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영화 한 편을 두고 주변 대화가 꽤 뜨겁습니다. 처음에는 역사 해석을 둘러싼 논쟁처럼 보였는데, 어느 순간 배우 개인의 집 앞 집회 예고와 실제 시위 보도까지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유해진 자택 집회 논란은 단순한 연예 뉴스라기보다 표현의 자유, 사생활, 집회 권리가 어디서 부딪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됐습니다.
논란은 어떻게 번졌나
이번 일은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에서 출발했습니다. 이 영화는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삼은 작품으로 알려졌고, 제작진은 실제 사건에 허구적 상상력을 더한 창작물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반면 일부 정치권과 보수단체 쪽에서는 역사적 사실을 비틀었다며 상영 중단이나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문제가 더 커진 지점은 비판의 대상이 작품 자체를 넘어 출연 배우 개인에게 향했다는 점입니다. 2026년 10월 1일쯤 보수단체 관계자가 유해진 씨 자택 앞 집회 신고를 마쳤다는 취지의 글과 함께 주거지로 추정되는 사진을 공개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후 10월 초 실제 자택 앞 시위가 있었다는 보도도 이어졌습니다.
집회는 권리지만, 집 앞이라는 장소가 예민한 이유
우리 사회에서 집회와 시위는 중요한 기본권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 정책, 기업 활동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어야 민주주의가 굴러갑니다. 다만 장소가 개인의 집 앞일 때는 이야기가 복잡해집니다. 그곳은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 이웃, 동네 주민의 생활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주거지역이나 이와 비슷한 장소에서 사생활의 평온을 뚜렷하게 해칠 우려가 있고, 거주자나 관리자가 보호를 요청하는 경우 경찰이 집회를 제한하거나 금지할 수 있도록 두고 있습니다. 즉 집회 신고가 됐다고 해서 언제나 그대로 진행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소음, 시간, 장소, 인원, 확성기 사용 방식 등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내 생활과 연결되는 지점
이 사안이 유해진 씨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문제로 보이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유명인의 집 주소가 온라인에 노출되고 집회 장소가 되는 일이 익숙해지면, 비슷한 방식이 일반 직장인, 교사, 공무원, 자영업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민원이나 불매 운동, 동네 갈등이 개인 주거지로 향하는 순간 일상은 꽤 쉽게 흔들립니다.
- 첫째, 주소 노출은 안전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둘째, 집 앞 소음과 인파는 이웃의 생활권까지 건드립니다.
- 셋째, 작품이나 업무에 대한 비판이 개인 공격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 넷째, 온라인 여론이 오프라인 압박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비슷한 장면을 여러 번 봤습니다. 기업 임원 집 앞 시위, 정치인 사저 앞 집회, 학교나 병원 주변 집회가 반복될 때마다 권리와 피해의 경계가 논쟁이 됐습니다. 이번에는 그 대상이 배우였을 뿐입니다.
작품 비판과 개인 압박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영화가 역사적 사건을 다룬다면 비판은 당연히 나올 수 있습니다. 특히 실존 인물과 정치적 사건을 소재로 삼을 때는 관객마다 받아들이는 무게가 다릅니다. 누군가에게는 창작의 자유로 보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고인과 유족에 대한 왜곡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작품에 대한 문제 제기와 배우 개인의 주거지를 압박하는 방식은 다른 층위입니다. 배우가 영화의 모든 역사 해석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었는지, 제작 과정에서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는 따져볼 문제입니다. 비판의 방향이 넓어질수록 책임의 범위도 차분히 나눠 봐야 합니다.
영화계 단체들이 우려를 낸 것도 이 지점입니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지만,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감독, 배우, 스태프 개인에게 확인되지 않은 비난이나 위협이 쏟아지는 분위기는 창작 환경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앞으로는 무엇을 봐야 할까
이번 논란에서 볼 부분은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영화의 역사 해석을 둘러싼 공개 토론이 충분히 이뤄지는지입니다. 둘째는 집회 방식이 사생활 침해나 신변 위협으로 흐르지 않도록 관리되는지입니다. 셋째는 기업 광고 불매, 영화제 일정 취소, 온라인 콘텐츠 비공개 같은 후속 움직임이 어디까지 확산되는지입니다.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는 가볍게 줄일 수 없는 권리입니다. 동시에 집은 누구에게나 마지막 생활 공간입니다. 비판이 필요할수록 장소와 방식은 더 세심해야 합니다. 이번 유해진 자택 집회 논란은 유명인의 사생활 문제를 넘어, 우리가 서로의 생활 공간을 어디까지 존중할 것인지 묻는 사건으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