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11월 1일 낮 12시, 울산광역시 남구 용연서원에서 울산학춤보존회의 정기공연 ‘시대를 잇는 문화 행렬 울산학춤’이 열렸다. 울산 고유의 전통춤을 시민과 나누고 미래 세대에 전하기 위해 마련된 무대다.
공연 장소인 용연서원은 조선 최초의 통신사로 알려진 울산 출신 충숙공 이예 선생을 기리는 공간이다. 오랜 역사를 품은 서원에 전통 가락이 퍼지고 흰 도포 자락이 바람을 타면서, 공연의 주제와 장소가 자연스럽게 맞물렸다. 관객에게 차를 대접하는 자리도 마련돼 고즈넉한 현장 분위기를 더했다.
대취타로 연 공연의 문
첫 순서는 다섯 명의 취타대가 연주한 대취타였다. 관악기와 타악기가 함께 빚어낸 묵직한 가락이 서원에 울려 퍼지자 공연장은 장중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대취타는 전통적으로 왕과 고관의 행차, 외국 사신 영접, 군대 행진 등에 쓰인 음악이다. 힘차면서도 절도 있는 연주는 전통예술이 지닌 위엄과 기품을 보여주며 이날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 김영미가 안무한 태평무가 펼쳐졌다. 나라의 평안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뜻을 담은 춤으로, 절제된 몸짓과 섬세한 손놀림, 힘 있는 발디딤이 조화를 이뤘다.
장단을 따라 정교하게 이어지는 동작과 부드러운 손끝의 선은 한국무용 특유의 단아함을 드러냈다. 한 걸음마다 정성을 담은 듯한 움직임은 평안과 행복을 바라는 춤의 의미를 차분하게 전했다.
선비의 풍류와 북춤의 신명
박윤경 울산학춤보존회 회장은 호걸양반춤을 선보였다. 갓과 망건을 갖추고 도포를 입은 춤꾼은 장죽과 합죽선을 들고 조선 시대 양반의 풍류와 기개를 표현했다.
굿거리장단에 맞춘 춤사위에는 의연함과 여유가 함께 배어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서는 동작과 몸을 돌리는 움직임이 절도 있게 이어졌으며, 손끝의 선과 너울거리는 도포 자락은 양반춤의 멋과 품격을 선명하게 보여줬다.
김영미·김은주·강민경이 함께한 진도북춤은 무대에 활력을 더했다. 양손에 북채를 들고 북의 양쪽 면을 두드리는 쌍북채 춤으로, 여러 가락과 역동적인 몸짓이 이어졌다.
북채가 양쪽 북면을 빠르게 오가자 경쾌한 장단이 살아났다. 섬세한 잔가락과 힘찬 북소리가 교차하며 전통춤의 생동감과 역동성을 드러냈고, 공연의 흥도 한층 높아졌다.
절제된 교방춤과 설장구
최경미와 최현화는 교방타령춤을 무대에 올렸다. 김덕명에서 아들 김성수로 이어져 전승된 이 춤은 지나친 꾸밈을 덜어낸 단아한 몸짓과 토속적인 정서가 특징이다.
교방춤의 섬세한 춤사위에 무속적인 움직임이 어우러지면서 앞선 무대와 다른 분위기를 만들었다. 화려함을 앞세우기보다 소박하고 절제된 동작으로 춤의 정서를 전달해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전통 장단의 흥은 설장구로 이어졌다. 장고잽이는 여러 장구 가락과 역동적인 발림을 펼쳐 보였다. 장단의 빠르기와 힘이 변화할 때마다 무대의 흐름도 다채롭게 바뀌었다.
이어 강민경과 김영미, 김은주가 공연의 열기를 이어갔다. 출연자들의 동작과 장단이 맞물리면서 전통 타악이 지닌 신명과 춤의 움직임이 함께 살아났다.
전통 무대에 더한 핸드팬
차동혁의 핸드팬 연주는 전통악기 중심으로 이어진 공연에 새로운 음색을 더했다. 둥글고 독특한 형태의 악기에서 맑고 부드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손으로 악기를 두드릴 때 만들어지는 타악의 울림과 잔잔한 선율이 함께 이어졌다. 대취타와 북춤, 설장구에서 들려준 전통 장단과는 다른 결의 소리가 펼쳐지면서 공연의 음악적 폭을 넓혔다.
학의 생태를 춤으로 옮긴 울산학춤
공연의 중심이자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은 울산 고유의 전통춤인 울산학춤이었다. 울산학춤은 학의 생태와 움직임을 세밀하게 살핀 뒤 이를 사람의 몸짓으로 표현한 민속춤이다.
학이 날아오르고 내려앉는 모습, 주변을 살피고 먹이를 찾는 행동, 햇볕을 쬐는 모습 등이 춤사위로 재현됐다. 출연자들은 몸의 높낮이와 시선, 팔의 움직임, 도포 자락의 흐름을 활용해 자연 속 학의 움직임을 무대 위에 펼쳤다.
