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위키드 캐스팅표를 다시 보는데, 같은 작품을 여러 번 본 사람일수록 제일 먼저 보는 칸이 결국 엘파바와 글린다더군요. 사실 이 작품은 무대 장치가 크고 음악이 워낙 유명해서 ‘누가 해도 위키드’처럼 보이지만, 객석에 앉아보면 공연의 온도는 출연진 조합에서 꽤 크게 갈립니다.
2025년 서울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2025년 부산 드림씨어터, 2026년 대구 계명아트센터로 이어진 내한 공연 기준으로 많이 확인된 주요 출연진은 글린다 역 코트니 몬스마, 엘파바 역 셰리든 아담스, 피에로 역 리암 헤드, 모리블 학장 역 제니퍼 불레틱, 네사로즈 역 첼시 딘, 보크 역 커티스 파파디니스입니다. 오즈의 마법사와 딜라몬드 교수 배역은 도시와 공지 시점에 따라 표기가 달라진 부분이 있어, 예매 전에는 NOL 티켓이나 공연 공식 채널의 회차별 안내를 꼭 한 번 더 확인하는 쪽이 정확합니다.
위키드 출연진을 보는 순서
처음 위키드를 예매한다면 출연진 이름을 전부 외우려고 하기보다, 역할의 기능을 먼저 보는 게 훨씬 빠릅니다. 엘파바는 작품의 척추입니다. 초록 피부를 가진 인물이 세상과 부딪히며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는 흐름을 끌고 가죠. 반대로 글린다는 관객의 호흡을 부드럽게 열어주는 역할입니다. 웃음, 리듬, 사랑스러움, 그리고 후반부의 균열까지 모두 가져가야 합니다.
셰리든 아담스의 엘파바는 감정을 세게 밀어붙이기보다, 안쪽에서 단단히 쌓아 올리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Defying Gravity’가 단순한 고음 넘버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이 인물이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순간이 살아야 하는데, 그 지점에서 목소리의 힘과 몸의 긴장이 함께 올라옵니다. 코트니 몬스마의 글린다는 반짝임이 분명한 배우입니다. ‘Popular’ 같은 장면에서 객석을 쥐고 흔드는 감각이 있고, 과하게 귀엽게만 가지 않을 때 후반의 씁쓸함도 잘 남습니다.
엘파바와 글린다 조합으로 취향 찾기
위키드는 두 배우가 각자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 작품의 재미는 두 사람이 서로를 밀어내다가, 어느 순간 서로에게 가장 큰 변수가 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출연진을 고를 때는 ‘누가 더 노래를 잘하나’보다 ‘둘 사이의 결이 잘 맞을까’를 보는 편이 좋습니다.
엘파바 중심으로 보고 싶다면 감정선이 깊게 눌리는 회차가 맞습니다. 편견, 분노, 외로움, 선택의 대가 같은 단어에 반응하는 관객이라면 엘파바의 서사가 크게 들어옵니다. 반대로 글린다의 변화를 따라가는 관람도 꽤 매력적입니다. 처음에는 가볍고 눈부신 인물처럼 보이지만, 사실 글린다는 사회가 좋아하는 얼굴을 너무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코미디가 잘 살아야 후반의 변화도 더 아프게 옵니다.
- 처음 관람: 엘파바와 글린다의 대표 조합이 올라오는 주말 낮 공연이 무난합니다.
- 음악 중심 관람: 엘파바 컨디션과 얼터네이트 출연 여부를 확인하는 게 좋습니다.
- 드라마 중심 관람: 피에로, 모리블 학장, 마법사 쪽 배우의 무게감도 함께 봐야 합니다.
- 재관람: 같은 좌석보다 다른 층, 다른 시야에서 보는 편이 작품 구조가 새로 보입니다.
조연 출연진이 공연의 질감을 바꿉니다
위키드를 엘파바와 글린다의 이야기로만 보면 절반만 본 겁니다. 피에로는 단순한 로맨스 상대가 아닙니다. 작품 안에서 ‘가벼워 보이는 사람도 선택 앞에서는 달라질 수 있다’는 변화를 담당하죠. 리암 헤드가 맡은 피에로는 등장 초반의 여유와 후반의 방향 전환이 자연스러워야 빛납니다. 이 역이 너무 멋있게만 서 있으면 엘파바와 글린다 사이의 긴장감이 얕아집니다.
모리블 학장은 더 중요합니다. 제니퍼 불레틱이 맡은 모리블은 권력의 언어를 보여주는 역할입니다. 위키드가 단순한 판타지로 끝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누가 착하고 누가 나쁜가를 말하기보다, 누가 이야기를 만들고 퍼뜨리는가를 무대 위에서 보여주거든요. 보크와 네사로즈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선택들이 쌓여 비극의 방향을 바꾸는 인물들이라, 이쪽 장면이 살아야 2막이 갑자기 무거워지지 않습니다.
예매 전에 확인할 것
위키드 같은 대형 내한 공연은 캐스팅이 고정처럼 보여도 실제 회차에서는 얼터네이트, 스윙, 언더스터디가 중요합니다. 공식 캐스트 명단에는 조이 코핀저가 엘파바 얼터네이트로 올라와 있었고, 스윙과 앙상블 배우들도 작품의 완성도를 받치는 구조입니다. 특히 위키드는 군무, 무대 전환, 리프트, 플라잉, 버블 머신 같은 장치가 촘촘히 맞물립니다. 주연만 보는 작품이 아니라 팀 전체의 호흡으로 굴러가는 공연입니다.
공연 시간도 체력에 영향을 줍니다. 내한 공연 기준 러닝타임은 인터미션 포함 약 170분으로 공지됐고, 티켓 가격은 서울·부산·대구 주요 공지에서 VIP 19만 원, R 16만 원, S 13만 원, A 8만 원 선으로 안내됐습니다. 처음 보는 분이라면 1층 중앙 블록이 가장 안정적입니다. 다만 위키드는 무대 상부 장치와 전체 그림이 중요한 작품이라 2층 앞열도 만족도가 꽤 높습니다. 배우 표정을 세밀하게 보고 싶다면 1층, 오즈의 세계가 펼쳐지는 규모를 보고 싶다면 2층 앞쪽이 낫습니다.
초연·재연보다 중요한 건 이번 팀의 언어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내한 공연의 영어 가사와 자막 호흡이 낯설 수 있습니다. 근데 위키드는 음악의 박자와 배우의 신체 표현이 워낙 강해서, 언어가 달라도 감정의 큰 방향은 잘 전달되는 편입니다. 대신 자막을 계속 따라가면 배우의 표정과 무대 장치를 놓치기 쉽습니다. 줄거리를 아주 모른다면 관람 전 인물 관계 정도만 알고 가는 게 좋고, 세세한 반전은 남겨두는 편이 공연 맛이 납니다.
뮤지컬 위키드 출연진을 고르는 일은 결국 내가 어떤 공연을 보고 싶은지 고르는 일에 가깝습니다. 압도적인 고음과 해방감을 원하면 엘파바를, 밝은 표면 아래 흔들리는 사람의 변화를 보고 싶으면 글린다를, 거대한 판타지 안에 숨어 있는 권력과 소문의 구조를 보고 싶으면 조연진의 균형을 보면 됩니다. 저는 위키드를 볼 때마다 좋은 대극장 뮤지컬은 결국 배우 한 명의 폭발력과 팀 전체의 정밀함이 동시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