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소를 100곳 넘게 다니며 여행 가방 싸는 데는 익숙해졌는데, 공항 면세점에서 위스키를 고를 때는 아직도 계산기를 켜게 됩니다. 진열대에는 ‘2병 구매 할인’ 같은 문구가 큼직하게 붙어 있거든요. 그런데 할인 조건과 한국 입국 때 적용되는 위스키 면세 한도는 별개입니다. 가격표만 보고 집었다가 용량에서 걸릴 수도 있어요.
지금 기준은 병수가 아니라 2리터와 400달러
한국에 입국하는 만 19세 이상 여행자의 주류 면세 범위는 1인당 전체 용량 2리터 이하, 총가격 미화 400달러 이하입니다. 두 조건을 동시에 맞춰야 합니다. 관세법 시행규칙과 관세청 여행자 휴대품 안내에 적힌 기준이에요. 위스키만 따로 계산하는 게 아니라 가져오는 술을 모두 합칩니다. 위스키 한 병에 와인 한 병을 샀다면 두 병의 용량과 가격을 함께 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전 글에서 자주 보이는 ‘2병까지’라는 설명은 현재 기준과 다릅니다. 주류 면세 범위의 병수 제한은 폐지됐습니다. 그래서 500밀리리터짜리 위스키 세 병이 총 1.5리터, 총가격 400달러 이하라면 병이 세 개라는 이유만으로 면세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1리터짜리 두 병이라도 합계가 410달러면 가격 조건을 넘습니다. 오래된 안내문을 볼 때는 작성 시점을 먼저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매대 앞에서는 병마다 용량부터 더해봅니다
700밀리리터 두 병은 1.4리터입니다. 여기에 500밀리리터 한 병을 더하면 1.9리터라 용량 기준 안에 들어옵니다. 이때 세 병의 가격이 각각 120달러, 110달러, 90달러라면 합계 320달러입니다. 용량과 가격 모두 기준 이내죠. 하지만 마지막 500밀리리터 병 대신 700밀리리터 병을 고르면 총 2.1리터가 됩니다. 가격이 그대로 320달러여도 용량 초과입니다.
저라면 매대에서 ‘몇 병까지 되지?’보다 병 바닥이나 상품 설명에 적힌 밀리리터 숫자를 먼저 봅니다. 같은 위스키도 700밀리리터와 1리터 제품이 함께 놓여 있는 일이 있어요. 숙소 예약할 때 사진의 객실 크기보다 실제 면적과 침대 규격을 확인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눈에 띄는 할인 문구보다 작은 숫자가 나중에 더 중요해지더라고요.
구매 장소도 나눠 생각하면 헷갈립니다. 해외 현지에서 산 술, 출국장 면세점에서 산 술, 한국 입국장 면세점에서 산 술은 입국할 때 함께 계산합니다. 매장을 세 번 들렀다고 면세 한도가 세 번 생기지는 않습니다. 선물로 받은 술도 반입 물품에 포함되니 가격을 모른다는 이유로 계산에서 빼두면 곤란합니다.
800달러 기본 면세와 섞어 계산하면 틀리기 쉽습니다
여행자 휴대품의 기본 면세 범위인 미화 800달러와 주류의 2리터·400달러 기준은 따로 운영됩니다. 가방이나 옷을 800달러 이하로 샀으니 위스키도 그 금액 안에서 더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주류에는 별도 기준을 적용합니다. 반대로 주류 기준 안에 든 위스키 가격을 가방 가격에 무조건 합쳐서 800달러를 넘었다고 겁먹을 필요도 없습니다.
동행인이 있으면 1인당 기준이라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성인 두 명이 함께 입국한다면 각자에게 주류 면세 범위가 적용됩니다. 다만 한 사람이 가져온 고가의 위스키 한 병을 두 사람의 400달러 한도를 합쳐 면세받는 식으로 계산해서는 안 됩니다. 만 19세 미만에게는 주류 면세 범위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아이 몫까지 술을 나눠 잡는 계산도 맞지 않습니다.
한도를 넘겼다면 구매 가격과 영수증을 챙겨 신고합니다
면세 범위를 넘는 술을 샀다고 반입 자체가 곧바로 불가능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입국할 때 세관에 신고하고 해당 물품의 세금을 확인해야 합니다. 위스키에는 관세 외에 주세와 교육세, 부가가치세 등이 관계될 수 있어 매장 가격에 단순한 비율 하나를 곱해 실제 납부액을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관세청의 여행자 휴대품 예상 세액 조회를 이용하면 구매 전에 대략적인 부담을 가늠할 수 있지만, 실제 세액은 통관 시점의 환율과 적용 세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영수증은 버리지 않는 게 좋습니다. 현지 매장과 면세점에서 각각 샀다면 구매 내역을 함께 보관해 두면 신고할 때 가격을 설명하기 수월합니다. 관세청 안내에 따르면 면세 범위 초과 물품을 자진신고하면 관세의 30%를 20만 원 한도에서 감면받을 수 있습니다. 신고하지 않았다가 적발되면 가산세가 붙을 수 있으니, 애매할 때는 구매 내역을 보여주고 확인받는 편이 마음 편합니다.
위스키를 고를 때 저는 할인율보다 세 가지 숫자를 먼저 적습니다. 모든 술의 총용량, 총구매액, 함께 입국하는 성인의 수입니다. 이 숫자가 맞으면 세 병이든 네 병이든 판단이 쉬워지고, 넘는다면 세금까지 포함한 실제 가격으로 살 만한지 다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행 끝에 짐을 풀면서 ‘그때 왜 샀지’ 싶은 물건은 대개 계산을 서둘렀을 때 생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