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암굴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천동리 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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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정보
- 한글지명
- 응암굴
- 영문지명
- Eungamgul
- 한글주소
-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천동리 산1
- 한문주소
- 平昌郡
- 영문주소
- Pyeongchang-gun
- 고시번호
- 국무원 고시 제16호
- 고시일자
- 1961-04-22
지명 유래
- 지명유래
- 임진왜란때 평창군수 권두문이 참봉 지사함, 우응민과 함께 가권과 사랑하는 매를 데리고 이굴에서 피란하였는데 적병이 매의 방울소리를 들어 들키게 되어 잡힌곳이라 하여 응암굴이라 한다.
- 지명유래집
- 군의 미탄면 마지진에 위치한 동굴이다. 『1872년지방지도』에는 상굴과 하굴로 나뉘어 설명이 수록되어 있다. 응암굴이 있는 절벽은 천동리로부터 시작되어 응암리까지 1km 정도 이어져 있는데 강물과 조화를 이루는 절경이다. 응암절벽에는 장수굴·큰굴·땅굴·옆땅굴·멍어굴로 불리는 크고 작은 10여 개의 굴이 있다. 강물 또한 유유히 응암리를 감돌아 사행(蛇行)한다. 예부터 ‘좋다, 제일 매화(梅花:응암리의 옛 지명)’로 불리어왔다. 임진왜란 당시 군수 권두문(權斗文)이 노성산성이 함락되기 직전 가족 및 남은 병력과 많은 군민들을 데리고 본래 매화굴이라 불리던 천연의 암굴로 피신하였다. 이 굴은 약 200m 간격의 두 굴로 되어 있다. 두 개의 굴 중 위에 위치한 굴은 군수 일행이 피신하였다 하여 관굴(官窟)이라고 부르고, 아랫굴은 군민들이 피난하였다 하여 민굴(民窟)이라고도 한다. 지형이 험하고 굴이 은밀하여 일본군은 군수의 행방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관굴에 숨어있던 권군수 일행은 민굴과 연락을 위해 매의 발목에 서신을 매달아 교환하였다. 일본군이 매방울 소리를 수상히 여겨 주변을 조사한 끝에 굴을 발견하였으나, 통로를 발견하지 못해 공격이 쉽지 않았다. 일본군이 강 건너에서 총을 쏘거나 산위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면서 진행된 전투는 격렬하였다. 끝내 굴은 함락되었고 권두문 군수 및 여러 관원은 포로가 되었다. 권두문 군수의 애첩 강소사(康召史)는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자결하였다. 『평창군신지지』에도 이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처럼 매로 인하여 화를 입었다고 하여 응암굴이라 하였다. 강건너 언덕에는 당시 일본군이 공격을 위해 쌓았던 300여 평의 돌무지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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