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지인이 항공 마일리지 카드를 바꾸겠다고 혜택표를 들고 왔는데, 첫 질문이 연회비도 실적도 아니었습니다. “이 카드 쓰면 1년에 유럽 왕복 나와?”였습니다. 솔직히 이런 질문이 제일 위험합니다. 마일리지 카드는 적립률이 높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월실적, 적립 제외, 월 적립한도, 항공권 발권 가능성까지 같이 봐야 합니다.
카드사에서 상품기획을 하다 보면 알게 됩니다. 마일리지 카드는 숫자가 예쁜 상품입니다. 1,000원당 1마일, 해외 2마일, 특정 업종 3마일 이런 식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소비자가 실제로 받는 값은 그보다 낮습니다. 특히 세금, 공과금, 아파트관리비, 상품권, 무이자할부, 보험료 일부가 빠지면 체감 적립률은 바로 내려갑니다.
1. 1마일의 가치를 먼저 정해야 합니다
마일리지 카드를 계산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1마일을 돈으로 바꾸는 겁니다. 저는 보수적으로 1마일을 10원 안팎으로 놓고 봅니다. 비즈니스석 장거리 발권을 잘 활용하면 그 이상도 가능하지만, 일반 소비자가 원하는 날짜에 원하는 노선으로 쓰기는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1,000원당 1마일 적립이면 표면상 적립률은 이렇게 계산됩니다. 1마일을 10원으로 보면 1,000원 결제에 10원 혜택, 즉 1%입니다. 1마일을 15원으로 보면 1.5%입니다. 그런데 이건 모든 결제가 적립되고, 한도도 없고, 마일리지를 제대로 쓴다는 전제가 붙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일리지 카드의 기본 적립률을 볼 때 1,000원당 1마일이면 현금성 카드의 0.8~1.2% 상품과 비교합니다. 1,000원당 1.5마일이면 꽤 좋아 보이지만, 연회비가 높거나 실적 조건이 빡빡하면 다시 계산해야 합니다.
2. 전월실적 50만원은 그냥 50만원이 아닙니다
마일리지 카드에서 가장 많이 놓치는 숫자가 전월실적입니다. 카드 안내에는 전월실적 50만원 이상이라고 쓰여 있어도, 실제 인정되는 결제는 다를 수 있습니다. 상품권, 세금, 관리비, 등록금, 선불카드 충전, 각종 수수료가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월 카드값이 100만원인 사람이 있어도 실적 인정액은 70만원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월 60만원 쓰는 사람인데 대부분 식비, 온라인 쇼핑, 교통비라면 실적은 깔끔하게 채울 수 있습니다. 같은 소비액이라도 카드가 보는 소비와 내가 보는 소비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전월실적 50만원 이상부터 특별 적립이 열린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매달 아파트관리비 25만원, 보험료 15만원, 상품권 10만원이 대부분이라면 실제 인정액은 10만원 남짓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마일리지 카드는 혜택이 있는 카드가 아니라 연회비 높은 일반 카드가 됩니다.
3. 월 100만원 소비자는 적립한도를 반드시 봐야 합니다
마일리지 카드는 고액 소비자에게 유리하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립니다. 기본 적립에 한도가 없으면 많이 쓸수록 유리합니다. 그런데 특별 적립 업종에 월 한도가 있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월 150만원을 쓰는 사람이 해외, 여행, 면세점에서 많이 결제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해외 1,000원당 2마일이라고 해도 월 50만원까지만 우대 적립이면 나머지 100만원은 기본 적립으로 돌아갑니다. 안내 문구의 2마일만 보고 기대하면 실제 적립액과 차이가 납니다.
- 월 50만원 사용, 1,000원당 1마일: 약 500마일
- 월 100만원 사용, 1,000원당 1마일: 약 1,000마일
- 월 150만원 사용, 특별 적립 50만원 2마일 + 기본 100만원 1마일: 약 2,000마일
위 계산에서 1마일을 10원으로 보면 월 혜택은 각각 5천원, 1만원, 2만원입니다. 연간으로는 6만원, 12만원, 24만원입니다. 여기서 연회비를 빼야 진짜 이득이 나옵니다.
