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지인이 차박을 시작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미 트렁크에는 접이식 매트, 감성 조명, 전기포트, 미니 테이블이 들어가 있더군요. 그런데 제가 제일 먼저 물어본 건 장비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차 안에서 다리 뻗고 누워봤냐”였습니다. 차박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차에서 자는 겁니다. 근데 막상 해보면 단순하지 않습니다. 허리 배기고, 창문에 물 맺히고, 새벽에 화장실 멀고, 옆 차 시동 소리에 잠 깨는 일이 꽤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차박을 너무 쉽게 봤습니다. 텐트 안 치면 편하겠지 싶었는데, 첫날 밤에 차 안 습기 때문에 침낭 겉이 축축해졌습니다. 창문을 닫으면 답답하고, 열면 벌레가 들어오고, 평평하지 않은 바닥 때문에 새벽 3시에 자세를 몇 번이나 바꿨습니다. 그 뒤로 차박 장비를 고르는 기준이 달라졌습니다. 예쁜 장비보다 잠을 제대로 자게 해주는 장비가 먼저입니다.
차박은 장소 선택이 절반입니다
차박 초보가 가장 많이 놓치는 게 장소입니다. 차만 세우면 어디든 잘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유지, 주차 금지 구역, 취사 금지 구역, 야간 출입 제한 구역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특히 해변이나 계곡 주변은 낮에는 괜찮아 보여도 밤에는 단속이 있거나 민원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처음 가는 곳이면 화장실, 물 사용 가능 여부, 야간 조명, 차량 진입로를 먼저 봅니다. 캠핑장이라도 진입로가 좁고 경사가 심하면 밤에 들어가다 고생합니다. 비 온 뒤에는 흙길이 미끄러워 2륜 차량이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 봄철 산 아래 캠핑장에서 승용차 한 대가 젖은 풀밭에 바퀴가 헛돌아 한 시간 넘게 밀었던 적이 있습니다.
- 초보는 유료 캠핑장이나 공식 차박 가능 구역부터 시작하는 게 편합니다.
- 화장실까지 걸어서 3분 이내면 밤에 훨씬 덜 피곤합니다.
- 바닥 경사는 잠자리보다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 강가 바로 옆은 보기엔 좋아도 새벽 습기와 안전 문제가 있습니다.
소음도 중요합니다. 큰 도로 옆은 밤새 트럭 소리가 납니다. 항구 근처는 새벽 조업 차량이 움직입니다. 풍경만 보고 자리를 잡으면 잠을 망칠 수 있습니다. 차박은 전망 좋은 자리보다 조용하고 평평한 자리가 먼저입니다.
잠자리는 매트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차박에서 제일 중요한 건 바닥 평탄화입니다. SUV든 경차든 뒷좌석을 접었다고 완전히 평평해지는 차는 많지 않습니다. 2~3cm 단차만 있어도 허리가 꺾입니다. 하루는 버텨도 다음 날 운전할 때 피곤함이 바로 옵니다.
평탄화는 전용 보드가 있으면 편하지만 꼭 비싼 제품부터 살 필요는 없습니다. 처음엔 집에 있는 요가매트, 얇은 합판, 접이식 발포매트로 높이를 맞춰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단, 너무 푹신한 매트리스 하나만 깔면 단차가 그대로 느껴집니다. 아래는 단단하게, 위는 적당히 쿠션 있게 가는 게 낫습니다.
매트 두께는 어느 정도가 좋나
차 안에서 쓸 매트는 보통 5cm 이상이면 무난합니다. 체중이 많이 나가거나 옆으로 자는 사람은 8cm급 자충매트가 편합니다. 다만 두꺼울수록 접었을 때 부피가 큽니다. 혼자 다니는 차박이면 괜찮지만, 2명이 타고 장비까지 싣는다면 수납이 금방 꽉 찹니다.
저는 계절에 따라 매트를 다르게 씁니다. 여름엔 얇은 발포매트와 통풍이 되는 패드를 쓰고, 겨울엔 바닥 냉기를 막으려고 발포매트 위에 자충매트를 올립니다. 차 바닥은 생각보다 차갑습니다. 특히 11월 이후에는 침낭보다 바닥 단열을 먼저 챙기는 게 맞습니다.
환기와 습기, 이걸 가볍게 보면 밤새 불편합니다
차박을 하면 창문에 물이 맺힙니다. 사람이 자면서 내뿜는 숨만으로도 차 안 습도가 올라갑니다. 성인 한 명이 하룻밤 동안 내뿜는 수분이 꽤 되기 때문에 창문을 꽉 닫고 자면 아침에 유리창이 젖고 침구도 눅눅해집니다. 겨울에는 그 물기가 얼기도 합니다.
그래서 차박에는 환기가 필수입니다. 창문을 손가락 한두 마디 정도 열고, 모기장이나 윈도우 삭스를 씌우면 벌레와 시선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습니다. 비 오는 날에는 빗물 유입을 막는 창문 가드가 있으면 편합니다. 단, 밀폐된 차 안에서 난로를 켜고 자는 건 위험합니다. 일산화탄소 경보기 하나 있다고 안심할 일이 아닙니다. 난방기구는 깨어 있을 때만 쓰고, 잠잘 때는 침낭과 바닥 단열로 버티는 쪽이 안전합니다.
- 창문은 완전 밀폐보다 약간 열어두는 편이 낫습니다.
