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크로스컨트리 결과표를 보다가 이상한 장면을 봤습니다. 한국 선수 이름이 예선 순위에 남는 대신 실격 처리로 빠져 있었거든요. 경기력 문제라기보다 장비 검사에서 걸린 사건이라 더 찜찜했습니다. 한국 크로스컨트리 불소 실격 논란은 단순히 ‘왁스 하나 잘못 발랐다’로 넘기기엔 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기록은 70위와 74위였지만, 공식 결과는 실격이었다
문제가 된 경기는 2026년 2월 10일 현지시간 이탈리아 테세로에서 열린 여자 크로스컨트리 스프린트 클래식 예선이었습니다. 이의진은 예선 70위, 한다솜은 74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냈습니다. 참가자는 89명, 준준결승에 오르는 기준은 상위 30명이었으니 사실 경기 결과만 놓고 보면 다음 라운드 진출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파장은 경기 후 장비 검사에서 나왔습니다. FIS 장비 검사에서 두 선수의 스키 바닥 왁스에서 금지 성분인 불소 계열 물질이 검출됐고, 기록은 공식적으로 삭제됐습니다. 스포츠에서 70위와 실격은 완전히 다른 말입니다. 전자는 경기력의 위치를 보여주는 숫자지만, 후자는 규정 위반이라는 꼬리표가 붙기 때문입니다.
불소 왁스는 왜 그렇게 민감한 물질이 됐나
크로스컨트리에서 왁스는 장식품이 아닙니다. 눈의 온도, 습도, 결정 상태에 따라 스키가 얼마나 잘 미끄러지는지가 달라지고, 왁싱 선택은 기록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특히 스프린트처럼 짧은 거리에서는 작은 활주 차이가 초반 포지션과 코너 진입을 바꿉니다.
불소 왁스는 1980년대 후반 이후 스키 종목에서 널리 쓰였습니다. 물을 밀어내는 성질이 강해서 젖은 눈이나 습한 조건에서 활주 성능을 끌어올리는 데 유리했습니다. 근데 이 장점이 환경과 건강 이슈 앞에서 더는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PFAS 계열 물질은 자연에서 잘 분해되지 않고, 고온 왁싱 작업을 하는 테크니션에게도 노출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FIS는 2019년에 금지 방침을 예고했고, 2023-2024시즌부터 국제대회에서 불소 왁스 사용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실격은 갑자기 생긴 규정에 당한 사건이 아니라, 이미 몇 시즌째 적용 중인 장비 규정에 걸린 사건입니다. 그 지점이 논란을 더 크게 만들었습니다.
선수 개인의 잘못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
보도 내용을 종합하면 대한체육회 현장 조사에서는 공급 과정 문제가 거론됐습니다. 대표팀은 FIS 규정에 맞는 제품을 주문했지만, 납품된 일부 제품에서 불소가 검출됐다는 설명이 나왔습니다. 대한스키협회 쪽에서도 같은 공급업체 제품을 3년 동안 써왔고 이전 국제대회 검사에서는 문제가 없었다는 취지로 해명했습니다.
이 대목이 스포츠 팬 입장에서는 가장 복잡합니다. 규정 위반 결과는 선수 기록에 찍힙니다. 하지만 장비 준비는 선수 혼자 감당하는 영역이 아닙니다. 크로스컨트리 대표팀에는 왁스 선택과 스키 베이스 관리, 현장 조건 대응을 맡는 기술 스태프가 있고, 공급업체와 협회 관리 체계도 얽혀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선수의 도덕성 논란이라기보다 대표팀 장비 관리 시스템의 실패로 읽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순위권 밖 선수에게도 실격은 가볍지 않다
솔직히 메달 후보가 아니었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당시 외신은 한다솜과 이의진의 월드컵 랭킹을 각각 157위, 158위권으로 전했습니다. 예선 순위도 상위 30명과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림픽에서 한 번의 공식 기록을 남긴다는 건 한국 크로스컨트리 선수에게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한국 크로스컨트리는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같은 강국과 같은 출발선에 서지만 출발선 뒤의 인프라는 같지 않습니다. 눈 위 훈련 환경, 장비 테스트 데이터, 전문 테크니션 풀, 유럽 대회 경험까지 차이가 큽니다. 그래서 하위권 기록도 맥락 없이 보면 안 됩니다. 70위와 74위라는 숫자는 세계 정상권과의 격차를 보여주지만, 실격 표시는 그 격차를 분석할 기회마저 지워버립니다.
- 경기: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여자 스프린트 클래식 예선
- 장소: 이탈리아 테세로 크로스컨트리 경기장
- 대상 선수: 이의진, 한다솜
- 검출 사유: 스키 베이스 왁스의 불소 계열 금지 성분
- 규정 배경: FIS의 2023-2024시즌 전면 금지 시행
이 사건이 남긴 건 ‘검사 통과’의 문제가 아니다
비슷한 시기 일본 스노보드 선수도 불소 왁스 문제로 실격된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건 특정 국가만의 실수라기보다 겨울 종목 전체가 장비 규정 전환기에 얼마나 예민한 구간을 지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예전에는 성능을 위해 당연하게 쓰던 재료가 이제는 검사 장비 앞에서 선수 커리어를 흔드는 리스크가 됐습니다.
대표팀은 이후 문제가 된 스키를 교체하고 공급업체에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다음 단계는 더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납품 제품의 로트별 검사, 현장 왁싱 공간의 교차 오염 관리, 대회 전 자체 장비 스캔 같은 절차가 필요합니다. 국제무대에서는 “우리는 몰랐다”가 기록을 되살려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두 선수는 이후 여자 10km 프리 경기에 다시 나섰고, 이의진은 73위, 한다솜은 80위로 완주했습니다. 이 장면이 저는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실격 논란이 이미 터진 뒤에도 다시 스타트 라인에 섰다는 건, 기록표 밖의 회복력까지 보여주는 일이니까요. 한국 크로스컨트리가 이 사건을 억울한 해프닝으로만 소비하지 않고 장비 관리의 기준을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는다면, 이번에 사라진 기록도 아주 헛되지만은 않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