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택시 안에서 문득 궁금해진 것
얼마 전 새벽에 일이 늦게 끝나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이 “이 시간 손님은 보통 두 부류예요. 집에 가는 사람, 이제 출근하는 사람”이라고 웃으시더라고요.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나는 그냥 목적지까지 가는 20분짜리 이동이라고 생각했는데, 택시기사 입장에서는 하루 중 가장 농도가 짙은 시간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택시기사는 우리 생활에서 정말 자주 마주치지만, 막상 그 일의 속사정은 잘 모릅니다. 길을 잘 아는 사람, 운전을 오래 하는 사람 정도로만 떠올리기 쉽죠. 그런데 실제로 이야기를 들어보면 운전 실력보다 더 많이 쓰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힘, 사람을 읽는 눈치, 몸을 덜 망가뜨리는 요령, 그리고 하루 수입을 계산하는 감각이요.
택시기사의 하루는 운전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택시기사 하면 계속 달리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 하루에는 기다리는 시간이 꽤 많습니다. 손님이 많은 구역을 찾아 이동하고, 역 앞이나 병원 근처에서 줄을 서고, 앱 호출이 뜨길 기다립니다. 이 시간이 짧으면 좋지만, 흐름이 안 맞는 날은 20분, 30분씩 허공에 시간이 빠져나갑니다.
제가 만난 한 기사님은 “택시는 길보다 시간대가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같은 장소라도 오전 8시와 오후 2시는 완전히 다르다는 거죠. 출근 시간에는 지하철역 주변, 점심 전후에는 병원과 관공서, 밤에는 번화가와 주거지를 살핀다고 했습니다. 단순히 오래 운전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도시의 리듬을 계속 읽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몸이 많이 굳습니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허리, 목, 어깨가 먼저 반응한다고 합니다. 어떤 기사님은 두세 시간마다 일부러 차에서 내려 3분이라도 걷는다고 했습니다. 대단한 운동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오후부터 허리가 뻐근해져 손님 응대에도 영향을 준다고요.
손님 응대는 생각보다 섬세한 기술이었다
택시 안은 좁습니다. 그래서 말 한마디가 크게 느껴집니다. 기사님 입장에서도 손님이 대화를 원하는지, 조용히 가고 싶은지 빠르게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어떤 손님은 타자마자 말을 걸고, 어떤 손님은 이어폰을 꽂고 창밖만 봅니다. 여기서 괜히 말을 많이 걸면 불편해지고, 너무 무심하면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좋은 기사님을 만났다고 느낄 때를 떠올려보면, 엄청난 서비스 때문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차 안이 너무 덥거나 춥지 않고, 급가속이 적고, 목적지를 다시 한번 확인해주고, 말이 필요한 만큼만 오갑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 네 가지가 맞으면 이동 시간이 훨씬 편해집니다.
- 출발 전 목적지를 짧게 확인한다
- 내비 경로와 손님이 원하는 길이 다를 수 있음을 열어둔다
- 통화 중인 손님에게는 말을 줄인다
- 급정거와 차선 변경을 최대한 줄인다
솔직히 손님 입장에서도 배울 점이 있었습니다. 목적지를 말할 때 건물명만 던지는 것보다 근처 큰길이나 출입구를 같이 말하면 훨씬 덜 헤맵니다. 특히 아파트 단지, 병원, 대형 쇼핑몰처럼 입구가 여러 개인 곳은 “정문 쪽”, “응급실 앞”, “지하주차장 입구 말고 큰길 쪽”처럼 말하는 게 서로 편합니다.
수입은 단순히 많이 달린다고 늘지 않았다
택시기사 수입은 손님 수, 운행 시간, 연료비, 차량 유지비, 대기 시간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겉으로 보면 미터기가 올라가니 운행만 길게 하면 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빈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많으면 효율이 떨어집니다. 손님을 태운 시간이 8시간이어도 실제 도로 위에 있었던 시간은 10시간이 넘을 수 있습니다.
기사님들이 민감하게 보는 것도 결국 ‘빈 시간’이었습니다. 손님을 내려준 뒤 바로 다음 손님을 만날 수 있는 지역인지, 막히는 도로에 들어가면 회복이 가능한지, 장거리 손님이 좋은지 짧은 손님을 여러 번 태우는 게 좋은지 계속 계산합니다. 이게 매일 반복되면 거의 작은 자영업자의 감각에 가까워집니다.
근데 이 계산이 늘 맞지는 않습니다. 비가 오는 날은 손님이 늘지만 길이 막혀 회전율이 떨어질 수 있고, 행사나 공연이 끝나는 시간에는 수요가 몰리지만 주변 도로가 꽉 막히기도 합니다. 그래서 경험 많은 택시기사는 “손님 많은 곳”보다 “빠져나올 수 있는 곳”을 더 중요하게 본다고 했습니다. 듣고 보니 꽤 현실적인 기준이었습니다.
좋은 택시기사와 편한 승객은 같이 만든다
택시를 타면서 불편했던 경험도 분명 있습니다. 과속, 불친절, 돌아가는 길, 지나친 대화 같은 것들이요. 반대로 기사님들도 무리한 요구, 취객 응대, 갑작스러운 경로 변경, 요금 시비 같은 일로 꽤 지친다고 합니다. 좁은 차 안에서 모르는 사람 둘이 잠깐 같은 방향으로 가는 일이라, 생각보다 기본 예의가 크게 작동합니다.
제가 요즘 택시를 탈 때 의식적으로 하는 건 세 가지입니다. 타자마자 인사하기, 목적지를 구체적으로 말하기, 원하는 경로가 있으면 초반에 말하기. 별것 아닌데 이 세 가지만 해도 분위기가 꽤 부드러워집니다. 기사님도 운전 중에 갑자기 “아까 저쪽으로 갔어야죠”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 처음부터 듣는 게 훨씬 낫다고 했습니다.
택시기사라는 일은 길 위에서 사람을 계속 만나는 직업입니다. 매번 다른 손님, 다른 목적지, 다른 기분을 상대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택시를 탈 때마다 조금 다르게 보게 됐습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람은 단순히 나를 데려다주는 사람이 아니라, 도시의 흐름을 온몸으로 겪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걸 알고 나니 짧은 이동도 전보다 덜 무심하게 느껴집니다.
