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촌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오도리 산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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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정보
- 한글지명
- 해동촌
- 영문지명
- Haedongchon
- 한글주소
-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오도리 산41
- 한문주소
- 星州郡
- 영문주소
- Seongju-gun
- 고시번호
- 국무원 고시 제16호
- 고시일자
- 1961-04-22
지명 유래
- 지명유래
- 옛날 이곳 골짜기에 게가 많이 있어 해동촌(蟹東村)이라 하였는데 그 후 변하여 해동촌(海東村)으로 부른다.
- 구지명대장
- 옛날 골짝에 게(蟹)가 많이 있어서 해동촌(蟹洞村)이라 이름을 지은 것이 그 후 해동촌(海東村)이라 개칭케됨.
- 지자체지명유래
- 오도말 동북 1㎞ 도고산 남쪽 3㎞ 거리의 세천과 산협에 둘러싸인 서남향한 마을이다. 옛날 오도방의 안방마을로 특수한 자연환경으로 터잡힌 마을이다. 마을 동쪽 표고 100m의 낮은 언덕고대를 무시고개라 하고 용신리 오리골로 통로가 있다. 남으로는 착골, 이압실, 오도말의 길이 뚫려있고 서쪽으로는 종산, 대방으로 나가는 길이 있다. 이렇게 산간마을이면서도 사통팔달의 산간요충지대의 특징은 게(蟹)의 발과 같아 해동이라 했고 이런 지리적 환경은 고려건국초 후백제의 견훤의 아들 신검이 부왕을 호군하며 927년 신라의 왕도를 침범하고 돌아가는 길에 京山府의 領屬한 지산면의 들판 볏더미에 불을 지르고 이듬해는 다시 그 곳의 벼를 노략질해 가는 등 낯익은 길이였는데 그가 935년 아버지 견훤을 다시 금산사에 유폐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그 후 이미 고려땅이 된 칠곡 岐山面까지 쳐내려 왔으나 고려태조 왕 건군과 맞섰는데 왕건은 낙동강 동쪽에 진을 치고 대비하다가 이 곳 성주대교 주변 일대에서 접전이 이루어져 마침내 왕산(196m)과 해동촌 부근의 요충지를 이용해 신검의 대군은 전멸하였다. 신검은 간신히 도망쳐서 황산에서 항복하여 후백제 최후의 운명을 결정한 역사깊은 유적지이다. 30여 호의 가호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같은 이름 다른 지명
해동촌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오도리 산41) | 모두지명 : https://modoo.io/toponym/65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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