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7월 말에 강원도 쪽으로 차박을 다녀왔는데, 낮에는 그늘에 세워도 차 안 온도가 금방 35도 가까이 올라가더군요. 밤에는 좀 낫겠지 싶었는데 습기가 문제였습니다. 여름 차박은 장비를 많이 챙기는 싸움이 아니라, 더위·습기·벌레·식중독을 얼마나 덜어내느냐가 거의 전부입니다.
저도 예전엔 감성 랜턴, 테이블, 의자, 조리도구를 잔뜩 싣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한여름엔 예쁜 장비보다 바람 잘 통하고, 음식 안 상하고, 잠을 제대로 자는 게 먼저입니다. 특히 초보라면 여름 차박 준비물은 보기 좋은 것보다 생존에 가까운 물건부터 챙기는 게 맞습니다.
여름 차박은 잠자리 세팅이 반 이상입니다
차박에서 잠을 망치면 다음 날 일정이 다 무너집니다. 여름엔 두꺼운 침낭보다 얇은 여름용 블랭킷이나 쿨링 패드가 낫습니다. 새벽에도 24도 아래로 잘 안 떨어지는 날이 많아서 3계절 침낭을 펼쳐놓고 자면 땀에 젖기 쉽습니다.
차 안 바닥은 생각보다 울퉁불퉁합니다. SUV든 경차든 평탄화 매트는 꼭 확인해야 합니다. 두께는 보통 5cm 이상이면 허리가 덜 배깁니다. 에어매트는 작게 접혀서 좋지만, 한여름엔 등 쪽에 열이 차는 편이라 통풍 매트나 얇은 패드를 하나 더 깔면 훨씬 낫습니다.
- 평탄화 매트 또는 자충 매트
- 얇은 여름 이불, 블랭킷
- 목을 받쳐주는 낮은 베개
- 창문 모기장 또는 차량용 방충망
- 햇빛을 막는 앞유리 차광막
여기서 방충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습니다. 창문을 닫고 자면 답답하고, 열어두면 모기와 날벌레가 들어옵니다. 저는 예전에 방충망 없이 바닷가에서 잤다가 새벽 2시에 모기 때문에 철수한 적도 있습니다. 몇 만 원 아끼려다 하루를 날리는 장비가 이런 겁니다.
더위 잡는 준비물은 전기보다 바람길입니다
여름 차박 준비물 하면 휴대용 선풍기부터 떠올리는데, 선풍기 하나로 차 안 더위를 해결하긴 어렵습니다. 중요한 건 바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길을 만드는 겁니다. 창문을 양쪽으로 조금씩 열고, 한쪽엔 선풍기를 배기 방향으로 두면 체감이 꽤 달라집니다.
휴대용 선풍기는 배터리 용량을 봐야 합니다. 10,000mAh급이면 약풍 기준으로 밤새 버티는 제품도 있지만, 강풍으로 돌리면 3~5시간 만에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풍기 두 대를 약하게 돌리는 게 한 대를 세게 돌리는 것보다 조용하고 편할 때가 많습니다.
- 충전식 선풍기 1~2대
- 보조배터리 20,000mAh 이상
- 차량용 서큘레이터 또는 USB 팬
- 차광막, 은박 매트, 타프
- 얇은 긴팔 옷과 쿨토시
타프는 있으면 좋지만 차박 초보가 처음부터 큰 렉타 타프를 사는 건 조금 과합니다. 혼자나 둘이 다니면 차량 옆에 붙이는 사이드 어닝형 그늘막이나 작은 타프가 설치도 쉽고 수납도 편합니다. 바람 센 날에는 팩다운을 제대로 못 하면 위험하니, 팩과 스트링은 기본 구성품보다 한 단계 튼튼한 걸 쓰는 게 낫습니다.
음식과 물은 보냉이 아니라 안전 문제입니다
여름엔 음식이 정말 빨리 상합니다. 특히 김밥, 샌드위치, 양념 고기, 해산물은 차 안에 잠깐 둬도 상태가 금방 안 좋아집니다. 캠핑 가서 배탈 나면 낭만이고 뭐고 없습니다. 저는 여름엔 조리 많이 하는 메뉴보다 바로 먹거나 짧게 끓이는 메뉴를 고릅니다.
아이스박스는 크기보다 유지 시간이 중요합니다. 1박이면 20~30L 정도로도 충분한데, 얼음팩을 위아래로 나눠 넣고 자주 여닫지 않는 게 더 중요합니다. 음료용 쿨러와 식재료용 쿨러를 나누면 좋지만, 짐을 줄이고 싶다면 식재료를 먼저 먹는 순서로 위쪽에 배치하면 됩니다.
