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주를 찾아보겠다고 재무제표를 열어봤더니 생긴 일

가치주를 찾아보겠다고 재무제표를 열어봤더니 생긴 일

주가가 싸 보인다고 다 가치주는 아니었다

얼마 전 커피값을 아껴서 모은 돈으로 주식을 조금 더 사볼까 하다가, 문득 ‘가치주’라는 말을 다시 보게 됐다. 예전에는 그냥 주가가 많이 떨어진 종목, 혹은 배당을 주는 오래된 회사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몇 종목을 놓고 비교해보니 생각보다 훨씬 까다로운 단어였다.

가치주는 쉽게 말하면 회사가 가진 실력이나 자산에 비해 시장에서 낮게 평가받는 주식에 가깝다. 문제는 ‘낮게 평가’라는 말이 꽤 애매하다는 점이다. 1만 원짜리 주식이 5천 원이 됐다고 해서 자동으로 싸진 건 아니다. 회사의 이익이 반 토막 났거나, 업종 자체가 예전만큼 돈을 못 버는 상황이면 오히려 그 가격도 비쌀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가격표만 보는 대신 몇 가지 숫자를 같이 봤다. PER, PBR, 배당수익률, 부채비율, 영업이익 흐름 같은 것들이다. 이름은 좀 딱딱하지만, 생활비 가계부랑 비슷하게 생각하면 된다. 돈을 얼마나 벌고, 가진 것에 비해 가격이 어떤지, 빚은 감당 가능한지 보는 과정이다.

내가 먼저 본 숫자 4가지

처음부터 너무 많은 지표를 보면 금방 질린다. 나도 재무제표 창을 열었다가 숫자가 너무 많아서 한 번 닫은 적이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딱 4가지만 놓고 봤다.

  • PER: 회사가 버는 돈에 비해 주가가 어느 정도인지 보는 지표
  • PBR: 회사의 순자산에 비해 주가가 비싼지 싼지 보는 지표
  • 부채비율: 빚이 너무 무겁지 않은지 확인하는 숫자
  • 영업이익 흐름: 실제 장사가 꾸준히 되는지 보는 부분

예를 들어 PER이 7배인 회사와 25배인 회사가 있다고 치자. 단순히 보면 7배 회사가 더 싸 보인다. 그런데 7배 회사의 이익이 매년 줄고 있고, 25배 회사는 이익이 계속 늘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싼 이유가 있는 주식일 수 있기 때문이다.

PBR도 비슷했다. PBR 0.5배면 회사 장부상 가치의 절반 가격에 거래된다는 뜻이라 혹할 수 있다. 하지만 보유 자산이 실제로 돈을 벌어주는 자산인지, 아니면 오래된 설비나 팔기 어려운 자산인지도 봐야 했다. 숫자 하나만 보고 ‘이건 무조건 저평가’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걸 금방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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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주가 편해 보였는데 기다림이 제일 어려웠다

가치주의 매력은 화려하지 않은 데 있다. 매일 급등락하는 테마주보다 덜 불안해 보이고, 배당까지 주면 기다리는 동안 뭔가 받는 느낌도 있다. 솔직히 이 부분은 꽤 좋았다. 은행 예금처럼 딱 정해진 수익은 아니지만, 회사가 꾸준히 돈을 벌고 배당을 유지한다면 마음이 조금 덜 흔들린다.

그런데 직접 관심 종목을 추적해보니 진짜 어려운 건 매수가 아니라 기다림이었다. 저평가처럼 보여도 시장이 바로 알아주는 건 아니었다. 3개월, 6개월 동안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경우도 있고, 오히려 더 내려가는 날도 있었다. 이때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은 생각이 자주 든다.

특히 가치주는 뉴스에서 자주 주목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의 관심이 성장주나 인공지능, 2차전지, 바이오 같은 뜨거운 키워드로 몰릴 때는 더 조용하다. 그래서 가치주 투자는 숫자를 보는 일만큼이나 내 성격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나는 생각보다 지루함을 잘 못 견디는 편이었다.

싸다는 착각을 줄이려고 해본 방식

내가 가장 조심하려고 한 건 ‘싸 보이는 함정’이었다. 주가가 예전 고점 대비 50% 빠졌다는 이유만으로 접근하면 위험했다. 예전에는 잘 벌던 회사가 지금은 경쟁력을 잃었을 수도 있고, 원가 부담이나 환율, 규제 때문에 이익 구조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래서 종목을 볼 때 이렇게 나눠봤다. 첫째, 최근 3년 정도 매출과 영업이익이 크게 무너지지 않았는가. 둘째, 빚이 갑자기 늘지 않았는가. 셋째, 배당을 준다면 그 배당이 이익 안에서 감당 가능한가. 넷째, 왜 시장에서 인기가 없는지 설명이 되는가.

이 과정에서 의외로 탈락하는 종목이 많았다. 배당수익률이 6%라서 좋아 보였는데 이익보다 배당 부담이 큰 회사도 있었고, PBR이 낮지만 몇 년째 자기자본이 줄어드는 회사도 있었다. 반대로 엄청 싸 보이지는 않아도 이익이 꾸준하고 빚이 낮은 회사는 더 오래 보게 됐다.

내 기준에서 괜찮아 보였던 조합

  • PER이 업종 평균보다 낮은데 이익은 유지되는 회사
  • PBR이 낮으면서 현금흐름이 나쁘지 않은 회사
  • 배당을 무리해서 주지 않는 회사
  • 사업 내용이 내가 어느 정도 이해되는 회사

여기서 마지막 항목이 생각보다 중요했다. 사업을 이해하지 못하면 주가가 떨어졌을 때 버티기 어렵다. 반대로 회사가 뭘 팔고, 왜 돈을 버는지 대략 설명할 수 있으면 숫자 변화도 덜 막막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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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주를 볼 때 생활비 감각이 꽤 쓸모 있었다

재무제표를 본다고 해서 갑자기 전문가가 되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생활비 관리하듯 접근하니 조금 쉬워졌다. 월급은 늘지 않는데 카드값이 계속 늘면 불안하듯, 회사도 이익은 줄고 부채가 늘면 조심하게 된다. 반대로 매출이 크게 튀지는 않아도 꾸준히 벌고, 빚을 관리하고, 남는 돈을 배당이나 투자에 쓰는 회사는 눈길이 갔다.

나는 가치주를 ‘빨리 오를 주식’이라기보다 ‘가격과 체력을 같이 따져보는 방식’에 가깝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한 번에 큰돈을 넣기보다 관심 종목을 몇 개 정해두고, 실적 발표 때마다 숫자가 처음 생각과 맞는지 확인하는 쪽이 더 편했다.

물론 가치주라고 손실이 없는 건 아니다. 저평가가 오래 이어질 수도 있고, 내가 못 본 악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한 종목에 기대를 몰아넣기보다 업종을 나누고, 현금 비중도 남겨두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투자 판단은 각자 상황이 다르니, 최종 선택 전에는 공시 자료와 증권사 리포트,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같은 기본 자료를 같이 확인하는 게 낫다.

가치주를 공부하고 나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주가가 많이 빠진 종목을 봐도 바로 ‘싸다’고 말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대신 왜 싸졌는지, 그래도 돈을 벌 힘이 남아 있는지 먼저 보게 된다. 이 정도만 해도 예전보다 훨씬 덜 충동적으로 매수 버튼을 누르게 됐다.

가치주를 찾아보겠다고 재무제표를 열어봤더니 생긴 일 -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