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엔 그냥 구경만 하려고 갔다
얼마 전 지인이 작은 가게를 해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창업박람회에 다녀왔다. 사실 나도 처음엔 ‘요즘 어떤 아이템이 뜨나’ 정도만 보고 오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분위기가 꽤 달랐다. 커피, 무인매장, 반려동물, 밀키트, 교육 프랜차이즈, 세탁, 공유주방까지 한 공간에 모여 있으니 머릿속이 금방 복잡해졌다.
창업박람회는 생각보다 에너지가 세다. 부스마다 상담 테이블이 있고, 직원들은 빠르게 설명하고, 어떤 곳은 시식이나 시연까지 한다. 처음 가면 ‘이거 괜찮은데?’ 싶은 순간이 계속 온다. 근데 솔직히 그 느낌만 믿고 판단하기엔 위험하다. 현장에서는 장점이 크게 보이고, 비용이나 운영의 피곤함은 작게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건 하나였다. 창업박람회는 좋은 브랜드를 바로 고르는 곳이라기보다, 내가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확인하는 장소에 가깝다. 준비 없이 가면 팸플릿만 잔뜩 들고 오고, 준비해서 가면 현실적인 숫자 몇 개를 건질 수 있다.
상담 전에 메모장에 적어둔 질문이 꽤 중요했다
박람회장에 들어가기 전에 지인과 미리 질문을 정했다. 아주 거창한 건 아니었다. 총 창업비용, 월 고정비, 평균 매출, 본사 지원 범위, 폐점률, 교육 기간 정도였다. 그런데 이 질문을 적어두고 들어가니 상담의 흐름이 확 달라졌다.
예를 들어 어떤 브랜드는 가맹비와 교육비는 크게 강조하지 않았지만, 인테리어와 장비비를 합치니 초기 비용이 8천만 원 가까이 나왔다. 또 다른 브랜드는 창업비용은 낮아 보였지만, 필수 물류 비중이 높아서 매달 본사에서 사야 하는 품목이 많았다. 겉으로는 둘 다 ‘소자본 창업’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 부담 구조는 꽤 달랐다.
- 총 창업비용에 보증금과 권리금이 빠져 있는지 확인
- 월 임대료를 얼마로 가정한 수익표인지 확인
- 인건비가 대표자 근무 기준인지 직원 고용 기준인지 확인
- 본사 필수 구매 품목과 마진 구조 확인
- 계약 기간과 중도 해지 조건 확인
특히 수익표를 볼 때는 ‘월매출 3천만 원’ 같은 숫자보다 그 아래에 깔린 조건을 보는 게 더 중요했다. 몇 평 매장인지, 하루 몇 명이 방문해야 하는지, 객단가를 얼마로 잡았는지에 따라 같은 매출도 난이도가 달라진다. 하루 100명 방문을 전제로 한 표라면, 내가 생각하는 동네 상권에서 그게 가능한지부터 봐야 했다.
사람이 몰리는 부스가 꼭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현장에서 제일 눈에 띄는 건 줄이 긴 부스다. 시식이 있거나, 요즘 유행하는 아이템이거나, 창업비용을 크게 낮춰 홍보하는 곳에 사람이 몰렸다. 나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발이 갔다. 그런데 상담을 받아보니 사람이 많다는 것과 내 조건에 맞는다는 건 별개였다.
예를 들어 무인매장 쪽은 확실히 관심이 많았다. 직원 없이 운영할 수 있다는 말이 매력적이니까. 하지만 자세히 물어보면 CCTV 확인, 재고 보충, 청소, 민원 대응, 기기 오류 처리 같은 일이 계속 있었다. ‘무인’이라는 말이 ‘무노동’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근데 이 부분은 현장 홍보 문구만 보면 잘 안 보인다.
또 커피나 디저트 브랜드는 익숙해서 접근하기 쉬워 보였다. 하지만 이미 경쟁이 치열한 상권에서는 차별점이 약하면 가격 경쟁으로 들어가기 쉽다. 반대로 처음엔 낯설어 보였던 생활 서비스 업종은 반복 수요가 있고, 단골 관리가 잘되면 안정적인 면도 있었다. 그래서 부스를 볼 때는 유행보다 내 생활 패턴과 버틸 수 있는 운영 방식이 맞는지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서 바로 계약하지 않기로 한 이유
창업박람회에서는 현장 계약 혜택이 꽤 자주 나온다. 가맹비 할인, 교육비 면제, 장비 일부 지원 같은 조건이다. 듣다 보면 지금 결정해야 손해를 안 보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창업은 몇십만 원짜리 쇼핑이 아니라 적게는 수천만 원, 많게는 억 단위가 움직이는 일이다.
우리는 현장에서 계약하지 않기로 미리 정하고 갔다. 대신 관심 있는 브랜드는 세 곳만 골라 자료를 받아왔다. 그다음 할 일은 따로 있었다. 실제 운영 매장에 가보기, 점주와 짧게라도 이야기해보기, 비슷한 상권의 임대료 확인하기,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 정보에서 브랜드 정보를 확인하기였다. 현장 설명은 출발점이지 검증이 끝난 자료는 아니었다.
특히 폐점률이나 가맹점 수 변화는 꼭 봐야 한다. 가맹점이 빠르게 늘어나는 브랜드가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고, 너무 적은 브랜드가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다. 다만 왜 늘었는지, 왜 줄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창업박람회에서 들은 이야기와 공개된 정보가 크게 다르면 그 차이의 이유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다녀와서 남은 건 아이템보다 기준이었다
처음엔 창업박람회에 가면 ‘괜찮은 아이템 하나쯤 찾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녀와보니 아이템보다 기준이 더 중요했다. 내가 하루에 몇 시간 일할 수 있는지, 초기 투자금은 어디까지 감당 가능한지, 사람을 고용할 생각이 있는지, 유행이 지나도 버틸 수 있는 업종인지. 이런 질문이 먼저였다.
개인적으로는 창업박람회가 쓸모 없다고 느끼진 않았다. 오히려 짧은 시간에 여러 업종을 비교하기엔 꽤 효율적이었다. 다만 기대치를 다르게 가져가야 한다. ‘여기서 바로 답을 찾겠다’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확인하겠다’는 마음으로 가면 훨씬 덜 흔들린다.
다음에 다시 간다면 나는 편한 신발을 신고, 관심 업종을 3개 이하로 줄이고, 상담마다 같은 질문을 던질 것 같다. 그래야 브랜드 설명에 끌려다니지 않고 비교가 된다. 창업박람회는 화려한 간판을 보러 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결국 내 돈과 시간을 어디에 걸 수 있는지 차분히 따져보는 연습장에 더 가까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