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최가온의 하프파이프 예선 기록을 다시 찾아보다가, 처음 봤을 때보다 더 흥미로운 지점이 보였습니다. 단순히 “어린 선수가 결승에 올랐다”는 뉴스가 아니었어요. 예선 6위, 82.25점, 금메달 확률 2위라는 숫자들이 따로 놀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스노보드 하프파이프는 결과표만 보면 꽤 차갑습니다. 점수와 순위만 남죠. 그런데 실제로는 두 번의 시기 중 어떤 구성을 가져갔는지, 어느 순간에 난도를 올렸는지, 착지가 얼마나 버텼는지가 전부 이야기입니다. 최가온의 결승행은 바로 그 지점에서 볼수록 맛이 나는 경기였습니다.
예선 82.25점, 6위라는 숫자의 진짜 무게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예선에서 최가온은 82.25점을 받았습니다. 예선에는 24명이 나섰고, 상위 12명만 결승으로 갔습니다. 두 차례 연기 중 높은 점수 하나만 반영되는 방식이라 첫 시기에서 안정적인 점수를 확보하는 게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최가온은 1차 시기에서 82.25점을 찍으며 결승권을 거의 손에 넣었습니다. 사실 이 점수가 꽤 의미 있는 이유는, 단순히 ‘잘 탔다’는 감상보다 운영이 좋았다는 데 있습니다. 하프파이프에서 높이와 회전, 그랩, 착지의 완성도는 서로 얽혀 있습니다. 난도만 욕심내면 착지가 흔들리고, 안정성만 택하면 점수 상한이 낮아집니다.
2차 시기에서는 더 높은 난도를 노렸지만 마지막 착지에서 흔들렸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도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1차 시기로 결승행을 굳혀둔 상황이었기 때문에, 2차 시기는 결승에서 꺼낼 카드의 감각을 확인하는 성격도 있었습니다. 예선 6위는 압도적인 1위와는 다른 모양이지만, 금메달 후보가 조용히 몸을 푼 기록으로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금메달 확률 2위, 배당률은 왜 최가온을 높게 봤나
당시 해외 배당 시장에서는 최가온의 금메달 가능성을 36% 안팎으로 봤고, 클로이 김 다음가는 2위 후보로 평가했습니다. 이 수치가 재미있는 건 예선 순위만 보면 최가온이 6위였다는 점입니다. 순위표만 읽으면 1위 클로이 김이 훨씬 앞서 보이지만, 시장은 시즌 흐름과 기술 구성까지 같이 반영합니다.
최가온은 올림픽 직전 시즌 월드컵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MBC 보도에서도 올림픽 전 마지막 월드컵 우승을 포함해 시즌 3승을 거둔 선수로 소개됐습니다. 그 말은 예선 하루 컨디션만으로 평가할 선수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프파이프처럼 변수가 큰 종목에서는 최근 몇 달간의 최고점, 큰 경기에서의 회복력, 실패 후 다시 완주하는 능력이 배당률에 녹아듭니다.
- 예선 점수: 82.25점
- 예선 순위: 전체 6위
- 결승 진출권: 24명 중 상위 12명
- 금메달 가능성 평가: 클로이 김에 이은 2위권
- 당시 경쟁 구도: 클로이 김의 3연패 도전과 최가온의 첫 올림픽 도전
솔직히 이런 구도는 스포츠 팬 입장에서 가장 재밌습니다. 이미 왕좌에 앉아 있는 선수와, 기록상으로는 충분히 뒤집을 수 있는 도전자가 같은 파이프에 서는 장면이니까요. 클로이 김은 올림픽 3연패를 노리는 상징적인 이름이었고, 최가온은 한국 설상 종목의 판을 바꿀 수 있는 이름으로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클로이 김과의 비교, 나이보다 중요한 건 완성도였다
최가온을 말할 때 자주 붙는 표현이 ‘10대 천재’입니다. 2008년생, 고교생, 첫 올림픽 같은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그런데 기록을 보는 입장에서는 나이보다 완성도가 더 중요합니다. 어린 선수가 잘한다는 이야기는 신선하지만, 올림픽 결승에서는 신선함만으로 점수가 나오지 않습니다.
