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주성 주변에는 성벽과 촉석루뿐 아니라 지역 주민의 삶과 기억을 전하는 문화유산도 남아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자리한 진주 김해김씨비각은 어려운 이웃을 도운 모자의 선행과 그 은혜를 잊지 않으려 했던 주민들의 마음을 함께 간직한 곳이다.
규모가 크거나 화려한 시설은 아니지만, 두 기의 비석과 이를 보호하는 목조 비각에는 나눔과 감사의 기록이 담겨 있다. 진주성의 웅장한 풍경과 나란히 놓인 작은 비각은 지역의 역사가 이름난 건축물뿐 아니라 평범한 주민들의 기억으로도 이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진주성 곁에 남은 비각
진주 김해김씨비각은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에 있다. 진주성 주변을 따라 이어지는 길에서 만날 수 있으며, 비각 앞에는 진주의 길과 진주에나길, 인사동 골동품거리를 알리는 표지가 설치돼 있다.
이 일대에서 비각은 주변 거리와 동떨어진 건축물이 아니라 진주의 역사·문화 공간을 연결하는 한 지점으로 자리한다. 성곽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은 먼저 진주성의 큰 성벽으로 향하기 쉽지만, 가까운 곳에 놓인 비각까지 살펴보면 진주의 또 다른 역사적 장면이 드러난다.
현장 안내판에는 비각의 유래와 문화유산에 관한 설명이 적혀 있으며 점자도 함께 표기돼 있다. 글자와 점자를 통해 같은 이야기를 전달하도록 구성된 안내판은 비각에 담긴 내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연안 차씨와 김정식의 선행
비각이 보호하는 두 비석의 주인공은 가선대부 김상현의 부인인 연안 차씨와 그의 아들 김정식이다. 두 사람은 진주성 안에서 살던 주민들이 질병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을 때 개인 재산을 내어 도왔다.
당시 도움을 받은 주민들은 두 사람의 선행을 잊지 않기 위해 직접 비석을 세웠다. 연안 차씨의 비석은 1901년, 김정식의 비석은 1907년에 건립됐다. 어머니와 아들의 선행이 서로 다른 시기에 두 기의 비석으로 남은 것이다.
두 비석은 모두 시혜불망비다. 시혜불망비는 베풀어 준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비석을 세운 주민들에게 두 사람의 도움은 그 순간에만 머문 일이 아니었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받은 도움을 돌에 새겨 오래 보존하고 다음 세대에 전하려 했다.
따라서 진주 김해김씨비각은 특정 인물을 기리는 시설인 동시에 주민들이 감사의 뜻을 모아 남긴 공동의 기록이기도 하다. 개인 재산으로 이웃을 도운 행동과 그 은혜를 기억하려는 주민들의 뜻이 두 기의 비석 안에서 함께 이어진다.
나란히 보존된 두 기의 비석
비각 내부에는 연안 차씨와 김정식의 시혜불망비가 나란히 놓여 있다.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별도의 건물을 세웠다는 점에서 주민들이 두 사람의 선행을 얼마나 오래 보존하려 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1901년과 1907년에 각각 세워진 비석은 건립 시기가 다르지만, 담고 있는 뜻은 같다.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준 사람을 기억하고 그 고마움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두 비석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모자의 선행과 주민들의 감사가 한 공간에서 함께 읽히도록 남아 있다.
비석에 새겨진 기록과 이를 감싸는 비각은 서로 분리된 대상이 아니다. 비석이 선행의 내용을 전한다면, 비각은 그 기록이 오랜 시간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의 공간은 두 요소가 함께 보존되면서 완성된다.
작은 목조 건축에 담긴 구조
진주 김해김씨비각은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의 목조 건축물이다. 크기는 아담하지만 지붕과 처마, 기둥, 단청과 조각 장식 등 여러 전통 건축 요소가 한데 모여 있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구성됐고, 공포는 다포양식을 사용했다. 처마의 네 모서리에는 팔각형 받침기둥인 활주가 설치돼 있다. 활주는 지붕 모서리 아래에서 처마를 받치는 구조로 자리한다.
기와지붕 아래에서는 이어지는 나무 구조를 볼 수 있고, 단청과 조각 장식도 확인할 수 있다. 건물 전체의 규모만 보면 크지 않지만, 가까운 거리에서는 지붕과 처마를 이루는 여러 구성 요소가 차례로 드러난다.
두 기의 비석을 보호하는 실용적인 목적과 전통 목조건축의 형태가 한 공간 안에 결합돼 있다. 비석을 보존하는 시설에도 구조와 장식을 세심하게 갖췄다는 점이 이 비각의 건축적 특징이다.
비각거리와 빗집거리의 유래
비각이 세워진 곳은 과거 진주에서 하동으로 가던 길목이었다. 이곳에 비각이 자리하면서 주변 길은 비각거리 또는 빗집거리로 불렸다.
비각의 흔적은 건축물에만 남은 것이 아니라 거리의 이름에도 이어졌다. 길을 부르던 명칭 안에 비각의 존재가 반영된 것이다. 비각거리와 빗집거리라는 이름은 이 건물이 한때 길목을 구분하는 눈에 띄는 지표였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남아 있는 비각과 과거의 거리 명칭을 함께 살펴보면 건축물과 지역 공간의 관계가 보다 분명해진다. 비각은 두 비석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주변 길의 이름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진주 김해김씨비각은 1976년 12월 20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옛 비각의 건축양식을 살펴볼 수 있으며, 지역 주민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던 사실도 전하는 문화유산이다.
이곳의 가치는 건축물의 외형에만 머물지 않는다. 어려움에 놓인 주민들을 위해 재산을 내놓은 연안 차씨와 김정식의 행동, 도움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비석을 세운 주민들의 감사가 함께 보존돼 있다.
나눔을 실천한 사람과 그 나눔을 기억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두 비석은 지역의 문화유산으로 남을 수 있었다. 선행과 감사가 서로 이어진 과정이 진주 김해김씨비각의 핵심적인 의미다.
백 년을 넘어 이어진 감사
연안 차씨의 비석이 세워진 1901년과 김정식의 비석이 세워진 1907년 이후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두 비석은 지금도 같은 비각 안에 나란히 자리하며 당시 주민들이 기억하려 했던 선행을 전한다.
도움을 베푼 일은 오래전에 있었지만, 그 일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은 비석과 비각이라는 형태로 남았다. 한 사람의 행동이 주민들의 기억으로 이어지고, 그 기억이 다시 지역의 문화유산으로 보존된 과정이 이곳에 담겨 있다.
진주성 주변의 역사적 공간은 성벽과 누각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그 곁에 남은 작은 비각도 당시 주민들의 생활과 관계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큰 역사적 장소 가까이에서 만나는 두 기의 비석은 진주의 역사를 보다 구체적이고 생활에 가까운 모습으로 전한다.
현장에서 확인할 정보
| 명칭 | 진주 김해김씨비각 |
|---|---|
| 위치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남성동 |
| 문화유산 구분 |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
| 지정일 | 1976년 12월 20일 |
| 건축 규모 | 정면 2칸, 측면 1칸 |
| 건축 특징 | 겹처마 팔작지붕, 다포양식, 팔각형 활주 |
| 내부 비석 | 연안 차씨와 김정식의 시혜불망비 2기 |
| 비석 건립연도 | 1901년, 1907년 |
진주 김해김씨비각은 전통 목조건축의 세부 구조와 두 기의 시혜불망비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진주성 곁에 조용히 자리한 비각은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이웃을 도운 선행과 그 고마움을 기록한 주민들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