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찰장에서 ‘세입자는 곧 나간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계약 만료일을 다시 확인합니다. 임대차 3법이 시행된 뒤에는 만료일 하나만 보고 명도 시점을 잡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세입자가 갱신을 요구했는지, 낙찰자가 보증금을 떠안을 수 있는지에 따라 같은 집의 입찰가가 달라집니다.
계약 만료일이 곧 집을 비우는 날은 아니다
임대차 3법이라고 부르는 제도는 계약갱신요구권, 임대료 증액 제한, 주택 임대차 계약 신고를 가리킵니다. 경매에서는 앞의 두 가지가 점유 기간과 수익 계산에 바로 영향을 줍니다. 신고 여부도 임대차 내용을 확인할 때 참고할 자료입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임차인은 정해진 기간에 계약갱신을 한 차례 요구할 수 있고, 갱신되면 임대차 기간은 2년으로 봅니다. 요구할 수 있는 기간은 계약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입니다. 달력에 적힌 만료일만 보고 ‘낙찰 후 두 달이면 입주하겠지’라고 계산했다가는 이사 계획부터 어긋납니다.
묵시적 갱신과 갱신요구권 행사도 구별해야 합니다. 서로 갱신이나 종료 통지를 하지 않아 종전 조건으로 이어진 계약을, 임차인이 갱신요구권까지 쓴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갱신 계약서를 새로 썼다는 사실만으로 요구권이 남아 있다고 단정해도 위험합니다. 저는 계약서의 문구와 당사자가 주고받은 갱신 통지 내역을 함께 봅니다. 자료가 없으면 ‘권리를 이미 썼다’는 쪽으로 편하게 가정하지 않습니다.
5%라는 숫자만 넣으면 수익 계산이 틀어진다
현장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임대차 3법 때문에 전세금은 무조건 5%만 올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임차인이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해 갱신하는 경우, 차임과 보증금의 증액은 법에서 정한 범위를 따릅니다. 5%는 자동으로 올릴 수 있는 금액이 아니라 증액 상한입니다. 경제 사정의 변동 등 증액을 청구할 사유도 봐야 하고, 지역 조례가 더 낮은 상한을 정했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임차인이 요구권을 행사하지 않고 새 계약에 합의하는 경우까지 모두 같은 숫자로 계산해서는 안 됩니다.
가령 보증금 2억 원인 집을 낙찰받아 갱신 계약을 이어받는다고 해봅시다. ‘최대 1천만 원을 더 받겠네’라는 기대를 먼저 수익표에 쓰기 쉽습니다. 그런데 세입자가 증액에 동의하지 않거나 청구 요건을 다투면 그 돈이 예정일에 들어온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저는 추가 보증금을 받는 시나리오와 못 받는 시나리오를 따로 적습니다. 경락잔금대출 상환일은 기대 수입에 맞춰 미뤄지지 않으니까요.
경매에서는 보증금과 점유를 따로 읽는다
임대차 3법을 안다고 권리분석이 끝나는 건 아닙니다. 먼저 등기부의 기준 권리와 임차인의 전입일, 실제 점유, 확정일자, 배당요구 여부를 대조합니다. 주택을 인도받고 주민등록을 마친 임차인의 대항력은 그 다음 날부터 생깁니다. 확정일자는 배당 순위를 판단할 때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전입일만 보고 ‘선순위 세입자’라고 부르거나, 확정일자만 보고 ‘보증금은 전부 배당되겠지’라고 계산하면 위험합니다.
숫자를 넣어보면 더 분명합니다. 입찰가를 2억 8천만 원으로 잡은 집에 보증금 1억 5천만 원인 임차인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 임차인이 낙찰자에게 대항할 수 있고 배당에서 1억 1천만 원만 돌려받는 구조라면, 남은 4천만 원을 낙찰자가 부담할 가능성을 검토해야 합니다. 이 경우 매입비를 입찰가 2억 8천만 원으로만 쓰면 계산이 처음부터 틀립니다. 취득세와 등기 비용, 대출 이자, 수리비까지 얹으면 차이는 더 커집니다. 배당액은 실제 매각대금과 다른 채권의 순위에 따라 달라지므로 입찰 전 숫자는 어디까지나 보수적인 추정치로 둡니다.
저는 매각물건명세서의 임대차 내용만 읽고 입찰가를 정하지 않습니다. 현황조사서와 등기부, 확인할 수 있는 임대차 자료를 맞춰보고, 현장에서는 누가 실제로 점유하는지도 확인합니다. 문이 잠겨 있거나 임차인을 만나지 못했다면 빈집이라고 가정하지 않습니다. 특히 전입일과 등기 접수일이 가까운 물건은 하루 차이로 판단이 달라질 수 있어 시간을 들여 다시 봅니다.
실거주할 생각이어도 퇴거 날짜를 약속받은 셈은 아니다
낙찰받아 직접 살 계획이라면 ‘새 주인이 들어갈 거니까 갱신은 안 되겠지’라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법에는 임대인의 실제 거주가 갱신 거절 사유로 규정돼 있습니다. 대법원은 임대인 지위를 승계한 주택 양수인도 정해진 기간 안에 실제 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입찰을 준비하는 시점에는 갱신 요구와 거절이 언제, 누구에게, 어떤 내용으로 전달됐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실거주 계획만 적어 놓고 명도일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명도가 길어질 가능성이 있으면 잔금 이후의 이자와 기존 주거비가 겹치는 기간을 예산에 넣습니다. 보증금 반환 문제까지 얽힌 임차인에게는 낙찰자가 예상한 일정대로 나갈 이유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물건은 낮은 입찰가만 보고 들어가지 않습니다. 서류로 권리관계를 설명할 수 있고, 점유가 이어져도 버틸 자금이 있을 때만 가격을 씁니다.
임대차 신고는 일정 지역에서 보증금 6천만 원 초과 또는 월세 30만 원 초과 계약이 대상이고, 원칙적으로 계약일부터 30일 안에 해야 합니다. 보증금과 월세를 바꾸지 않고 기간만 연장하는 갱신은 신고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신고 자료가 권리분석에 도움이 될 수는 있어도, 신고 여부 하나로 대항력이나 보증금 인수 여부를 판정할 수는 없습니다.
경매에서 가장 비싼 실수는 모르는 비용을 0원으로 적는 겁니다. 임대차 3법이 걸린 물건이라면 계약이 이어질 시간과 돌려줘야 할 돈을 먼저 숫자로 적어봅니다. 그 두 칸을 채울 근거가 부족한 집은, 입찰장 분위기가 아무리 뜨거워도 저는 그냥 보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