클로이 김은 이미 평창과 베이징을 거치며 여자 하프파이프의 기준점이 된 선수입니다. 예선에서도 90점대 점수를 받으며 1위로 결승에 올랐습니다. 최가온이 금메달 확률 2위로 평가받았다는 건, 단순한 기대주가 아니라 클로이 김의 실질적인 경쟁자로 계산됐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둘의 차이는 경험과 상징성에서 컸습니다. 하지만 최가온에게는 최근 흐름과 기술 확장성이 있었습니다. 큰 점수를 낼 수 있는 구성이 있고, 이미 국제 무대에서 우승 경험을 쌓았고, 예선에서 무리하지 않아도 결승에 갈 수 있는 기본점이 있었습니다. 이런 선수는 결승에서 한 번 제대로 맞으면 순위를 크게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결승에서 터진 90.25점, 숫자가 이야기로 바뀐 순간
예선의 ‘금메달 확률 2위’라는 문구가 진짜 힘을 얻은 건 결승에서였습니다. 연합뉴스 보도 기준으로 최가온은 결승 1차 시기에서 넘어지며 10점에 그쳤고, 2차 시기도 완주하지 못했습니다. 이쯤 되면 보통은 흐름이 끊겼다고 봅니다. 특히 올림픽 결승이라면 부담은 더 커집니다.
그런데 마지막 3차 시기에서 90.25점이 나왔습니다. 클로이 김의 88.00점을 넘긴 점수였습니다. 재미있는 건, 마지막 시기에서 무조건 가장 어려운 기술만 밀어붙인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최가온은 1080도 이상의 고난도 구성 대신 900도와 720도 회전을 섞어 완주와 완성도를 잡았습니다. 이 선택이 굉장히 스포츠적입니다. 겁 없이 밀어붙인 승부라기보다, 지금 필요한 점수가 무엇인지 정확히 읽은 주행이었습니다.
하프파이프에서 90점대는 ‘큰 실수가 없다’만으로 나오기 어렵습니다. 높이, 회전의 선명함, 동작의 연결, 착지의 안정감이 함께 맞아야 합니다. 최가온은 벼랑 끝에서 난도를 조절했고, 그 조절이 오히려 최고점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이 금메달은 운 좋게 한 번 터진 장면보다, 예선에서부터 쌓아온 판단의 연장선으로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한국 설상 종목에서 이 기록이 남긴 장면
최가온의 금메달은 한국 스키·스노보드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로 기록됐습니다. 한국 동계스포츠는 오랫동안 빙상 종목의 비중이 컸습니다.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이 메달 흐름을 이끌었고, 설상 종목은 상대적으로 ‘가능성’이라는 단어에 더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최가온의 레이스는 그 가능성을 실제 점수표로 바꿨습니다. 예선 82.25점으로 결승에 오르고, 결승 마지막 시기 90.25점으로 뒤집는 흐름은 어린 선수의 반짝 활약이라기보다 종목의 기준선을 새로 그은 사건에 가깝습니다. 특히 금메달 확률 2위라는 사전 평가가 실제 금메달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더 그렇습니다. 시장의 숫자, 시즌 성적, 현장 경기력이 같은 방향을 가리킨 드문 사례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경기의 매력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고 봅니다. 최가온은 처음부터 끝까지 압도한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예선 6위였고, 결승에서도 두 번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한 번에 자신이 왜 금메달 후보였는지를 보여줬습니다. 스포츠에서 숫자는 차갑지만, 가끔은 가장 뜨거운 장면을 오래 붙잡아두는 장치가 됩니다. 최가온의 82.25점과 90.25점은 아마 한동안 그렇게 읽히는 기록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