4. 연회비 손익분기점은 생각보다 높습니다
마일리지 카드는 연회비가 3만원대부터 20만원 이상까지 넓습니다. 프리미엄 카드로 가면 바우처, 라운지, 여행자보험 같은 부가혜택이 붙지만, 그 혜택을 실제로 쓰지 않으면 숫자상으로는 비용입니다.
연회비 10만원 카드가 있고, 기본 적립이 1,000원당 1마일이라고 해보겠습니다. 1마일을 10원으로 보면 1% 혜택입니다. 단순히 연회비 10만원을 적립으로 회수하려면 연 1,000만원을 써야 합니다. 월평균 약 84만원입니다. 그런데 이건 모든 결제가 적립된다는 전제입니다.
만약 내 결제 중 20%가 적립 제외라면 연 1,250만원 가까이 써야 비슷해집니다. 월 104만원 수준입니다. 여기에 마일리지 사용이 불편해 실제 가치를 8원으로 낮춰 잡으면 필요한 소비액은 더 올라갑니다. 그래서 연회비가 높은 마일리지 카드는 “여행을 좋아한다”보다 “매달 일정 금액을 꾸준히 쓰고, 제외 항목이 적고, 마일리지 발권을 실제로 할 사람”에게 맞습니다.
5. 이런 소비 패턴이면 마일리지 카드가 맞습니다
제가 보는 마일리지 카드 적합자는 꽤 선명합니다. 첫째, 월 카드 사용액이 최소 80만~100만원 이상입니다. 둘째, 세금이나 관리비보다 일반 가맹점 소비 비중이 높습니다. 셋째, 항공권을 현금으로도 살 생각이 있는 사람입니다. 넷째, 성수기만 고집하지 않고 날짜 조정이 됩니다.
반대로 월 40만~60만원 정도를 쓰고, 대부분 생활비 할인 업종에 집중되어 있다면 현금성 할인 카드가 더 낫습니다. 특히 편의점, 배달, 통신, 대중교통, 온라인 쇼핑에서 매달 정해진 소비를 하는 사람은 마일리지보다 즉시 할인이나 포인트 적립이 계산상 유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월 100만원 소비 예시
월 100만원을 쓰고 전액 적립 대상이라고 가정하면, 1,000원당 1마일 카드로 월 1,000마일, 연 12,000마일입니다. 1마일 10원 기준으로 연 12만원 가치입니다. 연회비가 3만원이면 남는 구조가 됩니다. 연회비가 10만원이면 겨우 맞거나, 사용 불편성을 감안하면 애매합니다.
월 200만원 소비 예시
월 200만원이면 연 24,000마일입니다. 1마일 10원 기준 연 24만원입니다. 이 정도부터는 연회비 10만원 카드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다만 특별 적립 한도가 낮고 기본 적립률이 평범하면, 고액 소비의 장점이 충분히 살아나지 않습니다.
마일리지 카드는 여행 감성이 아니라 회수율로 봐야 합니다
마일리지 카드를 고를 때 “언젠가 여행 갈 때 좋겠지”라고 생각하면 계산이 흐려집니다. 저는 최소한 세 가지 숫자를 적어봅니다. 월 적립 대상 소비액, 연회비, 1마일을 얼마로 볼지입니다. 이 셋을 적으면 카드가 생각보다 빨리 판별됩니다.
마일리지는 잘 쓰면 분명 매력적입니다. 특히 장거리 노선, 좌석 등급 업그레이드, 가족 합산 활용까지 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현금 할인보다 낫습니다. 근데 그냥 국내선 1년에 한두 번 타고, 날짜도 주말이나 성수기만 가능한 사람이라면 마일리지의 장점은 꽤 줄어듭니다.
제 기준에서는 월 100만원 미만 소비자는 연회비 낮은 기본형만 봅니다. 월 150만원 이상이고 해외 결제나 여행 관련 소비가 꾸준하면 우대 적립형을 봅니다. 월 200만원 이상이면서 항공권 발권 경험이 있다면 프리미엄 카드도 계산해볼 만합니다. 카드 혜택표는 크게 보이지만, 내 지갑에 남는 건 결국 적립 제외를 지나고 연회비를 뺀 뒤의 숫자입니다. 마일리지 카드는 그 숫자가 남는 사람에게만 좋은 카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