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도어브랜드가 약속을 잘못 잡으면 생기는 일, 12년간 지켜본 진짜 이야기

아웃도어브랜드가 약속을 잘못 잡으면 생기는 일, 12년간 지켜본 진짜 이야기

얼마 전 지하철에서 등산화를 신은 20대 셋을 봤는데, 셋 다 산으로 가는 얼굴은 아니었습니다. 한 명은 와이드 데님에 방수 재킷을 걸쳤고, 다른 한 명은 출근용 백팩처럼 보이는 테크 백을 멨죠. 그 장면을 보면서 다시 느꼈습니다. 아웃도어브랜드는 이제 산에서만 싸우는 업종이 아닙니다. 도심, 취향, 체력, 나이, 심지어 자존감까지 걸린 브랜드 전쟁이 됐습니다.

브랜드 마케팅을 12년 하다 보면 잘나가는 브랜드의 광고보다, 그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어떤 약속을 했는지가 더 오래 보입니다. 좋은 원단, 멋진 모델, 공격적인 할인은 순간의 속도는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브랜드가 한 약속이 흐려지면 성장은 금방 피곤해집니다. 아웃도어브랜드는 특히 그렇습니다. 기능이라는 냉정한 기준과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뜨거운 욕망이 동시에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산에 가는 옷에서 나를 설명하는 옷으로

예전 아웃도어 시장의 약속은 비교적 단순했습니다. 춥지 않게 해주겠다. 비를 막아주겠다. 오래 신어도 발이 덜 아프게 해주겠다. 소비자도 그 약속을 기능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방수, 투습, 경량, 보온 같은 단어가 매장 전면에 크게 붙었고, 판매 직원은 스펙을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시장이 커지면서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산에 자주 가지 않는 사람도 고가의 재킷을 샀습니다. 부모님 세대는 등산복을 일상복처럼 입었고, 10대와 20대는 아웃도어 로고가 큼직한 패딩을 교복 위에 입었습니다. 이때부터 아웃도어브랜드의 약속은 기능에서 소속감으로 옮겨갔습니다. “나는 활동적인 사람이다”, “나는 좋은 걸 고를 줄 안다”, “나는 너무 꾸미지 않았지만 허술하지 않다”는 메시지가 옷에 붙기 시작한 겁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달콤한 확장이었습니다. 산악 전문가만 대상으로 할 때보다 시장이 훨씬 커졌으니까요. 하지만 확장의 대가는 분명했습니다. 진짜 산을 타는 소비자는 브랜드가 너무 대중적이라고 느끼고, 일상 소비자는 기능 설명이 너무 어렵다고 느끼는 순간이 옵니다. 여기서 브랜드의 중심이 흔들립니다.

성공한 아웃도어브랜드는 기능을 감성으로 번역했다

잘한 브랜드들은 기능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기능을 소비자의 언어로 다시 바꿨습니다. 예를 들어 방수라는 말만 반복하는 대신 “퇴근길 갑자기 비가 와도 당황하지 않는 옷”으로 말합니다. 경량을 “가볍다”로 끝내지 않고 “하루 종일 입어도 어깨가 피곤하지 않은 옷”으로 풀어냅니다. 이 차이가 큽니다.

소비자는 스펙을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상황을 삽니다. 캠핑장에서 갑자기 기온이 떨어졌을 때, 아이와 공원에 갔는데 바람이 거셀 때, 여행지에서 비가 오는데 사진은 포기하고 싶지 않을 때. 이런 장면을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브랜드가 오래 갑니다. 기능을 감성으로 포장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기능이 필요한 순간을 브랜드가 먼저 알아본다는 뜻입니다.

제가 봤던 캠페인 중 반응이 좋았던 것들은 대체로 제품을 과장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소비자가 그 제품을 입는 생활의 장면을 잘 잡았습니다. 등산 정상에서 팔을 벌리는 이미지보다, 새벽에 차에 짐을 싣고 떠나는 장면이 더 강하게 먹힐 때가 있습니다. 산보다 출발의 설렘이 더 넓은 사람에게 닿기 때문입니다.

광고

몰락은 보통 할인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브랜드가 무너지는 이유를 할인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반은 맞고 반은 부족합니다. 할인은 증상에 가깝습니다. 더 깊은 원인은 브랜드가 왜 비싸야 하는지 설명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아웃도어브랜드가 가격을 받으려면 소비자는 납득할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소재일 수도 있고, 디자인일 수도 있고, 특정 커뮤니티에서의 상징성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브랜드가 이 세 가지를 모두 잡으려다가 아무것도 선명하지 않아질 때 생깁니다. 전문가용처럼 말하지만 실제 제품은 평범하고, 패션 브랜드처럼 보이고 싶지만 스타일은 보수적이고, 대중 브랜드처럼 팔고 싶지만 가격은 프리미엄이면 소비자는 금방 눈치챕니다.

