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암 (울산광역시 남구 성암동 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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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정보
- 한글지명
- 처용암
- 영문지명
- Cheoyongam
- 한글주소
- 울산광역시 남구 성암동 488
- 한문주소
- 南區
- 영문주소
- Nam-gu
- 고시번호
- 국토지리정보원 고시 제2006-411호
- 고시일자
- 2006-07-13
지명 유래
- 지명유래
- 황성동 668-1번지(임야)이며 세죽(細竹)마을의 앞에 있는바위임. 동국여지승람 고적조에 처용암 아래에서 처용(處容)이 나타났다고 하였으며 임진왜란 때는 울산의 의병들이 여기에 바람을 빌어서 몰려오는 왜선13척을 깨트렸다고 한다. 이때는 대룡암(大龍巖)이라 하였음.(1997.10.9 울산광역시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4호로 지정됨)
- 지명유래집
- 시의 남구 황성동에 위치한 바위이다. 처용암은 신라시대 처용(處容)이 이 바위에서 나와 유래한 지명이다. 세종실록지리지(울산)에는 “처용암(處容巖)은 군(郡) 남쪽 37리 거리의 개운포(開雲浦) 가운데에 있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신라 때에 어떤 사람이 그 위에서 나왔는데, 얼굴이 기괴하고 노래와 춤을 좋아하니, 그때 사람들이 처용옹(處容翁)이라고 일렀다.”고 한다. 지금 향악(鄕樂)에 처용희(處容?)가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광여도(울산)에는 처용암(處龍岩), 조선지도(울산)에는 처용암(處容岩)으로 각각 기록하고 있다. 세죽(細竹) 마을의 앞에 있는데, 임진왜란 때는 울산의 의병들이 여기에서 왜선 13척을 무찔렀다고 하여 대룡암(大龍巖)이라고도 하였다. 현재 울산광역시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 헌강왕이 이곳 개운포에 놀이를 와서 쉬고 있을 때 갑자기 운무가 가려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일관이 아뢰기를 바다 용의 조화이니 좋은 일을 해주어 풀어야 한다고 했다. 왕은 즉시 영을 내려 이 근처에 용왕을 위한 절을 세우도록 하였다. 그러자 운무는 씻은 듯이 걷히고 해가 떠 이곳을 개운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 동해 용왕이 크게 기뻐하여 바다에서 일곱 왕자를 거느리고 나타나 춤을 추었는데 이중 처용이 왕을 따라 서울(경주)로 가서 미모의 여자를 아내로 맞고 급간(級干)이란 벼슬을 얻어 정사를 도왔다.”고 한다.
처용암 (울산광역시 남구 성암동 488) | 모두지명 : https://modoo.io/toponym/7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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