- 차 안 조리는 냄새와 습기를 크게 늘립니다.
- 겨울에는 배터리 난방보다 침낭 온도 등급을 먼저 봐야 합니다.
- 일산화탄소 경보기는 보조 장비이지 안전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차 안에서 라면 하나 끓이면 금방 따뜻해지긴 합니다. 그런데 냄새가 오래가고 천장에 습기가 붙습니다. 저는 비 오는 날 빼고는 조리는 되도록 밖에서 합니다. 차 안은 자는 공간으로 남겨두는 게 관리가 쉽습니다.
장비는 많이 사기보다 빠지는 걸 막아야 합니다
차박 장비를 사다 보면 끝이 없습니다. 테이블, 체어, 랜턴, 파워뱅크, 냉장고, 커튼, 타프, 루프박스까지 눈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다 사면 자기 스타일을 알기 전에 돈부터 씁니다. 제 창고에도 그런 장비가 몇 개 있습니다. 예뻐서 샀는데 무겁고 설치가 번거로워 결국 안 들고 다니는 물건들입니다.
처음 차박을 시작한다면 저는 네 가지만 먼저 보라고 합니다. 잠자리, 환기, 조명, 식수입니다. 이 네 가지가 안정되면 나머지는 불편한 지점이 보일 때 하나씩 더하면 됩니다. 파워뱅크도 마찬가지입니다. 전기장판, 전기포트, 냉장고를 동시에 쓰려면 큰 용량이 필요하지만, 휴대폰 충전과 작은 조명 정도면 소형으로도 충분합니다.
초보용 기본 장비 기준
- 매트: 차 바닥 단차를 잡을 수 있는 두께와 크기
- 침낭: 봄가을 기준 쾌적 온도 5도 안팎, 겨울은 더 낮은 등급
- 조명: 실내등 방전 방지를 위해 별도 랜턴 사용
- 커튼: 사생활 보호와 아침 햇빛 차단용
- 물통: 5리터 정도면 1박 기준 손 씻기와 간단한 세척에 무난
비싼 장비가 나쁜 건 아닙니다. 다만 본인 패턴이 잡히기 전에는 중간 가격대가 실패 비용이 적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다니는 사람과 매주 나가는 사람의 장비 기준은 다릅니다. 가족 차박과 혼자 백패킹 겸 차박도 완전히 다릅니다. 장비는 사용 횟수와 귀찮음을 기준으로 봐야 합니다.
계절별로 조심할 게 다릅니다
봄가을 차박은 낮과 밤 기온 차가 큽니다. 낮에 반팔 입고 돌아다니다가 새벽에 5도 아래로 떨어지는 날도 있습니다. 이때 얇은 이불만 가져가면 잠을 설치기 쉽습니다. 여름은 더위보다 벌레와 습기가 문제입니다. 문을 열어야 시원한데 벌레가 들어오고, 문을 닫으면 금방 답답해집니다.
겨울 차박은 낭만보다 준비가 먼저입니다. 영하권에서는 물통이 얼고, 배터리 효율도 떨어집니다. 침낭은 광고 문구보다 쾌적 온도를 봐야 합니다. 극한 온도는 버틸 수 있는 최저치에 가깝고, 편하게 자는 기준으로 보면 안 됩니다. 저는 겨울에 차박을 처음 하는 분에게는 전기장판보다 겨울용 침낭과 발포매트를 먼저 권합니다.
- 봄: 꽃가루와 큰 일교차를 챙깁니다.
- 여름: 모기장, 그늘, 얼음 보관이 중요합니다.
- 가을: 새벽 기온이 예상보다 낮습니다.
- 겨울: 바닥 단열과 환기를 동시에 봐야 합니다.
또 하나, 차박은 운전이 남아 있습니다. 밤새 춥거나 덥거나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면 다음 날 운전이 위험해집니다. 캠핑은 버티는 놀이가 아닙니다. 몸 상태가 안 좋으면 하루 더 쉬거나 일찍 철수하는 판단도 필요합니다.
처음 1박은 가까운 곳에서 작게 시작하는 게 낫습니다
첫 차박부터 먼 바다나 산속으로 가면 변수가 커집니다. 빠진 장비가 있어도 사기 어렵고, 비가 오거나 바람이 세지면 대처가 늦습니다. 저는 초보에게 집에서 1시간 안쪽, 편의점이나 마트가 멀지 않은 곳을 권합니다. 그렇게 한 번 자보면 자기 차의 단차, 필요한 수납 방식, 실제로 쓰는 장비가 바로 보입니다.
차박은 장비 자랑보다 자기 리듬을 찾는 쪽에 가깝습니다. 어떤 사람은 테이블 펴고 요리하는 걸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간단히 먹고 오래 걷는 걸 좋아합니다. 저는 요즘 후자에 가깝습니다. 짐이 줄면 출발이 쉬워지고, 출발이 쉬워지면 더 자주 나가게 됩니다. 비싼 장비보다 다시 나가고 싶게 만드는 구성이 오래 갑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꾸미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하룻밤 자고 돌아와서 불편했던 것 하나만 고치면 됩니다. 허리가 아팠으면 매트, 답답했으면 환기, 추웠으면 바닥 단열을 손보면 됩니다. 그렇게 몇 번 다니다 보면 남들이 좋다는 차박이 아니라 내 몸에 맞는 차박이 됩니다. 그게 결국 오래 가는 방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