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후인 여행지를 떠올리면 긴린코 호수와 간식 가게가 늘어선 거리가 먼저 생각난다. 그런데 제가 오래 기억하는 풍경은 조금 다르다. 가게 앞에서 발걸음을 늦추기보다 큰길을 한 번 벗어났을 때 보이던 집 담장, 작은 밭, 멀리 걸린 유후다케 산의 모습이다. 유후인은 사람이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걷는 방향을 조금만 바꾸면 동네의 속도가 남아 있다.
처음부터 이름 없는 골목만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 역에서 길을 잡고, 익숙한 장소를 지나 조용한 길로 이어 가면 된다. 제가 좋아하는 순서는 유후인역에서 출발해 오이타강 주변을 걷고, 긴린코 호수 근처의 붓산지와 우나기히메 신사 쪽으로 발을 옮기는 것이다. 시간이 넉넉하고 차를 이용할 수 있다면 쓰카하라 고원까지 가 볼 만하다. 한곳씩 오래 머물수록 이 동네가 더 또렷해진다.
유후인역 앞에서 서두르지 않고 방향을 잡기
유후인역을 나오면 많은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걷는다. 유노쓰보 거리와 긴린코 호수로 이어지는 길이다. 처음 방문했다면 그 길이 궁금한 게 당연하다. 저도 중심가를 아예 건너뛰지는 않는다. 다만 가게를 하나씩 모두 들르겠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동네를 가로지르는 길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혼잡한 시간에 걷다 보면 유후인이 온통 기념품 가게로만 이루어진 듯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큰길에서 한 블록만 옆으로 움직여 본다. 오이타현 관광 안내에서도 유노쓰보 거리에서 벗어난 오이타강 주변을 산책길로 소개한다. 상점 간판이 시야에서 줄어들고 물길과 들판이 보이기 시작하면, 걷는 속도도 자연히 달라진다.
이 구간에서는 목적지보다 길의 상태를 먼저 본다. 강가라고 해서 모든 곳이 산책로는 아니고, 주택이나 경작지로 이어지는 길도 있다. 걸을 수 있는 길을 따라가고 막다른 곳에서는 돌아서면 된다. 집 앞을 들여다보거나 밭둑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여행자의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진다.
긴린코에서 붓산지로 걸으면 분위기가 바뀐다
긴린코는 유명한 곳이라 이 글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호수는 조용한 골목으로 들어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사람을 조금이라도 덜 마주치고 싶다면 이른 시간에 호숫가를 걷는 편이 낫다. 그렇다고 물안개를 꼭 봐야 한다는 마음으로 서두를 필요는 없다. 날씨에 따라 보이는 모습이 달라지고, 기대했던 장면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호수 주변에서 붓산지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상점가와 다른 풍경이 이어진다. 붓산지는 삼나무와 대나무에 둘러싸인 오래된 절이고, 초가지붕을 얹은 산문이 눈에 남는다. 절 앞의 돌담을 따라 걷는 길도 좋다. 유후인의 사진에서 흔히 보는 아기자기한 거리와는 결이 다르다. 나무와 담장, 그 사이의 조용한 공간을 바라보며 걷게 된다.
붓산지는 산책길이면서 누군가에게는 참배하는 장소다. 경내에서는 목소리를 낮추고 안내문이 있는 곳에서는 그 내용을 따르는 게 좋다. 저는 사진을 많이 남기는 것보다 산문 앞에서 잠시 발을 멈추는 시간이 더 기억에 남는다. 유명한 유후인 여행지 사이에도 이렇게 다른 온도의 장소가 있다.
우나기히메 신사로 돌아오는 느린 길
붓산지에서 걷기를 끝내기 아쉽다면 우나기히메 신사를 다음 지점으로 잡아도 된다. 오이타현 관광 안내에 소개된 유후인 관광 마차 노선도 역에서 붓산지와 우나기히메 신사를 거쳐 돌아온다. 두 장소를 묶어 생각하면 길이 한결 그려진다. 걷는 시간은 멈추는 횟수에 따라 달라지니, 돌아갈 열차 시각만 여유 있게 확인해 두면 된다.
우나기히메 신사는 유후인역에서 도보 약 15분으로 안내되는 곳이다. 경내에 들어서면 삼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화려한 볼거리를 찾는 마음으로 가면 짧게 느껴질 수 있지만, 나무 아래에 잠시 서 있을 곳을 찾는다면 충분하다. 마차가 지나는 관광 코스의 한 부분이기도 해서 늘 비어 있는 장소는 아니다. 그래도 중심가의 북적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이 머문다.
신사에서 역 쪽으로 돌아갈 때도 가장 빠른 길만 고집하지 않았다. 낮은 집들 사이로 산이 보이는 곳에서는 걸음을 늦췄다. 유후인에서 좋았던 장면은 대개 이름을 외워 둔 장소보다 그 사이에 있었다. 길가의 일상을 구경거리로 대하지 않으면서 천천히 지나가는 것, 그 정도가 이 동네를 걷는 데 잘 맞았다.
하루가 남는다면 쓰카하라 고원까지
유후인 중심가에서 한 걸음 더 멀어지고 싶을 때는 쓰카하라 고원이 떠오른다. 유후다케 북쪽에 펼쳐진 고원으로, 유후인역에서 차로 약 15분 거리다. 언덕과 들판이 넓게 이어지고 도자기나 목공 갤러리도 드문드문 자리한다. 다만 역에서 가볍게 걸어 다녀올 만한 동네 골목은 아니다. 차를 이용하는 날에 여유를 두고 묶는 편이 좋다.
고원에 가서는 여러 곳을 빠짐없이 돌겠다는 계획보다 한두 곳에 머무는 편이 마음에 맞았다. 계절이 바뀌면 들판의 색도 달라진다. 바람이 강하거나 날씨가 차가운 날에는 오래 밖에 있기 어려울 수 있으니, 출발 전 날씨를 살피는 게 좋다. 작은 가게나 갤러리를 방문할 생각이라면 그날의 영업 여부도 미리 확인해야 헛걸음을 줄일 수 있다.
유후인은 유명한 장소만 따라가면 꽤 바쁜 여행지가 된다. 하지만 역에서 강가로, 호수에서 절과 신사로 길을 조금씩 옮겨 걸으면 다른 표정이 보인다. 저에게 오래 남은 건 어디를 몇 군데 들렀는지가 아니라, 돌담 옆에서 걸음을 늦추고 동네가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