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의점 앞에서 시작된 이상한 관찰
얼마 전 편의점 앞에서 택배를 보내려고 줄을 섰는데, 앞사람이 박스 크기를 잘못 골라서 한참을 다시 포장하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업아이템이라는 게 꼭 거창한 기술이나 멋진 앱에서만 나오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누군가 하루에 5분씩 짜증 내는 순간이 있다면, 거기에 작은 기회가 숨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하루 동안 내가 불편하다고 느낀 장면을 메모해봤다. 아침에는 냉장고 안 남은 재료를 보고도 뭘 해 먹을지 떠오르지 않았고, 점심에는 회사 근처 식당 대기 시간을 몰라 괜히 걸어갔다가 돌아왔다. 저녁에는 세탁소 영업시간을 놓쳐서 다시 옷을 들고 집에 왔다. 각각은 별일 아닌데, 막상 적어두니 반복되는 불편이 꽤 많았다.
재미있는 건 큰 불편보다 작은 불편이 더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인생을 바꿔줄 서비스보다 오늘 귀찮은 일을 조금 덜어주는 서비스에 먼저 반응할 때가 많다. 물론 돈을 낼 만큼의 문제인지 따져봐야 하지만, 출발점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사업아이템은 번뜩임보다 관찰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나도 사업아이템을 떠올리려면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메모를 해보니 아이디어보다 패턴이 더 중요했다. 같은 불편을 겪는 사람이 여러 명인지, 그 불편이 자주 반복되는지, 해결됐을 때 시간을 아끼거나 돈을 아끼는지가 훨씬 현실적인 기준이었다.
예를 들어 집 근처 카페 사장님과 잠깐 이야기한 적이 있다. 원두나 인테리어보다 의외로 힘든 건 매장 소모품 관리라고 했다. 빨대, 컵홀더, 냅킨, 청소용품이 애매하게 떨어지는 순간이 많고, 바쁠 때는 주문 타이밍을 놓친다고 했다. 이건 화려한 문제는 아니지만, 매장 운영자에게는 꽤 성가신 일이다. 만약 동네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소모품 재고를 간단히 체크하고 자동 주문을 도와주는 서비스가 있다면 작지만 분명한 수요가 생길 수 있다.
반대로 내가 신나서 떠올린 아이템인데 주변 반응이 미지근한 것도 있었다. 예전에 냉장고 속 재료를 사진으로 찍으면 레시피를 추천해주는 서비스를 생각했는데,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좋긴 한데 돈은 안 낼 것 같다”고 했다. 이 말이 꽤 중요했다. 좋은 아이디어와 돈을 낼 아이디어는 다르다.
작게 검증해보니 말보다 행동이 더 정확했다
사업아이템을 찾을 때 주변 사람에게 “이거 필요해?”라고 물으면 대부분 친절하게 “괜찮은데?”라고 답한다. 그런데 실제로 신청서를 쓰거나, 전화번호를 남기거나, 5천 원이라도 결제하려고 하면 반응이 달라진다. 그래서 아이템은 말보다 행동으로 확인하는 편이 낫다.
가장 간단한 방식은 가짜로라도 판매 상황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반찬 메뉴 추천 서비스를 생각했다면, 처음부터 앱을 만들 필요는 없다. 동네 커뮤니티에 “이번 주 냉장고 재료 기준으로 3일치 메뉴를 짜드립니다”라고 올리고 10명에게 무료 또는 소액으로 받아보면 된다. 문의가 오는지, 사람들이 어떤 정보를 귀찮아하는지, 결과물을 받은 뒤 다시 찾는지가 보인다.
- 사람들이 이미 돈을 쓰고 있는 문제인지 본다.
- 불편을 해결하려고 현재 어떤 꼼수를 쓰는지 묻는다.
- 처음에는 자동화보다 직접 해보는 방식이 빠르다.
- 칭찬보다 재구매나 소개 여부를 더 믿는다.
개인적으로는 10명에게 직접 팔아보는 경험이 아이디어 회의 10번보다 낫다고 느꼈다. 고객이 원하는 표현, 가격에 대한 감각, 실제로 귀찮아하는 지점이 말로 들을 때보다 훨씬 선명해진다. 솔직히 처음엔 민망하지만, 그 민망함을 지나야 아이템의 체온이 느껴진다.
좋아하는 일만으로는 조금 부족했다
사업아이템을 고를 때 “내가 좋아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건 괜찮다. 다만 거기서 멈추면 취미와 사업이 섞여버릴 수 있다. 내가 좋아하고, 누군가 반복해서 불편해하고, 돈을 내면 해결되는 지점이 겹쳐야 조금 더 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커피를 좋아한다고 해서 바로 카페를 여는 건 큰 결정이다. 대신 홈카페 입문자를 위한 원두 샘플 키트, 직장인용 드립백 구독, 카페 창업 전 메뉴 테스트 대행 같은 방식으로 쪼개볼 수 있다. 같은 관심사라도 어떤 사람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업아이템이 된다.
요즘은 특히 1인 가구, 시니어, 반려동물 양육 가구, 소상공인, 초보 창업자처럼 생활 방식이 뚜렷한 집단에서 작은 문제가 많이 보인다. 통계청 같은 기관 자료를 보면 가구 구조나 소비 형태가 바뀌고 있다는 흐름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숫자는 방향을 보여줄 뿐이고, 진짜 힌트는 사람을 직접 만나야 잡힌다. 숫자만 보고 만든 아이템은 멋있어 보이지만, 막상 쓰는 사람의 하루에 들어가지 못할 때가 있다.
내가 써먹는 사업아이템 필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나는 간단히 네 가지를 적어본다. 누가 겪는 문제인지, 얼마나 자주 생기는지, 지금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내가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이 네 줄을 못 채우면 아직 아이템이라기보다 그냥 생각에 가깝다.
예를 들어 “운동 습관 앱”이라고 쓰면 너무 넓다. 대신 “퇴근 후 헬스장에 가려다 자주 포기하는 30대 직장인에게, 20분짜리 운동 예약과 인증을 묶어주는 서비스”라고 쓰면 갑자기 구체적이 된다. 이 정도로 좁아져야 가격, 채널, 기능을 이야기할 수 있다.
또 하나는 내가 그 문제를 계속 볼 수 있는지다. 사업아이템은 처음 떠올릴 때보다 고치는 과정이 더 길다. 사용자가 왜 이탈했는지, 왜 결제하지 않았는지, 왜 한 번만 쓰고 말았는지 계속 봐야 한다. 관심이 전혀 없는 분야라면 이 과정을 버티기 어렵다.
하루를 기록해보니 사업아이템은 멀리 있는 보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냥 참고 넘기는 장면에 가까웠다. 불편한데 익숙해서 말하지 않는 것들. 누가 대신 해주면 고맙지만 아직 딱 맞는 서비스가 없는 것들. 그런 틈을 발견하고 작게 팔아보는 사람이 결국 한 발 먼저 배우는 것 같다. 나도 이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노트에 크게 쓰기보다, 먼저 딱 한 사람에게 팔 수 있는 모양으로 줄여보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