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술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부터 잡기
얼마 전 고등학생 조카가 논술 문제를 붙잡고 한참을 멍하니 있더라고요. 문제는 분명 읽었는데, 첫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사실 논술이 어려운 건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생각을 글의 순서로 바꾸는 방법을 아직 익히지 못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논술은 멋진 표현을 많이 쓰는 시험이 아닙니다. 주어진 글을 읽고, 질문이 원하는 방향을 파악한 뒤, 자기 판단을 근거와 함께 설명하는 글입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문장을 예쁘게 만들려고 하면 오히려 손이 멈춥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문제의 요구를 아주 작게 나누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문제가 “제시문 가와 나의 관점을 비교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대 사회의 갈등 해결 방안을 논하라”라고 되어 있다면 해야 할 일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가와 나의 관점을 각각 파악하기. 둘째, 둘 사이의 공통점이나 차이점 찾기. 셋째, 그 비교를 이용해 내 의견을 쓰기. 이렇게 나누면 막연한 글쓰기에서 할 일 목록으로 바뀝니다.
제시문 읽는 방법은 표시부터 다르게
논술 제시문을 읽을 때 많은 학생이 밑줄을 너무 많이 긋습니다. 한 문단에 세 줄, 네 줄씩 밑줄이 생기면 나중에는 무엇이 중요한지 더 헷갈립니다. 저는 처음 읽을 때 표시를 세 종류로 나누는 편이 좋다고 봅니다. 주장에는 동그라미, 이유에는 밑줄, 예시나 자료에는 괄호를 치는 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글의 뼈대가 보입니다. 주장만 모으면 제시문의 방향이 나오고, 이유를 보면 그 주장이 왜 나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시는 답안에 그대로 옮기기보다 근거를 설명할 때 참고하는 재료가 됩니다. 실제로 800자 안팎의 답안을 쓸 때 제시문의 모든 내용을 넣을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문장 2~3개를 고르는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 첫 번째 읽기: 전체 주제와 분위기 파악
- 두 번째 읽기: 주장, 이유, 예시 구분
- 세 번째 읽기: 답안에 쓸 표현과 근거 선택
근데 여기서 조심할 점이 있습니다. 제시문 문장을 길게 베끼면 내 글의 힘이 약해집니다. 논술 답안은 제시문 이해를 바탕으로 내 판단을 보여주는 글입니다. 제시문의 표현은 짧게 활용하고, 대부분은 자기 문장으로 바꾸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글의 틀은 단순할수록 강하다
초보자에게 가장 편한 논술 구조는 ‘입장, 근거, 반대 시각, 재강조’ 흐름입니다. 이름은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첫 문단에서는 질문에 대한 내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다음 문단에서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설명합니다. 그다음 반대쪽에서 볼 수 있는 문제를 짚고, 마지막에는 내 입장이 여전히 설득력 있는 이유를 자연스럽게 이어가면 됩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활용에 관한 논술이라면 “인공지능 사용은 확대하되, 판단 책임을 사람에게 두는 방식이 필요하다”처럼 입장을 먼저 세울 수 있습니다. 이후 업무 효율, 정보 접근성 같은 장점을 근거로 들고, 개인정보 침해나 편향된 결과라는 우려도 함께 다룹니다. 그 뒤에는 기술 금지가 아니라 기준 마련이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식으로 글을 이어가면 훨씬 안정적입니다.
문단 수는 보통 3~4개가 적당합니다. 600자 이하라면 3문단, 800자 이상이라면 4문단 정도가 읽기 편합니다. 문단마다 역할이 있어야 합니다. 첫 문단은 방향, 중간 문단은 근거, 뒤쪽 문단은 비교나 반론 처리, 마지막 문단은 생각의 도착점입니다. 이 역할이 흐려지면 문장은 많아도 글이 산만해집니다.
첫 문장 쓰는 작은 공식
첫 문장이 막힐 때는 “이 문제는 A와 B 사이의 관계를 묻고 있다”처럼 시작해도 좋습니다. 또는 “제시문들은 공통적으로 A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해결 방식에서는 차이를 보인다”처럼 비교의 틀을 먼저 잡을 수도 있습니다. 첫 문장부터 대단한 문장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채점자가 원하는 건 화려한 시작보다 문제를 정확히 이해했다는 신호입니다.
근거를 만들 때 숫자와 사례를 섞기
논술에서 근거는 추상적인 말만 반복하면 약해집니다. “사회가 복잡해졌다”, “사람들의 인식이 변했다” 같은 문장은 맞는 말이지만 너무 넓습니다. 여기에 실제 상황을 붙이면 글이 훨씬 설득력 있어집니다. 예를 들어 “비대면 수업이 늘면서 학습 기회는 넓어졌지만, 스스로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학생은 격차를 더 크게 느낄 수 있다”처럼 쓰면 상황이 눈에 들어옵니다.
숫자도 적절히 쓰면 좋습니다. 단, 정확히 모르는 통계를 지어내면 위험합니다. 시험장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많은 학교와 기업에서”, “일상적인 서비스 영역까지”처럼 무리 없는 표현을 쓰는 편이 안전합니다. 평소 연습할 때는 교육부, 통계청,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같은 기관에서 자주 다루는 주제를 읽어두면 배경지식이 쌓입니다.
사례는 너무 길게 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 논술 답안에서 사례는 주인공이 아니라 근거를 돕는 조연입니다. 한 사례에 5문장 이상 쓰면 본래 주장보다 사례 설명이 커질 수 있습니다. 보통 1~2문장으로 상황을 보여주고, 바로 그 사례가 주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하는 흐름이 좋습니다.
첨삭 없이도 실력이 느는 연습 루틴
솔직히 논술은 한 번에 확 늘기 어렵습니다. 대신 짧게라도 꾸준히 쓰면 변화가 꽤 뚜렷합니다. 저는 일주일에 세 번, 한 번에 30분 정도만 잡아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고 봅니다. 첫 10분은 제시문 읽기와 표시, 다음 15분은 400~600자 쓰기, 마지막 5분은 문장 고치기에 쓰는 방식입니다.
고칠 때는 맞춤법만 보지 말고 세 가지를 확인하면 좋습니다. 첫째, 질문에 바로 답했는가. 둘째, 문단마다 역할이 다른가. 셋째, 같은 단어를 지나치게 반복하지 않았는가. 특히 “중요하다”, “필요하다”, “문제다” 같은 단어가 계속 나오면 글이 단조로워집니다. “의미가 있다”, “기준이 요구된다”, “갈등을 키울 수 있다”처럼 조금씩 바꾸면 문장이 자연스러워집니다.
- 문제 요구를 동사 중심으로 표시하기
- 제시문 주장을 한 문장으로 줄이기
- 내 입장을 먼저 쓰고 근거를 붙이기
- 다 쓴 뒤 첫 문단과 마지막 문단이 연결되는지 확인하기
논술은 타고난 글재주보다 습관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처음에는 문장이 어색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문제를 읽고, 요구를 나누고, 내 생각을 근거와 함께 놓는 순서를 몸에 익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몇 편만 써도 “무엇부터 해야 하지?”라는 막막함이 줄어듭니다. 글쓰기가 조금 덜 무서워지는 순간, 논술 공부는 꽤 현실적인 싸움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