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최고액 전세 계약서를 보고 발길을 돌린 이유

채권최고액 전세 계약서를 보고 발길을 돌린 이유

얼마 전 지인이 전셋집 등기부를 보내왔다. 매매 시세는 4억 원 안팎, 전세보증금은 2억 8천만 원이었다. 임대인은 은행 대출이 7천만 원만 남았다고 했다. 그런데 등기부 을구에는 채권최고액 1억 2천만 원짜리 근저당권이 살아 있었다. 지인은 ‘남은 대출만 갚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경매 현장에서 이런 숫자 차이를 가볍게 봤다가 보증금을 못 받는 경우를 여러 번 봤다.

채권최고액은 현재 빚이 아니라 담보 한도다

근저당권의 채권최고액은 그 집으로 담보하는 채권의 상한이다. 대출 원금뿐 아니라 이자와 지연손해금 등이 그 범위에 들어갈 수 있다. 채권최고액이 1억 2천만 원이라고 실제 빚이 지금 꼭 그만큼 있다는 뜻은 아니다. 반대로 임대인이 ‘현재 잔액은 7천만 원’이라고 말해도, 그 말만으로 등기된 근저당권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전세 계약을 검토하는 입장에서는 두 숫자를 따로 적어야 한다. 현재 대출 잔액은 금융기관 자료로 확인할 숫자이고, 채권최고액은 등기부에서 확인할 숫자다. 특히 근저당을 그대로 둔 채 입주한다면 보수적으로 채권최고액을 기준으로 위험을 계산한다. 실제 경매 배당액은 확정된 채권과 배당 순위에 따라 달라지므로, 채권최고액을 ‘은행이 반드시 가져갈 돈’으로 단정해서도 안 된다.

시세 4억 원이라는 말에 안심하지 않은 까닭

지인 집의 숫자를 그대로 놓아 보자. 채권최고액 1억 2천만 원에 전세보증금 2억 8천만 원을 더하면 4억 원이다. 매매 시세와 딱 맞는다. 여기서 시세가 조금만 내려가거나, 경매에서 시세보다 낮게 낙찰되면 여유가 사라진다. 예를 들어 3억 4천만 원에 낙찰되고 선순위 근저당권자가 1억 원을 배당받는 상황을 가정하면, 단순 계산으로 남는 돈은 2억 4천만 원이다. 경매 비용이나 다른 우선권을 빼기 전인데도 보증금보다 4천만 원 모자란다.

이 계산은 손실액을 예언하는 공식이 아니다. 실제 배당은 권리의 순서, 확정 채권액, 다른 임차인과 조세 채권 등 개별 사정에 따라 달라진다. 다만 ‘시세가 4억이니 보증금 2억 8천은 안전하다’는 설명이 얼마나 얇은지 보여준다. 저는 이런 집을 볼 때 호가 하나만 믿지 않는다. 최근 실거래가, 비슷한 층과 면적의 거래, 물건 상태를 함께 보고 경매로 넘어갔을 때의 가격도 낮춰 잡는다.

다가구주택이라면 계산이 더 복잡하다. 내 방 하나의 전세금만 보면 안 된다. 먼저 들어온 세입자들의 보증금이 배당에서 앞설 수 있기 때문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도 전세 위험을 안내하면서 선순위채권과 다른 세입자의 선순위 보증금을 함께 확인하도록 한다. 임대인의 구두 설명 대신 확정일자 부여 현황 등 확인 가능한 자료를 요청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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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 날짜와 전입 날짜가 돈의 순서를 바꾼다

채권최고액이 같아도 근저당권 설정일이 언제인지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미 설정된 근저당권이 있는 집에 뒤늦게 들어가면, 세입자는 그 권리보다 뒤에 설 수 있다. 반대로 세입자가 주택을 인도받고 전입신고를 마쳐 대항력을 갖춘 뒤 근저당권이 설정된 경우에는 권리 관계가 달라진다. 확정일자까지 갖췄는지도 배당 순위를 따질 때 중요하다.

여기서 초보가 자주 놓치는 하루가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주택 인도와 주민등록을 마친 임차인의 대항력은 그다음 날부터 생긴다. 계약서에 도장 찍은 날 바로 보호가 시작된다고 생각하면 위험하다. 계약 당시 등기부가 깨끗했어도 잔금일에 새 근저당권이 설정될 수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도 계약 당일 대출과 근저당권 설정이 이뤄지면 세입자보다 앞설 수 있는 사례를 경고한다.

그래서 계약 전 등기부를 본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잔금을 보내기 직전에 다시 열람하고, 잔금 지급과 근저당권 말소를 약속했다면 실제 말소 절차와 완료 여부까지 확인한다. 계약서 특약에 말소 시점과 이행하지 않을 때의 조치를 구체적으로 적는 것도 필요하다. ‘대출은 곧 갚을 거예요’라는 말은 등기부의 한 줄을 지우지 못한다.

제가 지인에게 계약을 미루라고 한 이유

지인에게는 집 자체가 나쁘다고 말하지 않았다. 먼저 근저당권을 말소할 수 있는지, 말소가 어렵다면 보증금을 낮춰도 여유가 생기는지 확인하자고 했다. 임대인의 대출 잔액 자료와 등기부, 실제 거래 가격을 같은 날짜 기준으로 맞춰 보는 일부터였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 가능 여부도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사전에 확인하도록 했다. 가입 가능하다는 말만 듣고 계약금을 보내는 것과 실제 심사 결과를 확인하는 것은 다르다.

결국 그 계약은 보증금 조정이 되지 않아 진행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 집이 경매로 갔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그런 일은 없었다. 다만 제 돈이라면 시세와 선순위 권리, 보증금을 더한 숫자가 빽빽하게 맞물린 계약에 서명하지 않는다. 채권최고액 전세 문제는 어려운 법률 용어보다 먼저, 집값이 흔들릴 때 내 보증금이 버틸 공간이 있는지 묻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채권최고액 전세 계약서를 보고 발길을 돌린 이유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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