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수원 더비 뒤 인터뷰를 다시 읽다가, 이정효 감독의 SNS 금지 발언이 단순한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요즘 선수들이 쇼츠에 나오고, 팬서비스 영상을 찍고, 경기 뒤 댓글 반응까지 바로 확인하는 건 너무 익숙한 풍경이죠. 그런데 감독의 말은 “SNS 하지 마”에서 멈춘 게 아니라, 경기장 안에서 왜 패스가 늦어지고 왜 과감한 선택이 사라지는지를 겨냥하고 있었습니다.
발언이 나온 장면부터 꽤 뜨거웠다
이정효 감독은 2026년 8월 15일 수원FC와의 홈 경기 이후 선수들의 플레이를 강하게 지적했습니다. 풋볼리스트 보도에 따르면 그는 선수들이 성장하기 위한 시도를 하기보다 욕먹기 싫어서 실수를 피하는 쪽으로 움직였다고 봤습니다. 표현은 거칠었지만, 메시지는 선명했습니다. 실수를 감수하고 전진해야 할 장면에서 공을 떠넘기는 플레이가 나왔다는 겁니다.
축구에서 이런 장면은 기록지에 잘 남지 않습니다. 패스 성공률은 높게 찍힐 수 있고, 턴오버 숫자도 적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기 흐름을 보면 전혀 다릅니다. 전진 패스 대신 옆 패스가 늘고, 박스 근처에서 슈팅 대신 한 번 더 돌리고, 압박을 받을 때 책임 있는 선택을 피하는 흐름이 생깁니다. 감독이 말한 ‘폭탄 돌리기’는 바로 그 지점에 걸려 있습니다.
SNS가 정말 경기력을 망치는 걸까
솔직히 SNS 자체가 나쁜 도구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프로 선수에게 SNS는 팬과 만나는 창구이고, 구단 브랜드를 키우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손흥민이나 이강인 같은 선수들도 SNS를 활용합니다. 문제는 사용 여부가 아니라, 선수가 어느 단계에서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느냐입니다.
머니투데이와 스타뉴스 계열 현장 보도에서 주장 홍정호는 어린 선수들이 먼저 성장한 뒤 SNS를 해도 늦지 않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이 말이 꽤 현실적입니다. 베테랑은 악플과 칭찬을 어느 정도 분리해서 받아들이는 기술이 있습니다. 반면 경험이 적은 선수는 댓글 몇 줄에도 다음 경기 선택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특히 수비수나 골키퍼처럼 실수가 바로 실점 장면으로 남는 포지션은 부담이 더 큽니다.
- 경기 직후 실수 장면이 짧은 영상으로 반복 소비된다
- 선수 이름과 특정 장면이 댓글에서 함께 회자된다
- 다음 경기에서 안전한 선택을 먼저 찾게 된다
- 감독이 원하는 과감한 전진성과 충돌한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의 악성 댓글 관련 조사에서도 경기 패배나 실책 직후 피해 경험이 많았다는 수치가 언급된 바 있습니다. 종목은 다르지만 구조는 비슷합니다. 승부가 끝나자마자 비난이 밀려오고, 그 반응이 선수의 다음 선택에 영향을 줍니다. 숫자 뒤에는 결국 사람의 긴장감이 있습니다.
이정효식 화법은 왜 늘 논란이 되나
이정효 감독의 말은 늘 직선적입니다. 그래서 팬 입장에서는 통쾌하게 들리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선수 보호와 거리가 멀어 보이기도 합니다. 이번 SNS 발언도 마찬가지입니다. “강압할 수는 없지만 권장하고 싶다”는 취지였지만, 실제로는 선수들에게 꽤 강한 신호로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이 감독이 SNS를 도덕 문제로만 본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는 경기 안의 태도를 말했습니다. ‘왜 시도하지 않느냐’, ‘왜 실패를 두려워하느냐’, ‘왜 성장할 장면에서 피하느냐’라는 질문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발언은 휴대폰 사용 습관보다 경기 모델에 더 가깝습니다.
수원 삼성은 명가 재건이라는 큰 압박을 안고 있는 팀입니다. 연합뉴스가 시즌 전 보도한 것처럼 이정효 감독은 승격이라는 뚜렷한 과제를 들고 수원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이런 팀에서 어린 선수들이 매 경기 평가받는 압박은 작지 않습니다. 팬덤 규모가 큰 팀일수록 한 번의 실수는 더 빨리 퍼지고, 더 오래 남습니다.
기록으로 보이지 않는 ‘용기’의 영역
축구 기록을 볼 때 패스 성공률, 점유율, 슈팅 수는 자주 언급됩니다. 그런데 감독이 화를 내는 장면은 보통 숫자보다 맥락에 있습니다. 90% 패스 성공률을 찍어도 대부분이 뒤로 돌린 패스라면 상대 수비는 전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반대로 전진 패스 성공률이 60%에 그쳐도 그 시도가 상대 라인을 깨는 방향이었다면 팀에는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정효 감독이 원하는 축구는 실수를 감수하는 축구에 가깝습니다. 물론 무책임한 모험과는 다릅니다. 훈련한 패턴 안에서 타이밍을 맞춰 앞으로 치고 나가고, 압박을 받더라도 다음 장면을 만들어내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선수가 댓글을 먼저 떠올리면 그 순간 발끝이 무거워집니다. 축구는 0.5초 늦으면 길이 닫히는 경기입니다.
SNS 금지가 답인지보다 중요한 질문
근데 저는 완전 금지가 유일한 답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프로 선수에게 공개성과 자기 관리 능력은 이미 경기력의 일부가 됐습니다. 다만 어린 선수에게는 일정 기간 거리 두기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경기 전후 24시간은 알림을 끄고, 구단이 악성 메시지 대응 시스템을 만들고, 코칭스태프가 선수에게 기록 기반 피드백을 먼저 주는 식의 관리가 더 현실적입니다.
선수도 배워야 합니다. 칭찬에 들뜨지 않고, 비난에 무너지지 않는 법을요. 팬도 생각할 지점이 있습니다. 비판은 스포츠 문화의 일부지만, 선수의 다음 플레이를 위축시키는 비난은 결국 내가 응원하는 팀의 경기력까지 갉아먹습니다. 이정효 감독의 발언이 불편하게 들릴 수는 있어도, 그 불편함 덕분에 우리가 놓치던 장면이 보입니다. 요즘 축구에서 멘탈 관리는 더 이상 라커룸 안의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라, 다음 전진 패스 하나를 결정하는 아주 현실적인 변수가 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