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경매 물건을 보러 간 다세대주택에서 세입자가 천장 얼룩을 먼저 보여줬습니다. 비가 오면 물이 떨어지는데 집주인에게 여러 번 말해도 고쳐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현장에서는 ‘누가 수리비를 낼까’보다 먼저 볼 게 있습니다. 물이 어디서 들어오는지, 세입자가 언제 알렸는지, 방을 얼마나 못 쓰고 있는지입니다. 이 세 가지가 흐릿하면 낙찰자도 세입자도 나중에 돈으로 다투기 쉽습니다.
집주인이 고쳐야 하는 고장의 기준
민법 제623조는 임대인에게 임차인이 목적물을 사용하고 수익하는 데 필요한 상태를 유지할 의무를 둡니다. 그렇다고 집 안에서 고장 난 물건을 전부 집주인이 바꿔줘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대법원 판례도 건물의 용도, 고장 난 부위와 규모, 실제 사용에 미치는 영향, 수리 비용, 계약 당시 상태 등을 함께 봅니다.
예를 들어 주방 수전 손잡이가 헐거운 정도와 보일러가 멈춰 겨울에 온수와 난방이 끊긴 경우는 다릅니다. 천장 누수로 방 한 칸의 침구와 가구가 젖는다면 생활 자체가 방해받습니다. 반면 세입자가 문을 세게 닫아 손잡이를 부러뜨렸다면 원인부터 따져야 합니다. ‘소모품은 무조건 세입자 부담’ 같은 한 줄짜리 기준도 위험합니다. 고장의 원인과 계약 내용을 같이 봐야 합니다.
경매 현장에서 특히 조심하는 건 겉에 보이는 곰팡이만 보고 도배비를 계산하는 일입니다. 외벽 균열이나 윗집 배관이 원인이면 도배를 새로 해도 다시 젖습니다. 수리 범위를 판단하려면 누수 탐지와 원인 확인이 먼저입니다. 현장 방문 때는 젖은 부위의 사진뿐 아니라 천장, 창틀, 배관 주변까지 촬영해 둡니다.
임대인 수선의무 불이행을 말하기 전에 남길 기록
세입자라면 고장을 발견한 날짜부터 남겨야 합니다. 민법 제634조는 수리가 필요할 때 임대인에게 지체 없이 알리도록 합니다. 전화로만 이야기했다면 통화 뒤에 문자로 ‘어느 방 천장에서 언제부터 물이 떨어지는지, 수리를 요청한다’고 다시 적어 두는 편이 낫습니다. 사진에는 날짜가 남도록 하고, 비가 올 때와 그친 뒤의 상태를 각각 찍으면 원인을 설명하기가 수월합니다.
이 단계가 별것 아닌 듯해도 결과를 가릅니다. 실제 누수와 곰팡이 사건에서 법원은 임차인이 제때 알리지 않아 임대인이 수리할 기회를 얻지 못한 사정을 중요하게 봤습니다. 집주인이 이미 알고 있었다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지만, 나중에 그 사실을 입증하는 일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입자 이야기를 들으면 ‘몇 번 말했어요?’ 다음에 ‘남아 있는 메시지가 있나요?’를 묻습니다.
- 고장 부위와 사용에 지장이 생긴 날짜를 사진·영상으로 남깁니다.
- 임대인에게 증상과 수리 요청을 문자 등 기록이 남는 방식으로 알립니다.
- 수리업체가 확인한 원인과 견적을 받아 작업 범위를 구분합니다.
- 가구나 가전 피해가 있다면 수리 전 상태와 구입·수리 자료를 따로 보관합니다.
예를 들어 월세 70만 원인 집에서 안방 누수로 20일간 그 방을 쓰지 못했다면, 단순히 ‘월세에서 20만 원 빼겠다’고 통보할 일이 아닙니다. 못 쓴 공간과 기간, 집 전체의 사용에 미친 정도를 따져야 합니다. 민법 제627조는 임차인 잘못 없이 일부를 사용할 수 없게 된 경우 그 부분에 비례한 차임 감액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합니다. 다만 감액액을 놓고 다툴 수 있으니 계산 근거를 먼저 갖춰야 합니다.
직접 고친 비용과 월세는 따로 계산해야 한다
수리가 급한데 임대인이 연락을 피한다면 임차인이 먼저 업체를 부를 때도 있습니다. 민법 제626조는 임차인이 임차물 보존에 필요한 비용을 지출한 경우 임대인에게 상환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필요한 비용’입니다. 고장 난 배관을 막는 작업과 그 김에 욕실 전체를 새로 꾸미는 작업은 성격이 다릅니다.
급박한 누수라면 피해가 번지지 않도록 조치하면서 임대인에게 작업 전후 상황을 계속 알리는 게 좋습니다. 견적서, 작업 내역서, 영수증, 이체 내역을 챙겨 두고요. 반대로 긴급하지 않은 공사를 임대인과 협의 없이 크게 진행하면 비용 전부를 돌려받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세입자가 직접 고친 뒤 수리비만큼 월세를 일방적으로 빼서 보내는 것도 분쟁을 키우기 쉽습니다. 수리비 상환 청구와 차임 감액은 각각 근거를 갖춰 협의해야 합니다.
임대인이 수선을 미루고 있다고 해서 월세 전액을 바로 끊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대법원은 사용에 지장이 있는 한도에서 차임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고 봤지만, 실제 지장의 범위는 사안마다 다릅니다. 작은 하자에 월세 전부를 안 내면 연체 문제로 되돌아올 수 있습니다. 방 일부를 못 쓰는 상황인지, 집 전체에서 살기 어려운 상황인지부터 구분해야 합니다.
경매 입찰 전에는 수리비보다 임차 관계를 먼저 본다
투자자 입장에서 이런 집은 낙찰가만 낮다고 싼 물건이 아닙니다. 누수 원인 조사비, 방수·배관 공사비, 젖은 마감재 교체비가 붙습니다. 여기에 세입자와 수리 범위나 차임 문제를 두고 다투는 시간도 비용입니다. 예컨대 예상 수리비를 300만 원으로 잡았는데 누수 경로가 공용 부분까지 이어지면 최초 견적은 금방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입찰 전에는 현황조사서와 매각물건명세서를 통해 점유 관계를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현장에서 세입자의 계약서·수리 요청 기록·현재 사용 상태를 확인합니다. 보증금을 누가 부담하는지와 기존 임대차 관계가 낙찰 뒤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권리분석의 문제입니다. 하자 수리 책임은 그다음에 별도로 따져야 합니다. 낙찰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기존 집주인이 했던 모든 약속을 그대로 떠안는다고 단정해도, 반대로 세입자의 수리 요구를 전부 무시해도 위험합니다.
제가 입찰가를 적기 전 견적서를 먼저 찾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얼룩은 작아 보여도 분쟁은 오래갈 수 있습니다. 세입자에게는 고장의 원인과 통지 기록이, 투자자에게는 권리관계와 실제 공사 범위가 숫자보다 먼저입니다. 그걸 확인하기 어려운 물건이라면 싸게 낙찰받는 것보다 지나치는 편이 마음 편할 때가 많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