- 하드쿨러 또는 보냉백
- 얼음팩 2~4개
- 생수 1인 기준 하루 2L 이상
- 전해질 음료나 이온 음료
- 간단한 즉석식, 컵라면, 레토르트 식품
- 밀폐용 지퍼백과 음식물 쓰레기봉투
물은 생각보다 많이 씁니다. 마시는 물만 계산하면 부족합니다. 손 씻고, 조리하고, 컵 헹구는 물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더운 날엔 1인당 하루 2L는 최소로 보고, 땀 많이 흘리는 일정이면 3L 가까이 잡는 게 마음 편합니다.
벌레, 습기, 냄새는 작은 물건으로 줄입니다
여름 차박에서 사람을 지치게 하는 건 큰 사고보다 사소한 불편입니다. 모기 한두 마리, 젖은 수건 냄새, 끈적한 바닥, 축축한 이불 같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름엔 감성 소품보다 위생용품을 더 꼼꼼히 챙깁니다.
- 모기 기피제와 벌레 물린 데 바르는 약
- 휴대용 모기향 또는 전자 모기퇴치기
- 물티슈, 손소독제, 키친타월
- 흡습제나 작은 제습제
- 젖은 옷을 담을 방수 파우치
- 차량용 쓰레기봉투와 탈취제
습기는 진짜 무시하면 안 됩니다. 밤에 창문을 조금 열어도 차 안 유리에 물방울이 맺히는 날이 있습니다. 침구가 축축해지면 다음 날도 찝찝합니다. 얇은 극세사 타월 하나를 따로 두고 유리 안쪽을 닦아주면 의외로 쾌적합니다.
그리고 벌레 기피제는 피부에 직접 쓰는 것과 주변에 뿌리는 것을 구분하는 게 좋습니다. 어린아이나 반려견과 같이 간다면 성분도 확인해야 합니다. 냄새 강한 제품을 차 안에서 많이 쓰면 잠자리가 더 괴로워질 수 있습니다.
초보가 빼먹기 쉬운 안전 장비
여름 차박은 장소 선택도 장비만큼 중요합니다. 계곡 옆, 하천 둔치, 바닷가 방파제 근처는 날씨가 바뀌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비 예보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물 가까운 곳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밤사이 상류에 비가 오면 내가 있는 곳은 멀쩡해 보여도 물이 갑자기 불어납니다.
차 안에서 전기 장비를 쓸 때도 욕심내면 안 됩니다. 파워뱅크를 쓴다면 소비전력을 보고 계산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500Wh 파워뱅크에 40W 냉장고를 계속 물리면 단순 계산으로 12시간 정도지만, 실제로는 효율과 주변 온도 때문에 더 짧게 봐야 합니다.
- 헤드랜턴 또는 손전등
- 예비 건전지와 충전 케이블
- 응급약, 밴드, 소독솜
- 작은 소화기
- 우비 또는 방수 재킷
- 차량 점프스타터
- 타이어 공기압 체크 도구
헤드랜턴은 손전등보다 훨씬 편합니다. 밤에 화장실 가거나 팩을 다시 박을 때 양손이 비어야 합니다. 휴대폰 플래시만 믿는 분들도 있는데, 배터리 떨어지면 연락 수단과 조명 수단을 동시에 잃습니다.
소화기도 은근히 안 챙깁니다. 차박은 차와 불을 가까이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버너, 모기향, 랜턴, 배터리 장비가 한 공간에 모입니다. 작은 차량용 소화기 하나는 자리도 많이 안 차지합니다.
가격대별로 보면 이렇게 챙기면 됩니다
처음부터 다 살 필요 없습니다. 여름 차박 준비물은 예산에 따라 우선순위를 나누는 게 좋습니다. 10만 원 안쪽이면 방충망, 선풍기, 차광막, 물통, 기본 위생용품부터 맞추는 게 낫습니다. 잠자리는 집에 있는 얇은 이불과 돗자리로 시작해도 됩니다.
20~40만 원 정도 쓸 수 있다면 평탄화 매트와 쿨러를 제대로 고르는 게 체감이 큽니다. 이 두 가지가 불편하면 차박 자체가 싫어집니다. 특히 매트는 매장에서 누워보거나, 최소한 반품 가능한 곳에서 사는 게 좋습니다. 사람마다 허리 상태가 달라서 후기가 전부 맞진 않습니다.
50만 원 이상 예산이 있다면 파워뱅크, 차량용 냉장고, 타프까지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저는 초보에게 차량용 냉장고부터 권하진 않습니다. 1박 위주라면 좋은 쿨러와 얼음팩 조합이 더 단순하고 고장 걱정도 적습니다. 장박이나 여름에 자주 나가는 사람에게 냉장고가 맞습니다.
여름 차박은 장비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훨씬 편해집니다. 남들이 올린 사진처럼 꾸미는 것보다, 내가 땀 덜 흘리고 잠 제대로 자고 안전하게 돌아오는 게 더 중요합니다. 저도 아직 여름엔 장비를 줄이고, 물과 그늘과 통풍에 더 신경 씁니다. 그게 오래 다니는 쪽에 훨씬 가깝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