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에 갔을 때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건 전망대에서 본 풍경이 아니라 화암리의 조용한 골목이었다. 그림바위마을이라는 이름을 듣고 처음에는 벽화가 가득한 관광지를 떠올렸다. 그런데 막상 걸어보니 집과 가게, 마을길 사이에 작품이 놓인 동네에 가까웠다. 사진 한 장을 찍고 떠나기보다 조금 느리게 걸어야 마음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그림바위마을은 여전히 사람이 사는 동네였다
그림바위마을은 정선군 화암면 화암리에 있다. 정선군 관광 안내에 따르면 2013년 마을미술프로젝트를 계기로 자연과 정선아리랑, 주민들의 삶을 담은 작품들이 마을 곳곳에 들어섰다. 이 설명을 읽고 갔지만, 현장에서는 작품보다 그 주변의 평범한 풍경에 눈이 먼저 갔다. 대문 앞에 놓인 화분이나 낮은 담장 같은 것들이다.
작품이 한 구역에 모여 있지 않아 정해진 관람 순서를 따를 필요도 없었다. 길을 따라 걷다가 하나를 만나고, 다시 동네를 구경하며 다음 것을 찾게 된다. 다만 여기는 누군가의 생활 공간이다. 집 안쪽을 들여다보거나 대문 앞에서 오래 사진을 찍는 일은 피하는 편이 좋겠다. 조용한 마을을 찾아왔다면 걷는 사람도 그 조용함을 지켜야 한다.
골목 밖으로 나가면 바위와 물길이 이어진다
마을 안길을 걸은 뒤에는 바깥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선군은 이 길에서 화암팔경에 속하는 거북바위와 용마소를 만날 수 있다고 안내한다. 골목에서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작품을 봤다면, 바깥에서는 바위와 물길이 풍경의 중심이 된다. 걷는 장소가 조금 바뀌었을 뿐인데 시선도 한결 멀어졌다.
내가 좋았던 건 어느 한 지점에 꼭 도착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다는 점이었다. 길가에서 산을 바라보다가 다시 마을 쪽으로 돌아와도 충분했다. 바깥길에서는 차가 지나는 구간을 살피고, 비가 온 뒤라면 물가에 무리해서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다. 한적한 길일수록 주변을 확인하며 걷게 된다.
화암약수까지 붙이면 걸음의 속도가 맞는다
그림바위마을을 보러 화암까지 왔다면 화암약수도 함께 떠올릴 만하다. 화암약수에는 쌍약수와 본약수가 있고, 두 곳을 잇는 산책로가 있다. 동굴이나 체험 시설을 여러 개 넣어 하루를 빼곡히 채우기보다 마을을 걷고 약수터에서 잠시 쉬는 흐름이 내 취향에는 더 맞았다.
약수는 평소 마시던 물과 맛이 달라 첫 모금부터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현장 안내를 먼저 읽고 조금만 맛보는 편이 편하다. 정선군 관광 안내에도 약수의 특성을 고려한 음용량 권고가 나와 있다. 물을 마시는 것보다 산책로를 따라 걷고 나무 그늘에서 쉬었던 시간이 더 오래 남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찾아갈 때는 화암리에서 걷기 시작하면 된다
목적지를 찾을 때는 ‘정선군 화암면 화암리’나 ‘그림바위마을’로 확인하면 된다. 마을에 도착해서는 작품을 빠짐없이 찾아다니려 애쓰기보다 걷기 편한 골목부터 천천히 들어가면 좋다. 잠깐 걷고 끝낼 생각이었는데도 멈춰 서는 시간이 자꾸 생겼다. 이동 시간을 짤 때 조금 여유를 두면 그 느린 걸음이 덜 조급하다.
차 없이 정선을 여행한다면 버스나 열차의 운행 정보를 출발 전에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정선은 장소 사이의 거리가 짧아 보여도 이동 방법에 따라 하루 일정이 크게 달라진다. 특히 화암리 안에서 어디까지 걸을지 먼저 생각해 두면 돌아가는 길도 수월하다. 한적함을 기대하고 가더라도 방문하는 날의 행사나 시간대에 따라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다.
정선 여행지를 고를 때 자꾸 이름난 전망부터 찾게 된다. 그런데 화암리에서는 별다른 장면이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좋았다. 골목을 걷고, 바위를 올려다보고, 약수터에서 쉬는 정도. 여행이 꼭 특별한 일을 해야 하는 날은 아니라는 생각이 그 길에서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