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리교실에서 수육을 같이 만들면 같은 고기를 써도 누구 것은 촉촉하고 누구 것은 바닥이 탑니다. 차이는 대개 물을 넣었느냐보다 냄비 크기와 불 세기에서 나요. 무수분 수육은 고기를 마른 냄비에 굽는 요리가 아닙니다. 양파와 채소가 내놓은 수분으로 고기를 천천히 익히는 방식이에요.
고기 800g에 맞는 재료와 냄비
돼지고기 앞다리살이나 통삼겹살 800g을 준비합니다. 앞다리살은 살코기와 지방이 고루 섞인 덩어리가 좋고, 통삼겹살은 모양이 일정한 것을 고르면 익는 시간을 맞추기 편해요. 고기가 너무 두꺼우면 400g씩 두 덩어리로 나누되, 두께는 5~6cm 정도로 맞춥니다.
- 돼지고기 800g
- 양파 2개 약 350~400g
- 대파 1대 약 100g
- 사과 1개 약 180g
- 마늘 8쪽 약 35g
- 소금 6g, 후춧가루 약간
양파가 이 레시피의 물 역할을 합니다. 사과는 향과 단맛을 보태지만 없어도 돼요. 사과를 빼면 양파를 반 개쯤 더 넣거나 배추 흰 부분 150g을 깔면 됩니다. 양파가 1개뿐이라면 배추 흰 부분이나 무를 200g 곁들이세요. 무는 수분이 나오기까지 조금 걸리니 0.5cm 두께로 얇게 썰어야 합니다.
냄비는 바닥이 두꺼운 20~22cm 크기에 뚜껑이 잘 맞는 것을 씁니다. 800g 고기에 냄비가 지나치게 크면 채소가 바닥에 얇게 퍼져 쉽게 타요. 얇은 냄비는 약불에서도 바닥 온도가 빠르게 올라가니 무수분으로 익히기 어렵습니다. 저는 수업에서 냄비를 먼저 확인하고 고기를 손질합니다.
바닥부터 쌓아야 채소 물이 고기를 익혀요
고기는 키친타월로 겉면의 핏물과 물기만 닦습니다. 물에 오래 담가 두면 고기 맛이 옅어져요. 소금 6g을 고기 전체에 고르게 문지르고 후추를 뿌린 뒤, 채소를 써는 동안 15~20분 둡니다. 소금은 고기 무게의 약 0.75%라서 그대로 먹어도 지나치게 짜지 않은 양이에요. 새우젓에 찍어 먹을 계획이라면 4g으로 줄여도 됩니다.
양파는 1cm 두께로 썰어 냄비 바닥에 빈틈없이 깝니다. 대파는 5cm 길이로 자르고, 사과는 씨를 빼고 굵게 썰어요. 양파 위에 대파와 사과 절반을 놓은 다음 고기를 올립니다. 남은 사과와 마늘은 고기 옆에 넣으세요. 마늘을 냄비 바닥에 먼저 두면 수분이 나오기 전에 갈색으로 타서 쓴맛이 납니다.
이 순서는 꽤 중요합니다. 양파가 바닥에서 먼저 뜨거워지며 물을 내고, 그 물이 끓어오르면서 고기 주변에 증기가 찹니다. 고기를 바닥에 바로 놓거나 채소를 전부 고기 위에 얹으면 아래쪽이 먼저 눌어붙어요. 냄비에 따로 물이나 술은 붓지 않습니다.
처음 7분과 그다음 50분은 불이 달라요
뚜껑을 닫고 중약불에서 5~7분 가열합니다. 가스레인지라면 불꽃이 냄비 바닥 밖으로 나오지 않을 정도예요. 냄비 안에서 지글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뚜껑 안쪽에 물방울이 맺히면 곧바로 약불로 낮춥니다. 인덕션은 기종마다 숫자가 달라서 눈금보다 이 소리와 물방울을 기준으로 삼는 편이 정확해요.
이후에는 약불로 익힙니다. 통삼겹살은 약 45~55분, 앞다리살은 약 55~65분이 출발점이에요. 처음 25분은 뚜껑을 열지 마세요. 막 생기기 시작한 증기가 빠지면 양파가 물을 내기 전에 바닥이 탈 수 있습니다. 25분 뒤 뚜껑을 살짝 열어 바닥에 채소 즙이 고여 있는지 확인하고, 고기를 한 번 뒤집습니다. 뚜껑을 다시 닫아 남은 시간을 익혀요.
시간만 믿고 불을 끄지는 않습니다. 가장 두꺼운 부분에 조리용 온도계를 찔러 중심 온도가 75℃ 이상인지 확인하세요. 온도계가 없다면 두꺼운 부분을 잘라 속까지 뜨겁게 익었는지 확인하되, 덜 익었다 싶으면 다시 뚜껑을 덮고 5~10분 더 가열합니다. 익힌 고기는 불을 끈 냄비에서 꺼내 10분 쉬게 한 뒤 결의 반대 방향으로 0.7~1cm 두께로 썰면 육즙이 덜 흘러나옵니다.
물이 부족하거나 고기가 퍽퍽할 때
가장 흔한 실패는 처음부터 센 불을 오래 쓰는 거예요. 양파가 물을 내기도 전에 갈색으로 타면 단맛 대신 쓴맛이 고기에 밸 수 있습니다. 가열을 시작한 지 7분쯤 됐는데 탄 냄새가 나고 물방울이 보이지 않으면 즉시 불을 낮추세요. 냄비 바닥에 국물이 거의 없다면 물 2~3큰술, 약 30~45mL를 가장자리로 넣고 뚜껑을 닫아 익힙니다. 이때는 엄밀히 말해 무수분 조리는 아니지만 고기를 살리는 편이 낫습니다. 까맣게 탄 채소는 긁어 섞지 말고, 고기만 다른 냄비로 옮기세요.
앞다리살이 퍽퍽하다면 불이 셌거나 너무 오래 익었을 수 있습니다. 썰어 놓은 고기에 냄비에 남은 채소 즙을 2~3큰술 끼얹고 5분 두면 먹기 한결 편해져요. 반대로 고기가 질기고 중심이 덜 익었다면 썰지 말고 통째로 다시 약불에 익힙니다. 양파 양이 적었는지, 냄비가 너무 넓었는지도 다음번에 함께 확인하세요.
남은 채소 즙은 체에 걸러 수육에 조금씩 곁들이면 좋습니다. 처음부터 고기에 양념을 많이 더하기보다 양파가 낸 국물 맛을 보고 간을 조절해요. 제가 여러 번 태워 보고 나서 지키게 된 것도 딱 두 가지입니다. 바닥에는 넉넉한 양파를 깔고, 물방울이 맺히는 순간 불을 낮추는 것. 그 두 지점을 잡으면 집에서도 촉촉한 수육이 꽤 안정적으로 나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