학의 행동을 그대로 흉내 내는 데 머무르지 않고, 절제된 인간의 몸짓으로 다듬어 표현한다는 점이 울산학춤의 특징이다. 유연하면서도 힘 있는 움직임은 학의 기품과 생태적 특성을 함께 보여줬다.
계변천신 설화에 담긴 뿌리
울산학춤의 문화적 뿌리에는 신라 시대 계변천신 설화가 자리한다. 『경상도지리지』와 관련 설화에는 계변성, 곧 오늘날 울산 일대에 두 마리의 학이 내려와 울고 간 뒤 이곳을 신학성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학과 관련된 울산 지역의 역사적 기억과 상징은 울산학춤을 이루는 문화적 토대가 됐다. 학은 예부터 고고한 기품과 장수, 신성함을 상징하는 존재로 여겨졌으며, 하늘과 땅을 잇는 매개자이자 인간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나타내기도 했다.
울산학춤은 이러한 학의 상징을 춤사위로 풀어낸다. 지역에 전해진 이야기와 학의 생태적 움직임, 전통복식과 한국무용의 표현이 한 작품 안에 어우러져 울산 고유의 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낸다.
탈 없이 표현하는 학의 자태
울산학춤은 학 탈을 쓰지 않는다. 대신 선비 복장을 갖추고 도포를 걸친 채 몸짓으로 학의 모습을 표현한다. 갓에는 붉은 천을 더해 학의 붉은 정수리를 나타내며, 팔과 몸의 선, 도포 자락의 움직임으로 날개와 학의 자태를 형상화한다.
흰 도포가 크게 펼쳐질 때는 학이 날개를 펴는 모습이 떠올랐고, 몸을 낮추거나 고개를 돌리는 동작에서는 주변을 살피는 학의 행동이 드러났다. 탈이나 직접적인 장치에 기대지 않고 사람의 움직임만으로 학의 생김새와 기품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울산학춤의 독특한 예술성이 나타났다.
이 춤은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김성수 선생의 연구와 재현을 통해 알려졌다. 김성수 선생은 울산학춤을 정립하고 전승하는 데 힘썼으며, 울산학춤보존회는 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전승자들이 함께 만든 마지막 무대
이날 울산학춤 무대에는 김성수 선생을 비롯해 김영미, 박윤경, 강정순, 최경미, 최현화, 김은주, 이나연 등 전승자들이 함께했다. 오랫동안 춤을 익힌 출연자들은 서로 호흡을 맞추며 학의 자태를 닮은 유연한 움직임과 절제된 춤사위를 선보였다.
여러 출연자의 흰 도포 자락이 동시에 펼쳐졌다가 차분히 내려앉는 장면에서는 울산학춤 특유의 집단적인 조화가 두드러졌다. 웅크린 몸이 다시 힘차게 솟아오르는 동작은 학이 땅을 딛고 날아오르는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울산학춤보존회는 앞으로 울산학춤 체조를 널리 보급해 전통예술의 대중화를 추진하고 지역 고유의 문화 정체성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민이 일상에서 울산학춤을 접하고 그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전승 활동을 이어간다는 취지다.
용연서원에서 되새긴 전통
공연이 열린 용연서원은 학성 이씨의 시조인 충숙공 이예 선생을 배향하는 공간이다. 조선 시대 대일 외교의 길을 개척하며 교류에 힘쓴 이예 선생의 삶과 업적을 알리는 홍보관도 조성돼 있다.
옛 선비의 풍류를 담은 춤과 학의 기품을 표현한 울산학춤은 용연서원의 차분한 풍경과 어우러졌다. 서원에 전통 가락이 흐르는 가운데 흰 도포 자락이 너울거렸고, 학의 날갯짓을 닮은 춤사위가 마지막 무대를 채웠다.
대취타의 장중한 울림으로 시작한 공연은 태평무와 호걸양반춤, 진도북춤, 교방타령춤, 설장구와 핸드팬 연주를 지나 울산학춤으로 마무리됐다. 서로 다른 성격의 음악과 춤이 차례로 이어지면서 전통예술의 다양한 움직임과 소리를 한 자리에서 보여줬다.
이번 정기공연은 울산학춤에 담긴 지역의 역사와 상징, 전승자들이 이어온 춤의 형식을 시민 앞에 펼쳐 보인 자리였다. 용연서원이라는 역사적 공간에서 학의 움직임을 담은 춤이 재현되며 울산 고유 전통문화의 전승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공연 장소
| 장소 | 용연서원 |
|---|---|
| 소재지 | 울산광역시 남구 이휴정길 20 |
| 공연 일시 | 2026년 11월 1일 낮 12시 |
| 공연 단체 | 울산학춤보존회 |
| 공연 주제 | 시대를 잇는 문화 행렬 울산학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