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요리교실에서 멸치볶음을 같이 만들었는데, 같은 멸치에 같은 양념을 넣어도 어떤 분 것은 바삭하고 어떤 분 것은 금방 눅눅해졌어요. 레시피가 틀린 게 아니라 순서가 조금 달랐습니다. 밑반찬은 대단한 기술보다 물기 빼기, 불 세기, 양념 넣는 타이밍에서 맛이 갈립니다.
집에서 밑반찬을 만들 때 제일 아까운 순간이 있죠. 힘들게 여러 가지 해놨는데 이틀 뒤에 물이 흥건하거나, 짜져서 손이 안 가는 때요. 저는 주방에서 오래 일하면서 밑반찬은 처음부터 오래 보관할 음식을 만든다고 생각해야 실패가 적다는 걸 배웠습니다.
밑반찬은 물기부터 잡아야 합니다
나물, 볶음, 조림 모두 공통으로 물기가 많으면 맛이 빨리 흐려집니다. 특히 콩나물무침, 시금치나물, 무생채는 양념보다 물기 조절이 먼저입니다. 데친 채소는 바로 무치지 말고 5분 정도 체에 받친 뒤, 손으로 한 번 더 가볍게 짜주세요. 세게 비틀면 질겨지고, 너무 살살 하면 냉장고에서 물이 나옵니다.
시금치 1단 기준으로 소금은 데칠 물 1리터에 1작은술 정도면 충분합니다. 데치는 시간은 줄기가 가는 시금치는 30초, 굵은 것은 45초 정도 잡습니다. 오래 데치면 초록색은 예쁜데 씹는 맛이 없어지고, 냉장 보관했을 때 더 빨리 물러집니다.
- 나물은 데친 뒤 찬물에 헹구고 물기를 꼭 짜기
- 무생채는 소금에 10분 절인 뒤 나온 물을 버리고 양념하기
- 오이무침은 먹기 직전에 무치거나, 미리 할 땐 씨 부분을 덜어내기
- 두부조림용 두부는 키친타월에 10분 올려두고 굽기
제가 초보 때 제일 많이 망친 게 오이무침이었습니다. 고춧가루를 넉넉히 넣으면 물을 잡아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오이는 속의 수분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고춧가루만 늘리면 텁텁하고 싱거운 맛이 같이 납니다. 오이 2개라면 소금 1작은술로 10분만 절이고 물기를 살짝 짠 뒤, 고춧가루 1큰술 반 정도가 먹기 좋습니다.
볶음반찬은 센 불보다 중약불이 오래 갑니다
밑반찬 볶음은 센 불로 확 볶아야 맛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멸치볶음이나 어묵볶음은 중약불이 더 안정적입니다. 센 불에서 양념을 먼저 넣으면 설탕과 간장이 금방 타고, 겉은 진한데 속은 간이 안 배어 있는 맛이 됩니다.
멸치볶음은 잔멸치 100g 기준으로 마른 팬에서 2분 정도 먼저 볶아 비린내와 습기를 날립니다. 이때 기름을 먼저 넣지 않는 게 좋아요. 멸치에 남은 가루와 수분이 기름을 머금으면 눅눅해집니다. 마른 볶음 뒤에 체에 한 번 털어주면 쓴맛도 줄어듭니다.
양념은 간장 1큰술, 맛술 1큰술, 올리고당 1큰술, 설탕 1작은술 정도면 짜지 않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팬에 양념을 넣고 가장자리가 보글보글 올라오면 불을 약하게 낮춘 뒤 멸치를 넣어 섞습니다. 마지막에 불을 끄고 참기름 1작은술, 깨를 넣으면 향이 살아납니다. 참기름은 오래 가열하면 고소함보다 무거운 향이 납니다.
어묵볶음은 물 3큰술이 맛을 부드럽게 합니다
어묵볶음은 기름만 넣고 볶으면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 딱딱해지기 쉽습니다. 사각어묵 4장 기준으로 양파 반 개, 당근 조금을 넣고 기름 1큰술에 먼저 볶습니다. 그다음 간장 1큰술 반, 설탕 1작은술, 물 3큰술을 넣고 중불에서 2분 정도 졸입니다. 이 물 3큰술이 어묵을 촉촉하게 만들고 양념이 골고루 배게 해줍니다.
매운맛을 원하면 고춧가루 1작은술을 넣으면 됩니다. 고추장을 넣고 싶다면 1작은술만 넣으세요. 많이 넣으면 냉장 보관 후 양념이 뻑뻑해지고 단맛을 더 찾게 됩니다.
