놓치는 원인이 있습니다
급성 설사와 구토의 흔한 원인은 바이러스 감염과 식중독입니다. 노로바이러스는 오염된 음식이나 물뿐 아니라 아픈 사람의 손, 함께 쓰는 물건을 통해서도 퍼집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노로바이러스 증상은 노출 뒤 보통 12~48시간에 시작합니다. 어젯밤 음식이 의심되더라도 그보다 앞선 접촉이 원인일 수 있다는 뜻이지요.
세균이나 세균이 만든 독소도 원인이 됩니다. 덜 익힌 고기와 달걀, 오염된 채소나 물 등 감염 경로는 다양하고, 균에 따라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몇 시간에서 며칠이 걸립니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섭취량과 건강 상태가 달라 증상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설사와 함께 열이나 심한 복통이 있거나 피가 섞여 나온다면 단순한 배탈로 넘기지 않아야 합니다.
설사가 모두 감염성 장염은 아닙니다
검진센터에서도 ‘장염이 자꾸 재발한다’며 오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더 들어보면 우유를 마신 뒤에만 증상이 생기거나, 새 약을 먹기 시작한 시점과 설사가 겹치는 경우가 있었지요. 유당불내증 같은 음식 불내성, 항생제를 포함한 약의 부작용도 설사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항생제 사용 뒤에는 장내 균의 균형이 달라져 별도의 감염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먹은 음식만 적기보다 복용 중인 약과 시작 날짜, 증상이 반복되는 상황을 함께 기록해 두는 편이 진료에 도움이 됩니다. 처방받은 약을 임의로 끊지는 마세요. 특히 설사가 오래가거나 되풀이된다면 장의 다른 질환이 있는지도 의사가 판단해야 합니다. 증상만 보고 원인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집에서는 원인 찾기보다 탈수부터 살피세요
장염으로 힘들어하는 분을 볼 때 제가 먼저 확인하는 것은 화장실에 간 횟수만이 아닙니다. 물을 마실 수 있는지, 소변은 평소처럼 보는지, 일어설 때 어지러운지가 더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설사와 구토가 겹치면 수분과 전해질을 함께 잃기 때문입니다.
구역질이 난다면 물을 한꺼번에 많이 마시기보다 조금씩 자주 마시는 편이 낫습니다. 설사가 잦거나 고령이라면 약국에서 구할 수 있는 경구수분보충액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식욕이 돌아오면 무조건 굶기보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조금씩 드셔도 됩니다. 미국 국립당뇨병·소화기병·신장질환연구소도 바이러스성 장염에서 수분 보충을 우선으로 안내합니다.
반면 열이 나거나 혈변이 있을 때 설사 멎는 약부터 복용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원인에 따라 적절한 처치가 다릅니다. 항생제도 바이러스에는 효과가 없으니 ‘장염이면 항생제’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몸이 회복되는 동안에는 비누와 물로 손을 꼼꼼히 씻고, 구토나 설사가 멈춘 뒤에도 최소 48시간은 다른 사람의 음식을 만들지 않는 것이 전파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럴 땐 진료를 받으세요
피가 섞인 변이나 검고 끈적한 변, 심한 복통, 약 39도 이상의 고열이 있다면 진료를 서두르세요. 물을 마셔도 계속 토하거나 소변이 눈에 띄게 줄고, 입이 바짝 마르며 일어설 때 어지러운 경우도 탈수 신호일 수 있습니다. 정신이 흐릿하거나 기운이 없어 잘 반응하지 않는다면 바로 응급 진료가 필요합니다.
성인에서 설사가 이틀 넘게 이어지거나 하루에 묽은 변을 여섯 번 이상 본다면 진료를 받아 원인과 탈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영유아, 고령자, 임신부, 면역력이 약한 분, 다른 질환으로 치료 중인 분은 더 일찍 의료진과 상의해야 합니다. 특히 아이는 소변을 보는 기저귀가 줄거나 눈물 없이 울고 처지는 모습을 가볍게 보지 마세요.
장염 원인을 정확히 아는 일도 중요하지만, 증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살피는 일이 더 급할 때가 있습니다. ‘어제 뭘 잘못 먹었나’만 생각하며 버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마실 수 있는 양과 소변량, 열, 변의 상태를 살피다가 위와 같은 변화가 보이면 진료를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