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관 서가에서 만난 낯선 이름
얼마 전 도서관 시 코너를 기웃거리다가 앤 카슨이라는 이름을 다시 봤다. 예전부터 문학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종종 들리던 이름인데, 막상 책을 집어 들면 선뜻 계산대로 가기 어려운 작가였다. 시인이라고 하기엔 산문 같고, 에세이라고 하기엔 문장이 너무 날카롭고, 고전 연구자라고 하기엔 감정이 너무 가까웠다.
그래서 이번엔 작은 실험처럼 접근했다. 앤 카슨 도서를 한 권만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여러 권을 펼쳐 보며 내가 어디에서 멈칫하는지 보는 방식이었다. 생활용품 비교하듯 책도 내 독서 습관에 맞는지 확인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솔직히 첫 느낌은 어렵다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덮고 나서도 문장이 계속 남았다.
앤 카슨 책은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질까
앤 카슨은 캐나다 출신 작가로, 고전학을 공부하고 시와 산문, 번역, 비평의 경계를 자주 넘나든다. 이 설명만 보면 꽤 딱딱하게 느껴지는데, 실제 책을 읽으면 딱딱함보다 이상한 생동감이 먼저 온다. 오래된 신화와 개인적인 상실, 사랑, 질투 같은 감정이 한 페이지 안에서 부딪힌다.
일반적인 소설처럼 사건이 차곡차곡 진행되기를 기대하면 조금 당황할 수 있다. 문장이 조각처럼 놓이고, 대화 같다가 갑자기 주석처럼 바뀌고, 시처럼 줄이 끊기기도 한다. 근데 바로 그 점 때문에 앤 카슨 도서는 ‘줄거리 소비’보다 ‘문장 체험’에 가깝다. 카페에서 한 번에 100쪽을 밀어붙이는 책이라기보다, 10쪽 읽고 멍하니 창밖을 보게 만드는 쪽이다.
- 서사가 분명한 책을 좋아하면 처음엔 느리게 읽히기 쉽다.
- 밑줄 긋는 독서를 좋아하면 의외로 오래 붙잡게 된다.
- 시, 철학, 신화에 약간의 호기심이 있으면 진입 장벽이 낮아진다.
처음 고를 때 덜 헤매는 순서
앤 카슨 도서를 처음 고른다면 개인적으로는 너무 유명한 책부터 무작정 시작하기보다, 내가 원하는 독서 감각을 먼저 생각하는 편이 낫다고 느꼈다. 감정의 밀도가 높은 책을 원하는지, 실험적인 형식이 궁금한지, 고전과 현대가 섞이는 방식이 보고 싶은지에 따라 첫인상이 꽤 달라진다.
감정선으로 들어가고 싶다면
상실, 사랑, 기억 같은 주제에 끌린다면 앤 카슨의 책은 의외로 차갑지만은 않다. 문장은 건조한데, 그 건조함 때문에 감정이 더 세게 남는 순간이 있다. 슬픈 장면을 길게 설명하지 않고, 단어 하나를 툭 놓고 지나가는데 거기서 마음이 걸린다. 이런 방식이 맞는 사람에게는 오래 기억되는 독서가 된다.
형식의 낯섦이 궁금하다면
책이 꼭 한 가지 모양이어야 하냐는 질문에 끌린다면 앤 카슨은 꽤 흥미롭다. 시, 에세이, 희곡, 번역, 주석이 한 권 안에서 서로 자리를 바꾼다. 처음엔 ‘내가 지금 뭘 읽고 있는 거지’ 싶지만, 조금 지나면 그 혼란 자체가 책의 리듬처럼 느껴진다. 다만 피곤한 날에는 잘 안 읽힌다. 이건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고전이 어렵게만 느껴졌다면
앤 카슨은 고대 그리스 문학이나 신화를 자주 끌어온다. 그런데 교과서식 설명으로 풀지 않는다. 오래된 인물들이 지금의 감정과 연결되는 식이다. 예를 들어 사랑 때문에 무너지는 마음, 가족을 잃은 뒤의 말없음, 누군가를 이해하려다 실패하는 감각은 시대를 별로 타지 않는다. 그래서 고전 지식이 아주 많지 않아도 붙잡을 부분이 생긴다.
직접 읽어보니 좋았던 점과 걸렸던 점
가장 좋았던 건 문장의 온도였다. 뜨겁게 울부짖는 문장이 아니라, 얼음처럼 차가운 표면 아래에 열이 있는 문장에 가깝다. 그래서 읽을 때보다 읽고 난 뒤에 더 늦게 반응이 온다. 책장을 덮고 설거지를 하다가 갑자기 한 문장이 떠오르는 식이다. 생활 속 독서로는 꽤 특이한 경험이었다.
반대로 불편한 점도 있다. 첫째, 맥락을 친절하게 깔아주지 않는다. 둘째, 번역서로 읽을 때 문장 리듬이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셋째, 가격 대비 페이지 수나 읽는 속도만 따지면 ‘효율 좋은 책’이라는 느낌은 덜하다. 빠르게 읽고 뿌듯함을 얻고 싶은 날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이상하게 손이 다시 간다. 이건 실용서처럼 즉시 써먹는 노하우가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내가 평소에 대충 넘기던 감정의 이름을 조금 더 정확히 보게 만든다. 사랑이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 우스꽝스럽고, 상실이 슬프기만 한 게 아니라 말문을 막히게 한다는 식으로.
- 장점: 문장 밀도가 높고, 여러 번 읽을수록 새로 보이는 부분이 많다.
- 아쉬운 점: 초반 진입 장벽이 있고, 피곤할 때 읽으면 멀게 느껴진다.
- 추천 방식: 한 권을 빨리 끝내기보다 하루 10쪽 안팎으로 천천히 읽는 쪽이 잘 맞는다.
앤 카슨 도서를 고를 때 내 기준
내가 다시 고른다면 먼저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5쪽 정도 직접 읽어볼 것 같다. 앤 카슨은 줄거리 소개보다 실제 문장과 맞는지가 훨씬 중요했다.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면 책장에 오래 꽂히기 쉽고, 반대로 첫 문장 몇 개가 마음에 걸리면 꽤 오래 곁에 둘 책이 된다.
또 하나는 번역자의 문체도 같이 보는 것이다. 같은 작가라도 번역의 리듬에 따라 체감 난도가 달라진다. 가능하면 목차, 첫 장, 중간의 아무 페이지를 각각 읽어보면 좋다. 첫 장은 멋있는데 중간부터 멀어지는 책도 있고, 처음엔 낯설다가 중간 페이지에서 갑자기 마음이 붙는 책도 있다.
앤 카슨 도서는 모두에게 가볍게 권하기 좋은 책은 아니었다. 그런데 책을 읽는 일이 가끔은 편안함보다 낯선 자극을 주었으면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이 작가의 책은 꽤 선명한 선택지가 된다. 나도 처음엔 ‘이걸 다들 어떻게 읽는 거지’ 싶었는데, 지금은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좋아할 수 있는 책이 있다는 쪽에 조금 더 마음이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