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전주에 갔을 때, 한옥마을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순간은 남천교를 건넌 뒤였다. 다리 이쪽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건너편 서학동 골목에는 집 앞을 쓸고 지나가는 사람과 천천히 걷는 사람이 보였다. 전주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걸음의 속도가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전주 여행에서 이름난 곳을 빼놓기가 아쉬울 때가 있다. 나도 한옥마을을 지나 남천교로 향했다. 다만 이날은 볼거리를 더 찾기보다, 다리 건너편 동네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서학동 예술마을과 전주천을 걷는 데 두 시간 남짓 잡았는데, 중간중간 멈추다 보니 그 정도가 편했다.
남천교를 건너면 걸음이 느려진다
한옥마을 남쪽에서 남천교를 찾으면 길을 시작하기 쉽다. 다리 위 청연루를 지나 전주천을 건너면 서학동이다. 전주시 관광지도에도 남천교와 서학동 예술마을이 이어지는 걷기 코스가 실려 있다. 방향이 헷갈리면 먼저 다리를 찾고, 건넌 뒤 동서학동 주민센터 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된다.
다리 한가운데에서는 잠깐 발을 멈췄다. 뒤를 돌아보면 한옥마을 쪽 지붕이 보이고, 앞쪽에는 낮은 건물들이 이어진다. 거리가 멀지 않은데도 풍경이 조금 다르다. 길을 건너자마자 조용한 장소가 펼쳐지는 건 아니다. 차도 있고 사람도 오간다. 그래도 큰 무리를 따라 움직이던 때와 달리, 어느 골목으로 갈지 스스로 고를 수 있어서 좋았다.
서학동 골목에서는 문 앞의 시간을 본다
서학동 예술마을에는 작은 작업실과 책방, 전시 공간이 주택 사이에 섞여 있다. 간판만 보고 들어갈 수 있는 곳도 있지만, 문이 닫힌 날도 있다. 그래서 특정 가게 하나를 목표로 삼기보다 골목을 걷다가 열린 공간이 있으면 들렀다. 문 앞에 놓인 화분이나 손글씨 안내문을 읽는 시간이 오히려 오래 남았다.
이 동네가 마음에 들었던 건 예술 공간만 따로 모아 놓은 거리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업실 옆에 평범한 집이 있고, 다음 모퉁이에는 생활에 필요한 가게가 나온다. 관광하러 온 내게는 새로운 풍경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매일 드나드는 길이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 때도 집 안이나 열린 대문 너머는 담지 않았다. 골목의 분위기는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일상과 함께 있다.
골목은 넓지 않고 차가 지나는 구간도 있다. 둘이 나란히 걷다가 차 소리가 들리면 한쪽으로 붙는 편이 편했다. 조용하다고 해서 아무 데나 오래 서 있기보다는, 잠깐 보고 길을 비켜주는 쪽이 이 동네와 잘 어울렸다.
전주천 쪽으로 나오면 숨이 트인다
골목을 몇 번 돌아본 뒤에는 다시 전주천 쪽으로 나왔다. 건물 사이에서 걷다가 물길을 마주하니 시야가 넓어진다. 남천교를 기준으로 강변을 조금 걷고, 마음에 드는 곳에서 돌아오는 식이면 길도 단순하다. 목적지를 하나 더 찍어 두지 않으니 벤치가 보일 때 앉고, 걷고 싶을 때 다시 걸을 수 있었다.
강변은 골목과 분위기가 달랐다. 골목에서는 가게와 집의 작은 표정을 보게 되고, 물가에서는 멀리 있는 다리와 지나가는 사람을 보게 된다. 나는 이 두 풍경을 오가는 시간이 좋았다. 다만 바람이 불 때는 다리 위와 물가가 골목보다 서늘했다. 걷기 좋은 날에도 오래 앉아 있을 생각이라면 가벼운 겉옷이 쓸모 있겠다.
서두르지 않으려면 한 동네면 충분하다
이번 걸음은 남천교에서 시작해 서학동 골목을 걷고, 전주천을 따라 돌아오는 식이었다. 사진을 많이 찍거나 열린 공간에 들르면 시간은 더 걸린다. 작은 작업실은 운영 시간이 저마다 다를 수 있으니, 꼭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출발 전에 확인하는 편이 낫다. 반대로 문이 닫혀 있어도 괜찮다면 정해 둔 시간 없이 걷기 좋은 동선이다.
- 시작점은 한옥마을 남쪽 남천교로 잡았다.
- 다리를 건넌 뒤 서학동 골목을 천천히 돌았다.
- 돌아갈 때는 전주천 쪽 길로 나와 남천교를 다시 찾았다.
전주에는 눈길을 끄는 장소가 많다. 그런데 이번 전주 여행에서 자꾸 떠오르는 건 특별한 장면보다 다리 건너편의 평범한 골목이다. 다음에 가도 그곳에서는 서둘러 다음 장소를 찾지 않고, 걷다가 잠시 멈추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