조림반찬은 양념을 한 번에 다 넣지 않습니다
연근조림, 우엉조림, 감자조림은 처음부터 간장을 많이 넣으면 겉만 짜지고 속은 밍밍할 수 있습니다. 조림은 재료를 익히는 시간과 간을 들이는 시간을 나눠야 합니다. 감자조림은 특히 물 양이 중요합니다. 감자 3개를 한입 크기로 썰었다면 물은 감자가 반쯤 잠길 정도, 대략 250ml면 됩니다.
감자조림 양념은 간장 2큰술, 설탕 1큰술, 맛술 1큰술로 시작합니다. 뚜껑을 덮고 중불에서 7분 익힌 뒤, 뚜껑을 열고 국물이 반으로 줄 때까지 4~5분 더 졸입니다. 올리고당은 마지막 1큰술만 넣어 윤기를 냅니다. 처음부터 넣으면 감자가 익기 전에 겉이 끈적해져서 부서지기 쉽습니다.
연근은 얇게 썰수록 빨리 익지만 너무 얇으면 씹는 맛이 사라집니다. 0.4cm 정도가 집 반찬으로 좋습니다. 식초물에 5분 담갔다가 헹구면 색이 덜 변하고 아린 맛도 줄어듭니다. 연근 300g 기준으로 물 300ml, 간장 3큰술, 설탕 1큰술을 넣고 먼저 졸인 뒤, 마지막에 올리고당 1큰술과 참기름 조금을 넣습니다.
재료가 없을 때 바꾸는 양도 같이 생각하세요
밑반찬은 냉장고 사정대로 만드는 음식이라 대체 재료를 알아두면 편합니다. 다만 재료만 바꾸고 양념을 그대로 쓰면 간이 어긋납니다. 물이 많은 재료는 간장을 조금 줄이고, 양념을 잘 먹는 재료는 물을 더해줘야 합니다.
- 시금치 대신 청경채를 쓰면 데친 뒤 물기를 더 세게 짜고 간장은 1작은술만 사용
- 잔멸치 대신 중멸치를 쓰면 마른 팬에 3분 볶고 올리고당은 1큰술 반까지 가능
- 감자 대신 고구마를 쓰면 설탕을 빼거나 1작은술 이하로 줄이기
- 어묵 대신 맛살을 쓰면 간장은 1큰술만 넣고 볶는 시간은 1분 줄이기
- 연근 대신 우엉을 쓰면 물을 50ml 더 넣고 졸이는 시간을 5분 늘리기
소금, 간장, 액젓도 서로 바꿔 쓸 수 있지만 맛의 방향이 다릅니다. 소금은 깔끔하고, 간장은 단맛과 색이 붙고, 액젓은 감칠맛이 강합니다. 콩나물무침 300g 기준으로 소금은 1작은술보다 조금 적게, 국간장은 1큰술, 액젓은 2작은술 정도부터 넣으면 크게 짜지 않습니다.
냉장 보관 전 식히는 시간이 맛을 지킵니다
따뜻한 반찬을 바로 밀폐용기에 담아 뚜껑을 닫으면 안쪽에 물방울이 생깁니다. 그 물방울이 다시 반찬으로 떨어지면서 맛이 옅어지고, 볶음반찬은 눅눅해집니다. 조리 후 넓은 접시에 펼쳐 20~30분 식힌 뒤 담는 게 좋습니다. 여름에는 너무 오래 밖에 두지 말고 김이 빠지면 바로 냉장고에 넣습니다.
밑반찬은 보통 3일 안에 먹을 양으로 만드는 게 가장 맛있습니다. 멸치볶음이나 장아찌처럼 간이 있는 반찬은 더 가도 되지만, 나물류는 2일째가 지나면 향이 확 줄어듭니다. 그래서 저는 요리교실에서도 나물은 많이 만들지 말고, 볶음이나 조림을 조금 넉넉히 하라고 말합니다.
간이 세졌을 때도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멸치볶음이 짜면 견과류나 볶은 통깨를 더 넣고, 어묵볶음이 짜면 양파를 채 썰어 물 2큰술과 함께 한 번 더 볶으면 부드러워집니다. 나물이 짜면 데친 숙주나 채 썬 오이를 조금 섞어 간을 나눌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싱거우면 소금을 바로 뿌리기보다 국간장이나 참기름을 아주 조금 더해 향을 보태는 편이 낫습니다.
밑반찬은 냉장고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며칠 뒤의 밥상을 편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에 많이 하려고 하면 손도 지치고 맛도 흔들리니, 물기 적은 나물 하나, 볶음 하나, 조림 하나 정도로 시작하면 충분합니다. 불을 조금 낮추고 물을 한 숟가락 줄이거나 더하는 감각이 생기면, 같은 재료로도 훨씬 안정적인 밑반찬이 나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