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검진센터에서 일하다 보면 축제나 여행을 다녀온 뒤 배탈, 어지럼, 혈당 흔들림으로 오시는 분들이 은근히 많습니다. 이태원 세계음식축제처럼 다양한 음식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날은 즐겁지만, 평소 위장이 약하거나 만성질환이 있는 분에게는 몸이 생각보다 바쁘게 반응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겁먹고 가지 말자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어떤 음식을 얼마나 먹을지, 내 약은 어떻게 챙길지, 어느 신호가 나오면 멈춰야 할지 정도는 알고 가면 훨씬 편합니다. 병원에서 보면 큰 문제는 대개 거창한 순간보다 '조금 더 먹어도 되겠지', '이 정도 어지럼은 괜찮겠지'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양한 음식보다 먼저 볼 것은 내 평소 상태입니다
세계음식축제에서는 기름진 음식, 향신료가 강한 음식, 짠 음식, 단 음식, 술이 한꺼번에 들어오기 쉽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속이 더부룩할 수 있는데, 역류성 식도염, 과민성 장, 당뇨, 고혈압, 신장질환이 있는 분은 반응이 더 크게 올 수 있습니다.
특히 당뇨가 있는 분은 식사 시간이 밀리고 단 음료나 디저트가 겹치면 혈당이 크게 오르내릴 수 있습니다. 인슐린이나 혈당강하제를 쓰는 분이 빈속으로 오래 걷다가 갑자기 식은땀, 손떨림, 심한 허기를 느끼면 저혈당 가능성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럴 때는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 평소 복용하는 약은 외출 전 확인합니다.
- 공복 시간이 길어질 것 같으면 작은 간식을 챙깁니다.
- 당뇨가 있으면 단 음료와 디저트를 한 번에 겹치지 않는 편이 안전합니다.
- 혈압이 높거나 신장질환이 있으면 국물, 절임, 소스가 많은 음식은 양을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배탈은 음식 때문만이 아니라 먹는 방식 때문에도 생깁니다
병동에서 장염 환자를 보면 원인이 딱 하나로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덜 익은 음식, 오래 노출된 음식도 문제지만, 낯선 음식을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 섞어 먹은 뒤 속이 무너지는 분도 많습니다. 특히 매운 음식과 기름진 음식, 술, 탄산을 함께 먹으면 위장에는 꽤 강한 조합입니다.
구토나 설사가 한두 번으로 지나가면 수분을 보충하며 지켜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설사가 6회 이상 반복되거나 피가 섞이거나, 38도 이상의 열이 동반되면 단순 체기처럼 넘기기 어렵습니다. 고령자, 임신부, 어린이, 면역저하자는 탈수가 빨리 올 수 있어 더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증상은 그냥 참지 않는 게 좋습니다
- 물도 못 마실 정도로 구토가 반복될 때
- 어지럽고 소변량이 확 줄었을 때
- 복통이 점점 심해지거나 오른쪽 아랫배 통증이 뚜렷할 때
- 혈변, 검은 변, 고열이 같이 있을 때
- 설사가 하루 이상 심하게 이어질 때
알레르기는 '조금 먹어보면 알겠지'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축제 음식은 재료가 다양하고 조리 과정에서 여러 식재료가 섞일 수 있습니다. 땅콩, 견과류, 새우, 게, 조개, 우유, 달걀, 밀 같은 흔한 알레르기 재료가 소스나 튀김옷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본인은 해산물을 안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소스에 들어가 증상이 생기는 일도 실제로 봅니다.
입술이나 눈 주위가 붓고, 두드러기가 퍼지고, 목이 조이는 느낌이나 숨참이 생기면 기다리면 안 됩니다. 특히 호흡이 불편하거나 목소리가 쉬고, 어지러움이 동반되면 응급상황일 수 있습니다. 알레르기 병력이 있는 분은 동행자에게도 본인 상태를 알려두는 편이 좋습니다.
술과 더위, 걷기가 겹치면 어지럼이 쉽게 옵니다
축제장에서는 본인도 모르게 오래 걷고 서 있게 됩니다. 여기에 술이 들어가면 탈수와 저혈압 느낌이 겹치면서 갑자기 핑 도는 분이 있습니다. 평소 혈압약, 이뇨제, 당뇨약을 복용하는 분은 더 민감할 수 있습니다.
술은 음식 맛을 돋우지만 몸의 경고 신호를 흐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얼굴이 심하게 달아오르거나 심장이 빠르게 뛰고, 속이 울렁거리거나 중심 잡기가 어렵다면 더 마시는 것은 멈추는 게 맞습니다. 물을 사이사이에 마시고, 빈속에 술부터 들어가지 않게 하는 것만으로도 다음 날 몸 상태가 꽤 달라집니다.
검진 수치가 좋지 않았던 분은 축제 전후를 다르게 봐야 합니다
최근 건강검진에서 공복혈당, 당화혈색소, 중성지방, 간수치, 혈압이 높게 나왔던 분이라면 축제 하루가 바로 병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미 몸이 부담을 받고 있다는 신호가 있었던 만큼, 그날의 선택이 며칠간 컨디션을 흔들 수는 있습니다.
간수치가 높았던 분이 술과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고 며칠 뒤 심한 피로, 오른쪽 윗배 불편감, 소변 색이 진해지는 증상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혈당이 높은 분은 식후 졸림, 갈증, 소변 증가를 그냥 피곤해서 그렇다고 넘기기도 합니다. 이런 변화가 반복되면 진료실에서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이태원 세계음식축제는 맛있는 음식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동시에 내 몸이 어떤 음식에 약한지 알아차릴 기회이기도 합니다. 즐거운 날일수록 몸의 신호를 작게 무시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축제 뒤 복통, 설사, 구토, 두드러기, 숨참, 흉통, 심한 어지럼, 혈당 이상 증상이 뚜렷하면 가까운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으세요. 판단은 의사가 하고, 우리는 그 판단을 받을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