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골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 산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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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정보
- 한글지명
- 서미골
- 영문지명
- Seomigol
- 한글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 산98-1
- 한문주소
- 安東市
- 영문주소
- Andong-si
- 고시번호
- 국무원 고시 제16호
- 고시일자
- 1961-04-22
지명 유래
- 지명유래
- 지금부터 300년전에 청음선생이 은거한 곳으로서 옛날 중국의 백이 숙제와 같이 고사리를 먹고 살았다고 하여 서미이라고 부르고 있다.
- 구지명대장
- 지금부터 약 300년전에 청음선생이 은거한곳으로 옛날중국의 백이숙제와 같이 고사리를 먹고 사셨다 하여 서미골이라고 불리우고 있음(464)
- 지자체지명유래
- 서미골은 원래 한자로 서미(西美)라 적었는데 서애 선생이 이 곳으로 들어와 이화동(梨花洞)으로 고쳤다. 서애는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 하회의 옥연정사에 머물면서 임진왜란의 모든 기록을 정리한 징비록(懲毖錄)을 완성한 후 고향을 떠나 서미로 이우(移寓) 하였다. 이때는 선생의 나이 64세인 선조 38년(1605) 9월이다. 이듬해 3월 선생은 이 마을에 3칸 초옥(弄丸齋)을 완성하여 돌아가실 때까지 거처하는데 이때 마을의 이름을 서미에서 이화로 바꾸었다고 전한다. 바꾼 연유는 기록이 없어서 알지 못하지만 관직에서 물러나 처사적 삶으로 돌아 온 선비가 만년을 지내는 곳의 지명에 아름다울 미(美)자를 쓰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며 자신의 처지를 낮추어 생각하고 늙음의 은유적 표현인 이화(梨花)로 개명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 후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1570∼1652)이 병자호란(丙子胡亂)의 굴욕을 분개하며 고향 소산으로 물러나 청원루에 은거하다가 이 곳 서미로 거처를 옮겨 두어 칸 초가를 짓고 ‘목석거만석산방(木石居萬石山房)’이라 이름지어 소요하며 울분을 달래기도 하였던 곳이다. 이때 선생은 금산촌(金山村)이라 부르던 고향을 너무 화려한 이름이라 하여 소산(素山)으로 고쳐 불렀으며, 이 곳 또한 옛날 백이숙제(伯夷叔齊)가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치려는 것을 말려도 듣지 않자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고 살았는 것과 자신의 처지가 같다고 하여 다시 고사리 미(薇)자로 바꾸어 서미(西薇)라 이름하였다.
서미골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 산98-1) | 모두지명 : https://modoo.io/toponym/47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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