  • 기능을 말하지만 제품 경험이 따라오지 않는 경우
  • 젊어 보이고 싶어 하지만 매장과 상품 구성은 예전 그대로인 경우
  • 프리미엄을 유지하고 싶어 하면서 상시 할인에 기대는 경우
  • 캠페인은 라이프스타일인데 실제 고객 응대는 재고 판매 중심인 경우

이런 균열은 처음엔 작게 보입니다. 매출도 당장 크게 꺾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브랜드의 약속이 흐려지면 다음 시즌부터 비용이 점점 많이 듭니다. 더 큰 모델이 필요하고, 더 센 할인이 필요하고, 더 자극적인 문구가 필요합니다. 브랜드가 스스로 만든 신뢰의 통장에서 계속 돈을 빼 쓰는 구조가 되는 거죠.

운도 있었다, 하지만 운만으로는 버티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아웃도어브랜드의 성장에는 운도 있었습니다. 등산 인구 증가, 캠핑 열풍, 건강 관리에 대한 관심, 재택 이후 편한 옷을 찾는 흐름, 여행 소비 회복 같은 바람이 불었습니다. 어떤 브랜드는 이 흐름을 정확히 탔고, 어떤 브랜드는 비슷한 제품을 갖고도 흐름을 놓쳤습니다.

근데 운을 탔다고 해서 그 브랜드의 실력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운이 왔을 때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키웠는지가 실력입니다. 모든 소비자를 잡으려는 욕심을 줄이고, 자기 브랜드가 가장 잘 설득할 수 있는 장면을 고른 브랜드는 오래 남았습니다. 반대로 유행하는 카테고리만 따라간 브랜드는 잠깐 떠올랐다가 금방 비슷한 브랜드들 사이에 묻혔습니다.

특히 최근 소비자는 꽤 영리합니다. 로고가 크다고 무조건 좋아하지도 않고, 친환경을 말한다고 바로 믿지도 않습니다. 제품의 내구성, 수선 가능성, 실제 착용감, 중고 시장에서의 가치까지 봅니다. 브랜드가 말한 약속과 실제 사용 경험이 다르면 리뷰와 커뮤니티에서 빠르게 드러납니다. 예전처럼 광고비로 덮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광고

앞으로 남는 브랜드는 약속이 좁고 깊을 것이다

아웃도어브랜드가 앞으로 더 커지려면 모두의 브랜드가 되려는 욕심을 조금 내려놓아야 한다고 봅니다. 산악 전문가를 위한 브랜드인지, 도심형 테크웨어 브랜드인지, 가족 캠핑을 위한 브랜드인지, 여행과 이동에 강한 브랜드인지 먼저 정해야 합니다. 포지션이 좁아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 좁은 약속이 소비자의 머릿속에 더 깊게 박힙니다.

브랜드는 로고를 붙인 상품 묶음이 아닙니다. 소비자가 돈을 내기 전에 마음속에서 먼저 체결하는 약속입니다. 아웃도어브랜드라면 그 약속은 더 선명해야 합니다. 추위, 비, 바람, 움직임 같은 실제 환경을 상대하기 때문입니다. 멋있어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입고 나갔을 때 몸이 먼저 판단합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아웃도어브랜드를 볼 때 광고 카피보다 반품 사유를 더 궁금해합니다. 소비자가 어떤 지점에서 실망했는지 보면 브랜드의 약속이 어디서 깨졌는지 보이거든요. 반대로 오래 입었다는 후기, 다시 샀다는 말, 가족에게 추천했다는 말은 어떤 캠페인보다 강합니다. 브랜드가 한 약속을 제품이 조용히 지켰다는 뜻이니까요.

아웃도어 시장은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겁니다. 산을 오르는 사람도, 산에는 안 가지만 바람을 막아줄 옷을 찾는 사람도 함께 남을 테니까요. 그 사이에서 살아남는 브랜드는 유행을 가장 빨리 따라가는 곳이 아니라, 자신이 지킬 수 있는 약속을 가장 정확히 고르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곳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그 단단함이야말로 아웃도어브랜드의 진짜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웃도어브랜드가 약속을 잘못 잡으면 생기는 일, 12년간 지켜본 진짜 이야기 -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