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여행, 유명한 곳 대신 조용한 동네만 걸어봤더니

제주도여행, 유명한 곳 대신 조용한 동네만 걸어봤더니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바다보다 골목이 먼저 보였다

얼마 전 제주에 다녀왔는데, 이번에는 일부러 이름난 해변과 카페를 거의 넣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렌터카를 받자마자 협재나 성산 쪽으로 달렸을 텐데, 이번 제주도여행은 조금 다르게 시작했다. 공항에서 가까운 동네에 짐을 풀고, 지도에 별표가 많이 붙은 곳보다 버스 정류장 이름이 낯선 곳을 먼저 골랐다.

사실 제주 여행을 여러 번 하다 보면 멋진 풍경보다 그 사이의 시간이 더 오래 남는다. 슈퍼 앞 평상에 앉아 귤 상자를 정리하던 할머니, 낮은 돌담 너머로 들리던 개 짖는 소리, 바람 때문에 자꾸 접히던 작은 식당의 메뉴판 같은 것들. 화려하진 않은데 이상하게 계속 생각난다.

이번 일정은 3박 4일이었다. 하루 이동 거리는 대략 25킬로미터 안쪽으로 잡았다. 제주 한 바퀴를 욕심내기보다, 한 동네를 오래 걷는 쪽을 택했다. 그러니 체력도 덜 쓰고, 사진을 찍지 않아도 눈에 담기는 장면이 많았다.

사람 적은 제주를 찾으려면 시간보다 방향이 중요했다

제주에서 한적한 곳을 찾는다고 무조건 새벽에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물론 이른 아침의 바다는 좋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방향이었다. 큰 주차장, 유명 카페, 포토존이 붙은 해안도로에서 한두 블록만 안쪽으로 들어가도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가령 서쪽 바닷가 근처에서도 차들이 줄 서는 길이 있는 반면, 바로 뒤편 마을길은 고요했다. 낮은 집들 사이로 밭이 이어지고, 돌담은 바람을 막기보다 바람을 통과시키는 쪽에 가까웠다. 길 폭은 좁고, 걷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관광지가 아니라 생활 공간에 가까워서 조심스러웠지만, 그 조심스러움 덕분에 더 천천히 걷게 됐다.

  • 큰 해변 이름보다 주변 마을 이름으로 목적지를 잡았다.
  • 주차장이 넓은 곳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 오전 10시 전이나 오후 4시 이후에 골목 산책을 넣었다.
  • 식사는 리뷰 많은 곳보다 동네 주민이 자연스럽게 드나드는 곳을 골랐다.

솔직히 실패한 선택도 있었다. 너무 조용한 줄 알고 들어간 길이 막다른 사유지 앞이어서 바로 돌아 나온 적도 있고, 기대했던 작은 포구는 공사 중이라 오래 머물 수 없었다. 그래도 그런 변수까지 포함해서 여행 같았다. 모든 장면이 준비된 무대처럼 완벽하면, 오히려 기억이 얇아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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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포구와 동네 식당에서 보낸 오후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곳은 이름이 크게 알려진 바다가 아니라 작은 포구였다. 방파제 끝까지 걸어가는 데 7분쯤 걸렸고, 중간에 만난 사람은 낚시하던 아저씨 한 명뿐이었다. 바다는 푸른색이라기보다 회색과 초록이 섞인 색에 가까웠다. 날이 흐려서 사진은 별로였지만, 그 덕분에 더 조용했다.

점심은 포구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동네 식당에서 먹었다. 메뉴는 단출했다. 생선구이, 몸국, 고기국수 정도였고 가격은 관광지 중심가보다 체감상 2천 원에서 4천 원 정도 낮았다. 대단한 맛집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밥이 뜨겁고 반찬이 과하지 않았다. 여행 중에는 그런 식사가 생각보다 귀하다.

근데 제주도여행에서 이런 장소를 찾을 때는 마음가짐이 조금 필요하다. 조용한 곳은 서비스가 빠르지 않을 수 있고, 영업시간이 검색 정보와 다를 때도 있다. 실제로 내가 들른 식당 한 곳은 오후 2시가 조금 넘자 재료가 떨어졌다며 문을 닫았다. 아쉬웠지만, 그게 동네의 속도였다.

동네를 걸을 때 지켰던 작은 기준

로컬 장소를 좋아한다고 해서 아무 데나 들어가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제주 마을은 누군가의 여행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집이다. 그래서 골목을 걸을 때는 카메라를 조금 늦게 꺼냈고, 집 안이 보이는 방향으로는 렌즈를 들지 않았다. 차를 세울 때도 빈 공간처럼 보여도 사유지일 수 있어 마을 주차장이나 공영 공간을 먼저 찾았다.

  • 사람이 사는 집 앞에서는 오래 서 있지 않았다.
  • 돌담 안쪽 밭이나 마당은 사진 배경으로 쓰지 않았다.
  • 작은 가게에서는 음료 하나라도 사며 쉬었다.
  • 길이 좁은 마을에서는 차보다 걷는 시간을 늘렸다.

이런 기준을 세우면 여행이 답답해질 것 같지만, 오히려 편해진다. 어디까지 들어가도 되는지 계속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동네의 리듬을 해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조용한 여행은 장소를 많이 아는 것보다, 머무는 태도가 더 크게 작용한다.

유명한 제주와 조용한 제주는 서로 다른 여행이었다

유명 관광지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제주에는 사람들이 몰릴 만한 풍경이 분명히 있다. 성산의 능선이나 서쪽의 해 질 녘 바다, 오름에서 내려다보는 들판은 몇 번을 봐도 좋다. 다만 그 장면만 따라가다 보면 여행의 속도가 너무 빨라진다. 사진을 찍고, 차에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흐름이 반복된다.

이번에는 반대로 해봤다. 하루에 목적지를 2곳만 정하고 나머지는 비워뒀다. 그러자 버스가 지나간 뒤 먼지가 가라앉는 시간, 가게 주인이 바깥 의자를 닦는 시간, 골목 끝에서 갑자기 바다가 나타나는 시간이 들어왔다. 일정표에는 적히지 않는 것들이 여행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비교해보면 체감도 꽤 달랐다. 유명 해변 주변에서는 주차와 대기만으로 30분 이상 쓰는 날이 많았는데, 동네 중심 일정에서는 그런 시간이 거의 없었다. 대신 걷는 시간이 늘었다. 하루 평균 1만 2천 보 정도 걸었고, 숙소에 돌아오면 다리가 묵직했다. 그래도 머리는 이상하게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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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제주도여행도 아마 천천히 걷게 될 것 같다

제주를 조용히 여행하려면 특별한 비밀 장소를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다녀와 보니 꼭 그렇진 않았다. 유명한 곳에서 조금 비켜서고, 한 장소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 동네의 생활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마음만 있어도 여행의 결이 달라졌다.

다음에 제주에 간다면 또 큰 계획은 세우지 않을 것 같다. 아침에는 숙소 근처 빵집이나 분식집을 찾아가고, 낮에는 바람이 덜 부는 골목을 걷고, 해 질 무렵에는 작은 포구에 앉아 있을 생각이다. 제주도여행이 꼭 눈부신 장면으로만 채워질 필요는 없었다. 가끔은 조용한 길 하나가 오래 남는다.

제주도여행, 유명한 곳 대신 조용한 동네만 걸어봤더니 -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